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수상한삼형제, 이상과 어영-신파의 힘?

바람을가르다 2010. 1. 11. 14:56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속에서도 시청률 30%대 중반의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수상한삼형제>. 이 드라마가 거침없이 질주를 하는 배경에는 '신파'라는 소스가 있다. 재탕, 삼탕, 수십탕의 고부갈등은 기본으로 깔되,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로 양념은 아주 독하게 뿌려 놓았다. 막장도 나이를 먹는다. 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시청자의 입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수상한삼형제>에서 그나마 덜 독한 소스에 무난한 볼거리를 찾는다면,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사랑이다. 물론 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의 자식들이다. 김순경(박인환)과 주범인(노주현)은 이름을 빼다 박은 관계다. 이상과 어영의 사랑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 그럼에도 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탕에 신파가 있고, 그 안에 사랑을 풀었기 때문이다.


특히 10일 방송분에 이상과 어영의 이별 장면을 보면, 신파의 극치를 달린다.

이상이 미녀검사 이태백(윤주희)과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 뒤, 어영은 살짝 질투심이 폭발한다. "됐다, 그래!" 라고 쿨한 척 하지만, 결국 아버지 주범인에게 이태리 유학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일련에 어영의 몸부림은 귀엽게 봐줄만하다.

딸 어영을 위해, 김순경을 찾아가 무릎꿇고 용서를 구하는 주범인. 그러나 협상은 결렬되고 어영을 찾아온 이상에게 범인은, 그녀가 곧 유학을 떠난다고 알려 준다. 충격을 받은 이상은 어영을 불러낸다. 두사람은 마지막이 될 것마냥 까페에 마주앉아, 남자는 부모님은 상관말고 둘이 결혼해 버리자고 매달리고, 여자는 부모님을 거론하며 냉정하게 이별을 얘기한다. 신파의 정석대로 흘러간다.


신파의 하이라이트를 보여 준, 이상과 어영의 이별

까페에서 나올때도 어영이 먼저, 이상이 헐레벌떡 뒤를 쫓는다. 그리고 때마침 하늘에선 눈이 내린다. 냉정함을 유지했던 어영도 급격하게 무너진다. 이별이 너무 길어도 재미없다는 그녀. 끝내자는 말보다 무서운,

"너와 했던 경험들, 신기하고 신비로웠어.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 같애."


손발 오그라드는 이별 화법에 적절한 눈물까지 덤으로 흘려 준다.

이상도 장단 맞춰 눈물이 맺힌다.

할 말 다하고 도망치듯 뛰어가는 어영. 안 잡을 것 같이 멍하니 서 있다가, "어영아!" 연신 외치며 우샤인볼트처럼 달려가는 이상. 그리고 낚아채듯 그녀를 끌어안는 데 성공. 정말 교과서같은 그림이다. 이것이 신파의 매력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어영보다 과한 이상의 사랑표현.

"사랑해! 사랑한다고 이 바보야, 이 꼴통! 사랑한단 말이야, 이 바보 멍청아!"


바보, 꼴통, 멍청이 유치삼단콤보로 여자의 혼을 쏙 빼놓는 남자. 신파학개론이 있다면 기출문제로 수십번은 출제됐을 법한 대사이나, 꼴통은 신선했다.


'이 순간을 영원히...'라고 생각할 때, 걸려오는 전화. 적절한 타이밍. 두사람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칼침 놓아 줄 남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오라는 신파의 계시. 여자의 본능적인 예감은 남자보다 강한 걸까. 이상은 계시를 못느끼지만 어영은 느끼는 듯? 아무 말도 못하게 이상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아버리는 장면은 하이라이트.

어영을 품에 안은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상이 달려간 문제의 사건현장. 탈주범들과 결투 끝에 이상이 승리의 브이자를 새길 무렵, 복부에 칼을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애절한 눈물을 흘리며, 곧 죽을 것 같이 주저 앉는다. 어영의 끈을 놓지 못한 상황에 터진 불의의 사고. 이 상투적인 장면은 만약 마지막회였다고 해도, 완벽한 신파극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만능소스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상(이준혁)이 흘린 피눈물은, 어영(오지은)이 그에게 오는 길을 터주게 된다는 걸 시청자는 알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마음 아파하고 다음 방송을 기다리는 게, 바로 지긋지긋하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신파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