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일밤'의 시한폭탄?
최근 방송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구설수에 오른 케이스가 자주 눈에 띈다.
얼마 전 라디오 생방송 도중, 게스트로 나온 아이돌 그룹 비스트에게 “너희들 이러다 ‘배틀’된다.”며 조크를 날린 DJ 이혁재는, 그룹 배틀을 비하했다는 팬들의 질타에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사실을 밝힌 일명 ‘논개석천’의 주인공 홍석천은 <강심장>의 고정게스트 자리를 내줘야 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모 여대생의 ‘루저남’ 발언은, 방송을 내보낸 <미수다>의 존폐를 야기중이다.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 출연자의 언행은 파급력이 굉장히 높다. 아무리 개개인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다하더라도 문제로 비화될 시, 당사자는 물론, 해당 프로그램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김구라는 <일밤>의 시한폭탄?
김구라와 관련되어, 특히 주목할 케이스는 바로 이혁재다. 이혁재의 발언조차 문제가 되고 대중들에게 조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김구라는 물론, <일밤>은 칼날 위를 걸을 수밖에 없다. <라디오스타>에서 평소 내뱉는 김구라의 멘트와 이혁재의 ‘배틀 발언’은 차이가 없다. 대중이 인식하는 막말의 수위와 잣대가 모호하다는 점은, 김구라의 캐릭터를 감안할 때, 언제든지 네티즌들에게 소환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미 가벼운 언행으로 여러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경력의 소유자가 김구라다. <일밤>은 ‘구라탄’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방송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심야가 아닌, 일요일저녁은 온가족이 시청한다. 세대, 성별, 직업군 등에 따라 막말로 받아들이는 잣대가 다르다. 특정 혹은 일부 시청자층에서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언론은 확대에 일조하고, 논란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다행히 녹화방송이라는 점은, 편집을 통해 제어가 가능하다. 다만 웃음과 재미를 위해 김구라의 멘트를 ‘어디까지 자르고, 살릴 것인가?’에 대해선 제작진조차 기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밤>의 딜레마, 김구라가 사는 법?
과거 인터넷 막말방송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구라. 현재 그는 예능의 주류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프라임타임 <일밤>에 고정MC로 활약중이며, 김영희PD의 개편작업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유재석이 발라드, 이경규와 박명수가 락이라면, 김구라의 캐릭터는 하드코어다. 예능의 관점에서 볼 때,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힌 장본인이다. 습자지일지라도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가 가미된 토크에 임하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여러가지 조합을 끌어낼 수 있는 김구라의 존재는, 다양한 맛을 내기 위한 예능의 좋은 소스가 된다.
문제는 그의 고정된 이미지에 있다. 고추장, 된장에 익숙한 사람들은 마요네즈를 선호하지 않는다. 퓨전음식에도 어울리는 소스가 있다. 이번에 개편된 <일밤>은 ‘공익’컨셉을 바탕으로 한 된장찌개와 같다. 여기에 마요네즈가 어울릴까?
매니저 김구라는 막말이미지를 벗지 못한 채, 건성과 대충의 이미지마저 덧씌운 격이 됐다. <대단한 도전>에서 ‘버럭’ 이경규는 김용만과 티격태격하며 덤앤더머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무달’ 이경규로 인정받는다. 특히 마지막 미션수행은, 어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임했다. 이것이 담보됐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성질내고 버럭대던 이경규의 캐릭터를 받아줄 수 있었다.
막말MC, 독한MC의 캐릭터를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캐릭터가 인간 ‘김구라’로 이어지게 만들면 곤란하다. 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뭘 해도 밉상으로 보일 뿐이다. <일밤>에 득이 될 수 없다. 이미지를 바꾸는 건 울고 짜는 게 아니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한 컷이다. 이런 점이 자주 노출되어야 그가 과정에서 막말성 멘트를 날리더라도, 시청자는 재미를 위한 캐릭터로 이해해줄 수 있다.
‘공익’, '훈훈함'이란 컨셉과 가장 배치되는 MC라고 볼 수 있는 그가, <일밤>안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반만 깰 수 있다면, '우리아버지'도 그도 윈윈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