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한국의 '마릴린 먼로'는?

바람을가르다 2009. 11. 24. 10:21

한국엔 마이클잭슨(정지훈)도 있고, 기무라타쿠야(원빈)도 있다. 마돈나(엄정화)도 있고, 리키 마틴(홍경민)도 있다. 사실 붙여도 그만, 떼도 그만인 해외스타들이 국내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단순히 외모를 넘어 연기 스타일과 스타로서의 성장배경 등 전체를 아우르는 이미지를 닮은 스타도 있다. 성격파 배우 게리올드만을 빗대던 최민식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마릴린 먼로도 있을까? 

20세기 최고의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는 금발에 육감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눈빛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녹였고, 백치미는 판타지를 적절히 허물며 대중속으로 가깝게 파고드는 힘이 되었다. 

생계를 위한 누드모델이 계기가 되어 헐리웃에 입성한 그녀는 갈색머리를 금발로 물들였고, 본명 노마 진 모텐슨을 버리고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을 취한다. 
배역은 주로 B급영화의 단역으로, 모자란 금발여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뒤에 빛을 보는데, 바로 <나이아가라>다. 바람난 유부녀 역을 맡아 섹스심벌다운 포스를 드러냈고, 독특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먼로 워크(Monroe Walk)'를 선보이며 남성들의 로망으로 떠오른다. 같은 해에 출연한〈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는 마릴린 먼로를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중에 한명이었던 뉴욕양키스의 조 디마지오와 결혼했으나 불과 9개월만에 이혼.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빌리 와일더 감독과 함께 한, 영화 <7년만에 외출>이 빅히트를 치며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한다. 여장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마릴린 먼로의 연기는 절정에 달했고,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격찬속에 골든글로브를 거머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상처받기 쉬운 성격의 마릴린은 매스컴의 집요한 추적, 남편에 대한 열등감, 연기에 대한 강박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안을 수면제로 이겨내던 그녀의 후속 작품들은 잇따라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고, ‘약물과다복용’에 의해 37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물론 자살이 아닌 타살 가설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수많은 의혹을 남긴 그녀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마릴린 먼로는 최고의 섹스심벌이었지만, 그녀가 히트시킨 작품들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였다. 백치미에 순수하면서도 섹시한 캐릭터를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한 배우는, 비록 반세기도 못살았지만 한세기를 휩쓸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포스는 강렬했다.


왜 ‘한국의 마릴린 먼로’는 없을까?

언뜻 故 최진실이 연상되기도 한다. 국내에선 마릴린 못지않은 인기와 명성을 누렸고, 평탄치만은 않았던 그녀의 사생활, 이른 시기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닮은 꼴 모양을 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CF로 대중들의 시선을 붙잡았고, 영화 <나의사랑 나의신부>와 드라마 <질투>를 통해 톱스타 반열에 오른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로 장기집권했던 최진실. 마릴린과 비교해 그녀에게 없었던 것은 금발이 아닌 섹시함이다. 마릴린 먼로의 상징.

국내 최고의 섹스심벌은 김혜수다. 김혜수만큼 육감적인 몸매를 바탕으로 섹시함을 어필했던 여배우는 드물다. 영화 <깜보>로 어린 나이에 데뷔한 김혜수에게 한국의 '소피마르소'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글래머스한 몸매를 갖춘  청춘스타 이미지가 얼추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금발에 가슴 큰 여자는 무식하다는 편견의 상징이 마릴린 먼로라면, 김혜수는 백치미보단 똑소리나는 현대여성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이 간다.

마릴린 먼로에 가장 흡사한 배우는 전지현(본명 왕지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유독 안젤리나 졸리가 많다. 액션을 소화하는 여배우들을 모두 안젤리나 졸리로 통일시킨다. 최근 <아이리스>의 김소연의 경우도 그러하다.

전지현은 고교시절 잡지 표지 모델을 계기로, 드라마 <내마음을 뺏어봐>, <해피투게더>의 조연을 거친 뒤,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의 주연을 맡는다. 그러나 그녀를 톱스타에 올린 것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바로 99년 삼성 마이젯 광고CF다.

CF에서 보여줬던 테크노댄스는 섹시하고도 강렬했다. 그녀의 댄스연습과정이 담긴 동영상은 넷상을 지배했고, 볼륨감이 넘치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대한민국 남성팬들은 열광했다. CF 한편이 ‘한국의 마릴린 먼로’를 탄생시킨 것이다. 당시 전지현의 가슴은 티슈가 써포트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 따르기도 했지만, 뇌쇄적인 눈빛과 섹시한 퍼포먼스로 충분히 용서가 됐다.


여기에 다소 어설픈 백치미까지 갖추었던 스타가 전지현이다. 데뷔 때부터 '신비주의'를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조리있지 못한 그녀의 화술에 있다. 뭔가 모자라 보이는 4차원적인 사고. 엉뚱함을 종종 드러내던 그녀는 섹시함이 담보된 백치미가 흘렀다. 마릴린 먼로의 섹시함과 백치미가 있었지만, 전자는 취하고, 후자는 '신비'라는 틀속에 숨겼다.    

그러나 마릴린 먼로와 다르게, CF를 제외하곤 출연작 대부분이 참패를 거듭했다. <4인용 식탁>, <데이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그리고 여전사의 이미지를 굳힌 최근작 <블러드>까지.

전지현은 정통 멜로나 호러, 액션보단, 흥행에 성공했던 <엽기적인 그녀>나 <여친소>가 잘 맞는 옷이다. 대중들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전지현을 감당하기 보단, 로맨틱 코미디에서 빛이 났던 그녀를 소화할 수 있었다. 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장점이었던 섹시함과 백치미가 적절히 조화된 캐릭터를 거듭하면서 만인의 연인으로 오랜기간 사랑받았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전지현은 인기의 모태가 된 섹시함을 버리고 청순함을 찾았다. 청순미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여전사로 턴해보지만, 어설펐던 작품도 그녀도 윈윈하지 못했다. 한국의 ‘마릴린 먼로’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매번 스스로 차버렸던 전지현. CF속에 갇혀 버린 스타. 인기란 건 영원하지 않다. 대중들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스타를 섭외하고 있다.

개성이 중요한 시대에 굳이 마릴린 먼로를 닮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마릴린과 같은 슈퍼스타를 기대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의 마릴린 먼로 = ?’ 물음표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