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골병드는 김태희와 김소연, 여배우의 숙명?

바람을가르다 2009. 11. 13. 13:00
12일 방송된 <아이리스>는 시종일관 액션씬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특히 효도르를 연상시키는 김태희(최승희)의 암바연기는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졌던 연기논란을 꺽어버린 투혼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화끈하고 아름다웠다.
 
'멍태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부족한 연기력을 온몸 던져 일궈낸 '암바태희'속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한 여배우의 얼굴이 담겨 있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김소연(김선화)도 마찬가지다. 촬영도중 인대가 끊어졌을 정도로 거친 액션을 소화해야 했던 그녀는, 수시로 남자들과 맞서면서 여전사의 이미지를 굳혔다. 
<아이리스>의 김태희와 김소연은 기존 여배우들을 뛰어 넘는 액션을 하고 있는걸까?

언뜻보면 수컷세계에 살아남기 위한 우먼 액션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포장을 한 커플 벗겨내면 머리채를 잡아채던 기존의 여배우들과 별 차이가 없다. 권총은 그녀들에게 귀걸이 정도의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온몸을 던지고 맨주먹으로 맞서야 브라운관에 살아남는 안쓰러움이 존재한다.

그럴듯한 총격씬이나 기발한 아이템은 이병헌(김현준)과 정준호(진사우)의 몫이다. 여배우들이 치열하게 온몸 불사르며 겉절이 액션을 보여줄 때, 남자배우들의 숙성된 액션을 잡아내기 위해 카메라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두 눈 부릅뜨고 적당히 권총을 비틀어 잡으며 깔끔하게 분위기를 연출한다. 김태희와 김소연의 총구에 쓰러진 남자들은 없지만, 이병헌과 정준호, 심지어 김승우의 권총세레모니에도 피흘리는 엑스트라는 쏟아진다.

요원 최승희와 김선화에게 있어 총이라는 무기는 사랑하는 남자 김현준을 겨누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김태희의 암바마저 없었다면 액션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도 낯뜨거울 정도다. 여배우들을 망가뜨려야 액션이 산다고 착각하는 제작진 덕분에 죽어라 마음고생, 몸고생을 해봐도 남는 건 굴욕사진밖에 없다.  

첩보 액션 멜로 <아이리스>에서 여배우들의 액션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지끔껏 김태희와 김소연의 액션만큼은 이병헌을 포함한 남자배우들 이상가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녀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진화된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세련미 찾기 힘든 투박함이 존재했던 지난 날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속 여배우들을 답습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여자vs여자의 구도를 깨고, 최승희와 김선화가 남성들과 맞서 싸우는 차별화를 가져온 것 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남자가 여자와 맞짱을 뜬다는 건 현실에선 용납하기 힘들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의 막장드라마에선 남자가 가해자가 되지만, 액션물에선 다르다. 남자, 여자를 떠나 적과 동지로 나누고 치고 받는다. <아이리스>의 경우, 기존의 공식을 깨고 김태희와 김소연은 참 많이 맞았다. 특히 김선화(김소연)는 눈뜨고 보기 힘들정도로 처절하게 짓밟히는 모습도 자주 노출된다.

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한 것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김태희와 김소연은 맨주먹으로 맞서 싸우며 온몸을 내던지는 데, 남자들은 한가롭게 권총들고 온갖 포즈를 다 잡는다. 실질적인 액션은 주로 여배우들이 담당하고, 그림이 될 만한 장면은 남자배우들이 독차지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골병드는 김태희와 김소연의 투혼이 없었다면, 이병헌과 정준호의 총격씬을 비롯한 액션은 살지 못하는 아이리스의 아이러니. 

그 옛날 <사랑을 그대품안에>에 차인표가 헬멧으로 차유리를 박살낸 효율적인 한컷과 늘상 머리채를 잡아끄는 여배우간에 비효율의 상투성이 <아이리스>속에 그대로 재현된다. 여배우들의 액션은 분명 치열하게 진화됐으나, 캐릭터를 표현하는 연출과 각본은 진화되지 못했다. 김태희의 눈부신 암바를 지켜보며 한편으론 씁쓸한 이유다. 그나마 마지막에 김태희가 이병헌을 권총으로 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면 정말 슬펐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