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루저의 난', 위험한 패러디!

바람을가르다 2009. 11. 12. 06:00

"남자의 키는 경쟁력이다. 남자 키 180cm이하는 루저(Loser)!"

KBS예능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여대생 이모양이 지난 9일 방송분에서 뱉은 발언이다. 이를 두고 대한민국 키작은 남자들을 비하했다는 이모양을 비롯, 같은 연장선에 발언을 한 문모양 등 참여한 여대생 패널들이 도마위에 올라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는 형국이며, 이를 조장한 <미수다>에는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일명 "루저의 난"이라는 UCC와 이미지 등 패러디가 봇물처럼 넷상에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방송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이모양과 이를 내보낸 <미수다>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자칫 "루저 신드롬"으로 확산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루저와 위너라는 경계선을 나누고 그에 따른 이분적 잣대를 재미삼아 혹은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다루다보면, 하나의 현상내지 팩트처럼 굳어진다. 키작은 남자에게 '호빗'이란 비하도 모자라 루저라는 멍에까지 씌우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비단 '키'뿐 이겠는가. 외모, 학벌, 직업, 연봉 등 붙이기만 하면 루저와 위너로 나눌 수 있고,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루저들을 양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설사 본인이 그렇게 생각치 않는다고 자부해도, 사람들 모인 곳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오르다보면 종종 쓸데없이 의식하게 되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넷상에서야 동종 집단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오프라인으로 옮겨 가면 루저라는 기준점을 의식하는 한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키 180cm이하는 루저라는 말이 과연 어느정도의 설득력을 갖길래?

대한민국 성인 남자의 평균키 173.2cm 라고 한다. 이모양에 따르면, 대한민국 평균, 보통남자들은 전부 루저다. 상식적으로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고, 사견일 뿐이다. 물론 그녀를 괘씸하게 여기거나, 개념없는 된장녀로 보는 것도, 혹은 맞장구를 치는 것도 브라운관이든 온라인상에서든 받아들이는 개인의 몫이다. 다만 경솔했던 그녀의 발언을, 여성부 장관의 발언인 양 흡수하고 소화하면 아플 수밖에 없다. 굳이 음식을 썩혀서 먹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썩었다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 말해, 이모양은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한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 것도 왜곡을 한 것도 아니다. 적어도 그녀 본인에게는 솔직했다. 이것을 마치 범죄자인양 몰아세우는 것은 옳은가 묻고 싶다. 방송에 출연했기 때문에 말을 가려야 한다면, 가식적이거나 거짓을 대변하는 출연자만 존재해야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너무 인색하다.
물론 "싫다"가 아닌 "루저"라는 자극적이고 몰상식한 발언을 함으로써, 수많은 대중들에게 불쾌함내지 분노를 산 것은 그녀의 책임이 맞다. 그렇다고  절대 다수가 한 사람을 사각에 몰아넣고 공개적으로 침을 뱉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신상정보를 해킹하고 넷상에 올리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외면하는 것도 비겁하다. 오히려 현행법에 따르면 이것이 범죄가 아닌가.  

평소에는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는 이지메(왕따)를 경계하면서도, 온라인상에선 본인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롭다. 이모양이 나에게 꽂은 바늘이 아팠다고, 그녀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면 땀구멍에 하나씩 꽂아야 될 판이다. 다수이기 때문에 소수에게 힘을 과시하기 보단, 밉지만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아량도 필요하다. 지난 날 2PM의 재범처럼 상처를 주고 떠나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현재 마녀가 된 그녀들은 넷심을 단결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넷상은 기발한 패러디가 넘치며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루저의 난"과 같은 패러디야 말로, 루저라는 말을 뱉은 여대생보다 위험한 행태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풍자와 조롱을 품고 있지만, 그 속에는 "키 작은 남자=루저"라는 단어를 각인시키는 내용물을 담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웃을 수 있지만, 앞으로 그보다 더한 피곤함을 동반하게 되있다. 특히나 키 작은 남자들에겐 더욱 말이다. 
확대 재생산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일부 된장녀를 솎아낸다는 명목아래 '난(亂)'을 일으키는 것이 과연 키 작은 남자의 위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싶다. "루저"라는 단어를 패러디로 활성화시키고, 키작은 남자를 비하하는 아이콘으로 정착시키는 단계에 이른다면, 오히려 쥐 한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루저"라는 단어가 신드롬처럼 번지는 이 시점에, 패러디는 콤플렉스를 키우는 덩어리에 불과하다. 혹을 떼기 위한 발로가 혹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루저"라는 단어로 이슈를 이어가는 결과물을 만들기 보단, 넷상에서 추방하려는 자정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