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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 타이거JK의 마이애미 잔혹사?

바람을가르다 2010. 1. 7. 06:21
 
 
나 스스로를 힙합매니아라고 부를 순 없지만, 꽤 즐겨 듣게된 이유와 시작은 드렁큰타이거(타이거JK, DJ샤인)의 음악을 접하면서부터다. 1999년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등이 수록된 드렁큰타이거의 1집 <The Year of Tiger>을 들고 나타나, 한국 대중음악속에는 진정한 힙합이 없다고 독설아닌 독설을 거침없이 뱉던 그들. 그리고 드렁큰타이거는 오버와 언더를 넘나들며 보란듯이 국내 힙합씬을 평정했고, 크루 무브먼트의 리더로 힙합의 대중화를 이끈 에이스카드 타이거JK는 힙합계의 대부가 되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타이거JK가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강호동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가 털어 놓은 고민은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에 충분히 알려진 힙합의 거장이 이런 고민을 품은 것은, 현재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프로농구 현대모비스의 전코치 박승일씨가 안구 마우스로 쓴 일기를 랩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데서 비롯된다. 박승일씨의 꿈은 디지털 싱글 앨범의 수익으로 요양소를 만들고 싶다는 것.

그러나 세상의 무관심으로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타이거JK는 자신이 지금보다 더 유명했다면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도움이 됐을텐데라는 아쉬움과 한 켠에 남아버린 마음의 짐을 거두지 못했음을 토로했다. 덕분에 현재보다 더 유명해져서, 더 큰 영향력을 바탕으로 좋은 일에 앞장서고 싶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따뜻한 인간미는 인간 서정권으로 살아오면서 걸어 온 발자취의 연장선이었다.


힙합씬의 대부 타이거JK가 아닌, 인간 서정권을 만나다. 

한국 최초의 DJ이자 팝 칼럼니스트 서병후씨와 그룹 들고양이의 리더 김성애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정권은 음악과 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윤미래와 결혼에 골인해 그야말로 뮤직패밀리를 완성했다. 그러나 완성된 퍼즐을 맞추는 동안, 그 역시 살아오면서 여러 개로 조각난 시간들이 있었다. 

서정권은 10대 초반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어린 나이에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이국 땅에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그에게도 비켜갈 수 없는 벽이었다. 그를 강하게 키우려는 부모님의 의지가, LA에 가족들과 떨어져 삼촌이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마이애미로 향하게 만들었다. 동양인이 네명 뿐인 동네에서 철저히 이방인었던 그는, 놀림의 대상에 벗어나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태권도를 배웠고 '플로리다주 청소년 태권도 챔피언쉽'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


말죽거리 잔혹사? 서정권의 '마이애미 잔혹사'

태권도로 유명해진 당시, 그를 시기하던 무리들과 싸움이 붙는다. 남자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비겁하게 등을 보이기 싫었던 그는, 상대 패거리를 때려 눕혔다고 한다. 근데 하필 그 무리중에 한 명이 자메이카 마피아의 아들이었던 것. 언제 닥칠 지 모를 보복에, 아들의 신변을 걱정한 아버지는 그를 LA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마이애미 생활에 적응이 될 무렵, 다시 낯선 곳에 자리를 튼 서정권.

LA 베벌리힐스 고교에 전학을 온 그는, 다양한 인종과 계층속에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 헐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음을 밝혔고, 이란의 석유재벌 아들과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교내에 태권도부를 창설했다는 그에게서 자부심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인들은 셈에 능하고, 돈만 밝힌다는 편견에 맞서 수학은 무조건 0점을 받았다는 데에서는 그의 사고방식과 기질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힙합을 시작한 계기

흑인들이 받는 편견과 멸시를 갱스터랩으로 승화시킨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그는, 힙합을 즐겨듣게 된다. 그와중에 자신이 좋아했던 그룹의 멤버 아이스 큐브가 인종차별을 담아 한국인을 조롱하고 비하한 '블랙코리아 (Black Korea)'를 내놓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 고 2때 만든 그의 첫 힙합곡이 'Call me Tiger'. 흑인들이 주관하는 힙합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즉흥랩 상을 받은 곡이기도 하다. 인종차별과 편견에 맞서고, 그의 모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서정권이란 남자를 타이거JK로 또 다른 변신을 꾀하게 만든 것이다.  
   
그가 무릎팍도사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를 들으며, 드렁큰타이거의 4집 수록곡 '남자기 때문에'란 곡이 인간 서정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거칠지만 지기 싫고, 불의를 보면 참기 싫은 남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남자도 아빠가 되었다. 아내 윤미래를 속 빼닮은 아들 조단은, 낯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 피는 못속이나 보다. 천민난만한데다 만 21개월의 아이라고 보기 힘들게 우량했고, 영리했다.    


사랑, 이별, 편견, 갈등 등 수많은 인생 공식안에 살아 숨쉬는, 모든 희노애락들을 표현할 줄 아는 남자. 칼날같이 날카롭게 후벼파는 촌철살인같은 가사, MR이 없어도 리듬을 만들 줄 아는 현란한 랩핑을 구사하는 타이거JK. 그도 방송에선 울렁증을 타는 듯이 종종 어눌한 태도로 4차원적인 이야기를 쏟아놓기도 한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척수염이란 희귀병을 앓고서도 힙합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보여왔던 대한민국 힙합의 자존심 타이거JK.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이 떠오르듯, 그의 거칠지만 치열했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피끓는 청춘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끝맺지 못한 지난 날의 웃음과 감동의 인생스토리는 다음주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