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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 최악의 찌질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바람을가르다 2010. 1. 13. 14:20



드디어 차강진(고수)과 한지완(한예슬)이 눈발 날리는 곳에서,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며 그간의 오해를 풀고 사랑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추노>의 장혁과 이다해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고수와 한예슬에 키스신의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추노의 돌풍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산사태로 몰아넣었다. 결국 '아이리스'에 밟히고, '추노'에게 묻힌 꼴이 됐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는 대진운이 없었던 걸까?
한창 잘 나가던 아이리스와 붙은 것은 분명 불운했다. 탄력받은 드라마와 후발주자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추노>는 다르다. 이제 막 뚜껑을 연 프로그램이다. 어느 정도 시청자를 확보한 <클스>로서는 충분히 경쟁해 볼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 9회와 10회가 망쳐 버렸다. <클스> 내부에 문제가 심각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지완(한예슬)이 있다.


한예슬을 찌질녀로 만든 건 패착이다!

<클스>는 <환상의 커플>과 같은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같은 멜로물이다. 즉 여주인공 한예슬을 망가뜨리는 건, 초반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중반 이후로 흐르면 철저히 이미지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상처를 받아도 크게 많이 받아야 하고, 최대한 불쌍하되, 매력은 잃지 않도록 작가가 이끌어줘야 한다. 멜로의 여인으로 변신한 한예슬은 흡족까진 아니어도 분명 선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주 한지완(한예슬)은 멜로 사상 최고의 찌질녀로 등극한다. 시청자의 혀를 차게끔 만든 장면속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특히 강진(고수)을 오해하고 몰아부쳤던 장면은 베스트 오브 최악이다. 악다구니를 늘어놓아도 아웃사이더의 속사포랩이 아니라, 차분하고 냉정하게 비꼬듯이 뭉게 뜨려서 내놓아야 했다. 멜로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최대한 지켜줘야 했다. 그러나 한지완은 강진을 따라 계단을 내려오며, 그의 뒤통수에 대고 "너희같은 것들은..." 어쩌구저쩌구를 늘어 놓는다.

그리고 삼십분도 안 지나서, 모두 오해였다는 사실과 강진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게 되는 민망함을 겪는다. '너희같은 것'에서 '강진오빠' 급호칭 변경을 꾀하며, 그녀는 가슴을 치고 눈물까지 흘린다. 삼십분만에 변해버린 여주인공 한예슬을 보면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운 얼굴 망가뜨려 가며 눈물연기를 선보인 한예슬은 칭찬해줘도 아깝지 않았지만, 내용은 맞되 감정이 급뒤틀린 앞뒤가, 결국 한예슬에 대한 몰입도를 방해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임수정 v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의 한예슬

이경희작가의 전작 <미사>의 임수정도 소지섭을 오해하고 몰아부친 사례가 있다. <클스>의 한예슬이 고수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느낌은 극과극이다. 임수정은 용서가 되는데 한예슬은 용서가 안 된다. 단순히 그녀들의 연기에서 찾기 보단, 상황만으로 놓고 볼 때, 무게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머리에 총알이 박혀 석달도 살기 힘들다며 그 때까지만 옆에 있어 달라고 고백하는 소지섭에게, 장난인 줄 알고 "아저씨, 꼭 죽어!"라고 독한 말을 서슴없이 뱉어가며 냉정하게 돌아섰던 임수정. 죽음을 앞둔 소지섭의 마지막 소원마저 걷어찬 임수정으로 인해, 시청자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목숨도, 엄마도, 사랑하는 여자마저 소지섭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수정의 독설은 소지섭을 철저하게 외롭고 아프게 만들며 빛난다.

박태준(송종호)과 연루된 사건에 강진(고수)이 개입한 건, 지완(한예슬) 때문이다. 비록 이 루트에 사랑이 전제되긴 했어도 <미사>와 달리 간접적인 도화선이다. 한예슬이 방방뜨고 오버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삐딱한 눈으로 강진을 최저 인간인양 살짝 밟아주면 될 일이었다. 근데 자신의 팔다리 잘라간 것 마냥, 고수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고수마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유치한 장면 하나가 <클스>를 회복불능상태로 끌어내렸다.  


멜로드라마의 불문율이 있다면, 극이 중반이후로 넘어갈수록 철저히 여자주인공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절대 찌질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오해를 해도 오장육부 다 드러내기 보단 적당히, 반성을 해도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주인공뿐 아니라, 그녀를 따라가는 시청자의 감정선도 계산에 함께 넣어야 하는 것이다. 막장드라마야 분단위로 주인공의 감정이 오락가락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간다지만, 애틋하고 애절한 멜로를 지향하는 <클스>가 막장공식을 쫓아가면 볼짱 다 본 것이다. 

지난 주에 한예슬은 찌질녀가 돼버렸다. 반면 강진(고수)과 우정(선우선)은 멀쩡했다. 오히려 선우선의 경우, 한예슬에 비해 일관된 루트를 찾아가며 돋보였다. 한예슬의 캐릭터 한지완을 키워줘야 할 타이밍에, 선우선이 맡은 이우정만 쿨하면서도 아픔이 느껴졌다. 한지완이 아니라 이우정이 더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처구니없게도 여주인공 역전현상을 일으키는 악수를 둔 꼴이 됐다. 이것이 패착이다. 망가진 여주인공과의 키스가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고수나 선우선에게 몰두할 게 아니라, 한예슬을 다듬어야 한다. 그녀를 찌질하게 만든 오지랖과 오버센스따윈 묻어버리고, 철저하게 나약한 여자로 만들어 여주인공의 매력을 찾아줘야 한다. 그리고나서 그녀를 보듬어주는 고수를 붙여놔야 남아있는 시청자의 누수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