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김소연-이소연, 지금은 '소연시대'

바람을가르다 2009. 12. 24. 06:30



'GEE'와 '소원을 말해봐'로 연말시상식을 휩쓸고 있는 '소녀시대'가 올한해 대중음악을 이끈 걸그룹의 아이콘이었다면, <아이리스>의 김소연과 <천사의 유혹>에 이소연은 하반기 안방극장의 주역들로 '소연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김태희를 두번 죽인 김소연

<아이리스>는 이병헌으로 시작해서 이병헌으로 끝난 드라마다. 그의 연기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파트너 김태희의 연기는 줄기차게 도마위에 올랐다. 전작에 비해 나아졌다는 칭찬아닌 칭찬도 따랐으나, '멍태희'라는 멍에를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김선화 역할을 맡았던 김소연에겐 시청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김현준에게 간택되지 못한 비련의 여전사로 남아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녀. 최승희는 김현준의 사랑을 받았지만, 김선화는 시청자의 사랑을 얻었다. 김현준이 살해당한 엔딩에서 마저, 남아있는 최승희를 걱정했던 시청자는 전무할 정도였다. 하기사 김현준이 누구에게, 왜 살해당했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미스터블랙'이겠거니 설왕설래가 오갔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이렇다 할 설명없는 결말끝에 김태희에게 남은 것은 이병헌과의 열애설이었다. 김태희의 입을 통해 루머로 밝혀지긴 했으나, 그녀에게 뒤따르던 궁금증은 이병헌과의 키스신과 베드신에 불과했다. 연기변신에 성패는 흐지부지 묻혔다. 국회에서 초대하여 상까지 받았지만, 시청자가 준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배역의 무게감에서 김태희에게 밀린 채 시작했던 김소연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존재감을 심어갔다. 김현준에게 김선화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시청자들은 그녀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해주었다. 김소연의 재발견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이어져, 언론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김소연 탐구생활이 진행중이다.   

여전사로서의 강인함과 한남자의 여자로서 슬픈 멜로를 오가며 연기했던 건, 김태희와 김소연이 동일 선상에 있었지만, 시청자를 통한 피드백은 불균형을 낳았다. 결국 배우가 디딜 수 밖에 없는 연기라는 토대위에서, 김태희는 이병헌에게 맞았고, 김소연에게 확인사살 당했다. 김태희가 톱스타속에 기생할 수 밖에 없는 반쪽짜리 배우라는 것과 김소연은 원톱이 가능한 배우로 재평가됐다는 것이, <아이리스>의 최종 결말이 됐다.


옴므파탈을 눌러버린 팜므파탈 이소연

막장이란 오명속에도 스피디한 전개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천사의유혹>은 엔딩에서도 빛을 발했다. 200억이 들어간 대작 <아이리스>는 비쥬얼면에서 블록버스터라는 찬사를 받았음에도 시종일관 '불친절' 딱지를 떼지 못한 것은, 엔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행해 온 복선과 실마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에 있다. 작가의 머릿속에 명확한 결말이 정리되어 있는지의심스러울 정도다. 쏟아낸 장면들은 많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주워 담지 못했다. 오직 배우들의 힘과 화면빨을 빌려 어거지로 이겨낸 승리였다. 

반면 <천사의 유혹>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드라마다. 배역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일일이 그들의 입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좋다', '싫다', '한다', '안한다'가 명확하다. 지나치게 친절한 나머지 싸구려 막장에, 억지 코미디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깔아놓은 복선들은 아귀에 맞게 나름의 제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마지막회에도 드러났듯이, '천사의 유혹'이 아닌 '천사들의 합창'으로 급변신을 꾀한 캐릭터들로 인해, 얼개를 무너뜨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유가 있고, 거기에 최소한의 설득력을 담보했기 때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상황이 중심이 된 <아이리스>와 인물이 중심이 되어 끌고 간 <천사의유혹>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스피디한 전개와 반전에도 짜임새와 설득력을 잃지 않고 결말까지 맺었던 건, 아이리스에 비해 천유의 순도가 높았다.       

<천사의 유혹>이 낳은 최대수혜자는 주아란 역의 이소연이다. 팜므파탈 주아란과 옴므파탈 안재성(배수빈)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주아란에게 집중되며, 배신당한 '남편의 복수극'이 아닌, '효녀 심청의 복수극'으로 완성됐다. 여기엔 이소연의 물오른 연기가 전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때로 황당했던 주아란을 주아란스럽게 넘어가는 것도, 결국은 이소연의 힘이다. 이소연은 보이지 않았고 주아란만 보였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캐릭터가 붕떠버리면, 시청자는 배역이 아닌 배우가 보이고 극의 흐름에 몰입을 방해한다. 천유는 매번 빈틈을 보이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반복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커버했고, 그 중심에 이소연이 있었다. 

인기드라마 <아이리스>와 <천사의 유혹>이 낳은 히로인 소연낭자들은, 인방극장에 소녀시대가 아닌 '소연시대'를 열었다. 이들은 연말대상 시상식 MC로도 나란히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소연시대'가 소연불패로 이어질 지, 지금보다 내년 활약이 더 기대되는 여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