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아이리스 뛰어넘을 물건, '추노'

바람을가르다 2010. 1. 7. 09:03



조선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사극 <추노>가
베일을 벗었다. 비록 회만으로 전체를 평가하기 이르지만, <아이리스>를 능가하는 재미와 탄탄한 스토리가 받치고 있었고, 장혁, 이다해, 오지호를 비롯한 배우들의 명연기는 감칠맛이 났다.

화폐가치로 계산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노비.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었던 이들은 유사시엔 사고 파는 것은 물론, 선물로 주기도 했고, 버릴 수도 있었다. 물건과 딱히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던 그들의 수는 조선 시대 초기를 지나 폭발하더니, 임진왜란 직후인 1609년. 한반도 전체 인구의 47퍼센트, 한양 전체 인구 53퍼센트까지 육박하게 된다. 당시 양반들과 평민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이니 저잣거리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이들의 다수인 셈이다. 결국 차별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노비들이 속출하였고, 이들을 추적하는 현상금 사냥꾼들 또한 성행하였으니, 이들을 추노꾼이라 불렀다. 


추노의 장혁은, '카우보이 비밥' 스파이크?

추노꾼은 말 그대로 노비를 쫓는 사냥꾼이다. 굉장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사실 현상금을 노린 사냥꾼하면,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이 떠오른다. 21세기의 미래, 지구의 인류는 거의 전멸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여러 행성에 흩어져 살게 된다. 각 행성에 분포한 민족, 인종, 문화 등이 뒤섞인 혼란한 사회속에 각종 범죄가 판을 치는데, 경찰의 치안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강력범죄를 전문적으로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른바 현상금이 붙은 범인만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 그 안에 주인공 스파이크가 있다.

장혁이 맡은 이대길이란 캐릭터를 보면,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가 생각난다. 남자답고 싸움도 잘하는데다, 여유만만에 유머러스하다. 한쪽 눈이 다친 것도 닮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당한 아픔이 있다. 세상만사엔 관심없고, 단지 사랑했던 여자를 찾기 위해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갈 뿐이다. 추노꾼 대길(장혁)에겐 언년이(이다해)가 그러하다.

 

추노의 액션에 매트릭스의 강림?

오프닝부터 화려하게 장식한 추노. 대길(장혁)은 의형제와 같은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를 대동하고, 도망친 노비 업복이(공형진) 가족을 찾아낸다. 스스로가 도망노비임에도 다른 도망노비를 등처먹는 사기꾼 원기윤(윤기원)일당과 싸움이 붙는데, 액션씬이 화려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장면을 보는 듯하다. 앞으로의 액션에 기대치가 가중된다.


짐승같은 냉혈한 추노꾼 대길, 알고보면 사려깊고 따뜻한 남자

대길은 부유한
양반가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과거준비는 뒷전이고 몸종 언년이(이다해)만 바라보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나 언년이의 오라비 큰놈이(조재완)가 집에 불을 지르고, 이로 인해 부모가 죽고 대길 혼자 살아남았다. 이후 큰놈이와 언년이를 잡기 위해 추노의 길로 접어들었고, 조선 최고의 추노꾼으로 인정받는다. 언년이에 대한 복수심일까 여전히 남아있는 사랑 때문인가.

자신의 손으로 잡은 도망노비 업복이와 그의 아내와 딸을 팔아 넘긴 대길은, 양반집으로 끌려가 위기에 처한 그들을 다시 구해 풀어주며, 도망노비가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거처를 일러주는 동시에 소한마리와 쟁기 살 종자돈까지 쥐어준다. 추노꾼으로 이적행위를 한 그는 진정한 X맨이었다. 또한 그가 돈을 위해 추노꾼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읽을 수 있다. 

 

노비 언년이에서 거간꾼 김성환(큰놈이)의 동생으로, 신분 탈출한 혜원(이다해) 

대길을 사랑했지만, 노비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오라비 큰놈이가 대길의 집에 불을 질러, 주인집 도련님을 사랑한 죄로 고초를 겪던 자신을 구해냈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대길에게 오해를 사게 만들고, 사랑했던 남자에게 원치 않은 복수심을 불러 쫓기는 신세가 되버린다. 또한 큰놈이의 뒤를 봐주던 최사과와 혼례를 치룬 첫날밤 도망을 친 그녀는, 뭇남자들의 노리개가 되기 직전, 태하의 도움을 받아 운명처럼 동행하게 된다. 8년간 한시도 잊지 못한 대길을 가슴에 품고.   


   

대길과 혜원사이에 송태하(오지호)

조선 최고의 무사이자 소현세자의 충복이었던 송태하(오지호)는, 소현세자의 죽음 이정치적 음모에 희생되어 모진 고문으로 절름발이가 된 채 관노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를 모함하고 추락시킨 건, 태하에 가려 늘 2인자 머물렀던 무사 황철웅(이종혁)이었다.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던 태하는 소현세자가 생전에 쓴 편지를 저잣거리에서 비밀리에 받는다.
거기엔 소현세자의 마지막 피맺힌 부탁이 적혀 있고, 태하는 녹슨 칼을 다시 뽑게 될 것이다. 한편 1회에서는 대길이 우연히 마주친 태하가 다리를 저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며, 그를 주목하게 된다.


아이리스 뛰어넘을 물건, <추노>
 

'길거리 사극'을 표방하며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중기에 양반에서 노비로,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뒤바뀐 이들의 운명적 사랑과 도망노비와 그들을 쫓는 추노꾼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드라마는, 왕권을 둘러싼 암투까지 그려낼 작정이라 내용적인 스케일면에서도 상당한 기대감을 동반한다. 무엇보다 추노의 장점은 기존 사극과 달리, 화려한 볼거리 뿐 아니라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스타일에 있다. 빠르고 날렵한 긴장감속에서도 여유와 유머가 베어있다.

아이리스에 이병헌이 있었다면, 추노에는 장혁이 있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장혁의 연기를 보면 통쾌함과 시원한 웃음도 있지만, 애절한 아픔도 느껴진다. 단아함이 돋보이는 이다해 역시, 김태희와 비교불가한 포스가 서려 있다. 존재감이 없었던 정준호에 비해 오지호가 주는 무게감도 돋보인다. 성동일, 김지석, 공형진, 이종혁에 뉴페이스 한정수도 매력적인데다, 조미령, 유채영 등의 조연들도 재미를 더한다.  
   
19.7%의 시청률로 상쾌한 스타를 끊은 <추노>. 또 하나의 대작이 수목드라마에 나타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