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아이리스, 같은 눈물 다른 느낌?
바람을가르다
2009. 11. 26. 07:41
그동안 위기에 빠진 김현준(이병헌)을 도왔던, '목소리'의 주인공 핵과학자 유정훈(김갑수)이 NSS 조직의 부국장 백산(김영철 )에 의해 제거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아이리스> 13회가 끝났다. 백산에게 얻은 사진만으로 진사우(정준호)는 유정훈의 소재를 알아냈고, 아지트를 급습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 장면은 현준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백산에 대한 복수심을 더욱 자극한다.
흐름상 '목소리'의 살해장면이 13회의 '키'였다면, 김현준과 최승희(김태희) 재회와 극적대립은 또다른 볼거리이자, 아이리스 멜로라인에 분수령이 된다. 사랑하는 이들이 결국엔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을 거란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김태희의 안티? 김태희를 죽일 작정인가?
NSS의 일급보안코드를 알아내기 위해, 도철(장동직)은 현준에게 승희의 고문을 지시한다. 보안코드의 발설과 승희의 목숨이 직결된다는 사실을 아는 현준은, 입을 통해선 일급보안코드를 밝히라고 말하면서도, 손가락을 이용한 수신호를 통해 보안코드에 대해 함구할 것을 주문한다. 일련의 심문과정속에 현준과 승희는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눈물을 삼키는 장면이 13회의 백미다.
그동안 멍연기를 비롯해, 시청자에게 여러차례 연기력을 지적받았던 김태희는, 대사에 실어내는 감정이 완전히 매끄러웠다고 볼 순 없지만, 논란을 비껴갈 정도로 준수했다. 김태희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그렇다. 문제는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김태희에게 잔인할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구사하며, '같은 눈물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절정에 달한 이병헌의 눈물연기는 김태희와의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너무 뛰어나보니 오버페이스라고 비춰질 정도다.
누가 문제일까? 당연히 이병헌을 받쳐주지 못하는 김태희에게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김태희도 훌륭했다. 정준호가 아닌 이병헌과 마주한 것이 비극일 정도로 말이다. 두사람의 연기 틈이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지켜보는 김선화(김소연)의 명연기가 화면을 채우기 때문이다. 현준과 승희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화가, 둘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모습에서, 최대한 절제시킨 김소연의 내공이 오히려 빛난다.
'떡실신'으로 살아난 김태희
연기지적에서 자유로운 김태희 3종세트는,
이병헌과의 사탕키스로 대변되는 '닭살연기', 암바태희로 불리는 '액션연기' 그리고 이번에 보여준 '떡실신연기'였다.
냉정했던 이병헌의 싸대기와 어퍼컷도 좋았지만, 얻어맞고 쓰러지는 김태희의 연기도 칭찬받을 만했다. 김태희는 실신 연기는 A급이었다. 만약 이병헌과 김태희의 눈물삼킨 대사만 흘렀다면, 그녀는 이병헌에게 다시 한번 처절하게 묻혔겠지만, 다행히(?)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얻어 터져주는 바람에, 동정어린 시청자의 시선이 김태희의 연기에 고명처럼 얹어진다.
떡실신연기는, 간만에 호평을 사도 좋을만큼 준수함 이상이었다. 확실히 드라마가 중반 이후를 넘어가면서, 기복심한 김태희의 연기력도 나아지는 느낌이다. 물론 여전히 아쉬움을 안고 있는 최승희지만, 필요할 때 제몫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시청자는 한시간내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다. 드라마에도 템포가 있듯이 시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흘려볼 때와 집중할 때가 다르다. 특히 적으로 만난 이병헌과 김태희간의 심문과정은 시청에 몰입도가 높은 장면이다. 그만큼 디테일을 보기때문에 연기력이 눈에 잡힌다.
이병헌과 김태희는 <아이리스> 명장면 베스트에 꼽힐만큼, 준수한 장면을 연출했다. 자칫 이질감을 줄 수 있던 '같은 눈물 다른 느낌'을 선사한 이병헌과 김태희의 떡실신은 시간차를 두고,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