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과 억울함, '정준하'의 두얼굴?
비틀즈를 패러디한 ‘미안하디 미안하다송’은,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박수를 받을 정도로, 가장 예능적인 수완으로 사과의 진정성을 담는 모범을 보여줬다.
‘미안하다송’은 궁중음식전문가 명현지쉐프와의 갈등으로, 국민적 미움을 샀던 쩌리짱 정준하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러나 ‘미안하다송’의 아이디어를 낸 유재석도, <무한도전>에 쏟아졌던 시청자들의 찬사도 이틀만에 빛이 바랬다. 이유인 즉, 바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정준하가, 그에게 쏟아졌던 시청자들의 비판에 억울함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30일 MBC드라마넷 <식신원정대>가 100회 특집을 맞아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정준하는 그곳에서 만난 모기자와 인터뷰에서, 지난 <식객-뉴욕편> 촬영중에 있었던 명쉐프와의 갈등에 대한 속내를 밝혔다.
인터뷰내용을 인용하자면, 정준하는 명쉐프와 어느정도 갈등구조를 만들어 방송의 재미를 주고자 한 것인데 논란으로 번져 속상했다며, 편집때문에 시청자의 눈에 오해살 부분이 있을 수 있겠으나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고 밝혔다. 또한 예상치 못한 구설수에 오른 것은 이번 뿐이 아니며, 그 때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자신에게 잘못을 몰아가는 여론에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정준하에 대한 용서를 거두고, 다시금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죄송하다는 ‘미안하다송’의 유쾌한 감동을, 그가 이틀만에 산산조각냈기 때문이다.
무례함과 억울함, 정준하의 두얼굴?
사실 정준하로선 억울할 수 있다. <무한도전>내에서 억울한 캐릭터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짜증내고 투덜대는 밉상이 무한도전의 쩌리짱 정준하다. 그가 유재석이 될 순 없지만, 날유의 흉내를 어설프게 낼 수는 있다. 항돈이도, 노찌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캐릭터가 있고, 캐릭터에 맞게 움직여야 위기도 있고, 갈등도 있으며, 에피소드는 늘어난다. 비틀어진 캐릭터를 다듬는 유재석이 있기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도 조화롭게 풀어낼 수 있는 <무한도전>이다.
물론 정준하도 미운털 박힌 캐릭터를 벗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독특한 캐릭터를 찾지 못한다면, 그의 존재는 불필요하다. 현재 쩌리짱은 불평도 많고 불성실하며 엇박자를 자주 내는 문제의 캐릭터다. 이번 명쉐프와의 마찰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단지 수위조절에 실패한 케이스다.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못하고, 고집을 부렸을 뿐 아니라 무례하기까지 했다.
<무한도전>은 오랫동안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1박2일>이나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있다. 독하게 풀어가기 보단, 따뜻하고 훈훈하게 풀어주기 바란다. 물론 미션은 독할 수 있되, 출연자들은 독기를 적당히 빼줘야 한다. 예능프로그램까지 인상 찡그리며 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설정상 갈등을 빚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이 선을 정준하가 지켰다면 논란은 없다. 그의 말대로 촬영장 분위기와 달리 편집이 그렇게 몰고 간 부분이 있다면, 김태호PD에게 섭섭할 수 있는 것이다. 정준하가 지독한 악역이 됐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리얼’을 강조하며 본다. 출연자들이 일정부분 과장하고 확대시킨 캐릭터인 것을 알면서도, 브라운관속에 그들을 ‘리얼’이란 상황안에 가둬놓고 시청을 한다. 리얼로 보이기 때문에 논란거리도 많다. 더군다나 리얼버라이어티는 드라마적인 툴을 도입한다. 등장인물마다 뚜렷한 캐릭터가 있고, 내용에는 갈등과 위기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극적 반전과 화해를 도모한다. 그러다보니 갈등을 빚는 인물은 나올 수밖에 없고, 밉상이 되기 쉽다.
인기드라마에 악역들은 식당아주머니 등에게, 자주 혼이 난다.
“나쁜X, 갸들 그냥 사랑하게 냅둬!”
또한 연기논란을 빚는 배우나, 극중에서 맘에 들지 않는 캐릭터는 드라마게시판에 욕으로 도배가 된다. 픽션인 드라마도 이런 상황인데, ‘리얼’을 표방하는 <무한도전>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비록 웃음을 위한 예능일지라도, 콩트가 아닌 ‘리얼’은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설정이 들어가더라도, <패떴>과 같이 짜고치는 고스톱 티가 너무 나버리면 리얼이 아닌 ‘시트콤’이란 폄하를 듣는다. 그렇다고 정준하의 말대로 명쉐프와의 갈등을 작위적으로 만들었다면, 너무 리얼하게 부각시켜도 프로그램과 출연자가 다칠 수밖에 없다. 결국 리얼예능이 풀어야 할 숙제이며, 매번 상황에 따라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제작진의 고충이 있다.
‘미안하다송’으로 덮어질 논란이 오버랩됐다. 물론 '인간' 정준하는 억울하고 속상할 수 있다. 그러나 '쩌리짱' 정준하의 무례함을 지우기엔 시기적으로 빨랐다. 안타까운 건, 만약 한달뒤에 같은 인터뷰를 했더라면 여론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