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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히어로’, 1%의 도박?

바람을가르다 2009. 11. 19. 08:16

이준기 주연의 MBC 새수목드라마 <히어로>가 18일 첫방송을 탔다. 시종일관 유쾌한 톤을 유지하며,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맞물려 깔끔한 스타트를 끊었다.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히어로>에 대한 기대치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주요출연진의 1회 성적표는?

<일지매>이후 1년여 만에 <히어로>로 돌아온 이준기는, 좌충우돌 삼류신문 열혈기자 진도혁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이준기가 <개늑시>와 <일지매>에서 보여줬던 캐릭터와 상반된 진도혁은  코믹하고도 능청스러웠다. 이를 무리없이 소화하는 이준기의 팔색조 표정 연기속에, 앞으로 그의 활약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누나에게 뒷통수를 얻어맞고, 격하게 화내며 짜증낼 수 있는 상황을, 이준기스럽게(?) 불만을 쏟아내는 모습이 밉지 않았다.

백윤식(조용덕)은 15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쌍도끼파 두목을, 그만의 특유한 색깔에 녹여냄으로써 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대세일보 사주와의 악연으로, 억울하게 교도소에서 15년을 썩었던 ‘올드보이’ 조용덕. 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조선시대 선비인양, 변해버린 문명의 이기앞에 당황하며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준기와 대립각을 세웠던 대세일보 기자 엄기준(강해성)에게선 <공공의적> 정준호의 향기가 묻어난다. 탐욕이 가득한 인텔리의 모습을 냉정하고 절제 있게 표현하는 연기가 돋보였다. 반면, 김민정의 대타로 합류한 윤소이(주재인)는 아직 몸이 덜 풀린 듯 보였다. <굿바이솔로> 등에서 보여줬던 연기는 아니었다. 워낙 뒤늦게 합류한 터라, 점차 나아질 것으로 사료된다.

이준기의 ‘히어로’, 1%의 도박?

드라마 <히어로>는 가진 것이라곤 의욕뿐인 하자 투성의 인생들이,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권력을 남용하고 부패를 일삼는 잘못된 1%와 맞서는 이야기다.

파파라치에 불과했던 진도혁(이준기)은 ‘먼데이서울’마저 폐간되자, 조용덕(백윤식)이 급조해서 차린 ‘용덕일보’의 기자가 된다. ‘용덕일보’라고 해서 ‘먼데이서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거대신문사 대세일보와 비교자체가 불가하다. 그러나 ‘용덕일보’에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 99%의 진도혁이 있고, 그를 지지하는 조용덕이 있다. 여기에 경찰서 강력반 팀장 주재인이 가세해, 강해성으로 대변되는 부패한 1%에 맞선다.

조폭 두목이 차린 용덕일보. 삼류신문사라고 부르기도 힘든 열악한 환경속에서 거대신문사 대세일보와 파워게임을 벌인다. 그리고 대세일보는 정재계는 물론 법조계까지 뒤를 받치는 커넥션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골리앗과 소시민 열혈기자 다윗 진도혁의 싸움이다. 단순히 부패한 1%와 맞서는 것이 아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1%의 현실성과 다윗이 승리할 1%의 가능성을 담았다.

도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준기의 <히어로>는 200억을 쏟아부은 이병헌의 <아이리스>를 상대해야 하고, 장근석의 <미남이시네요>와 만나야 한다. 드라마의 숙명인 시청률과의 싸움이다. 30%를 돌파한 <아이리스>와 10%를 넘어선 <미남이시네요>. <맨땅에 헤딩>을 조기에 끌어내리고 <히어로>를 투입하는 강수를 두었다. 여기엔 이준기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타이밍이 안 좋다. <아이리스>는 이미 산중턱에 올라섰다. 이제 막 산에 오르는 <히어로>가 그들을 따라잡기엔 벅찰 수밖에 없다. 거대해진 골리앗 <아이리스>를 잡는다는 건 1%의 승리 확률을 담보로 하는 도박과도 같다. 그래서 오히려 지켜보면 흥미롭다. <히어로>의 이준기가 거대신문사 대세일보뿐 아니라, 거대해진 드라마 <아이리스>와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서 접근하면 그러하다. <히어로>의 스토리처럼 시청률경쟁이 이뤄진다면 재밌지 않겠나 싶다. 

분명한 건 <히어로>의 첫방송은 ‘0%’가 아닌 ‘1%’의 가능성을 쐈다는 점이다. 맨땅에 제로가 아닌 ‘1’은 더해질 수도 있지만 곱해질 수도 있는 숫자다. 그리고 '1'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이준기의 존재감이다. 물론 백윤식을 비롯한 여타 출연진들의 호연도 어울렸고, 첫방송의 내용도 준수했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시너지를 내려면 구심점이 필요하다. <아이리스>의 이병헌처럼.

연기만큼은 에이스 카드 이준기가 <히어로>를 살린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1%의 도박같은 스토리는 계속되고, ‘먼데이서울’의 폐간과 함께 ‘용덕일보’가 탄생하는 2회를 지켜보면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