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 왜 ‘칭찬합시다’가 생각날까?
최근 JTBC예능의 기세가 무섭다. 시사예능 ‘썰전’을 필두로 ‘팬텀싱어’, ‘아는 형님’,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 등 지상파를 위협하는 시청률로 예능판에서 만큼은 확실히 두각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식큐멘터리 예능 이경규-강호동의 ‘한끼줍쇼’ 인기는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2주전 설현이 게스트로 나온 서래마을 편이 시청률 5%를 넘더니, 어제 방송한 김종민-성소 게스트의 연희동 편 역시 5%를 훌쩍 넘으며 수요 예능의 터줏대감 MBC ‘라디오스타’를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끼줍쇼’의 어떤 점이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일까.
지난 연말에 ‘무한도전’에서 ‘칭찬합시다’ 특집을 했었다. ‘칭찬합시다’는 90년대 말에 히트한 MBC 예능프로그램이다. 당시 PD가 ‘양심냉장고’, ‘느낌표’ 등 공익예능의 트렌드를 낳은 김영희PD였고, MC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톱 연예인으로 꼽힌 김국진과 그의 절친이자 파트너 김용만이었다. 그렇게 ‘칭찬합시다’는 흥할 수밖에 없는 사단이 만들어낸 대박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익예능의 붐이 일고, 김국진과 같은 국민MC를 내세운다고 해서 다 흥하는 건 아니다. ‘칭찬합시다’가 왜 기획됐는가, 왜 호응을 얻었는가에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바로 90년대는 ‘칭찬’과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 ‘표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대개 ‘칭찬’에 인색하다고들 했다. 칭찬뿐 아니라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런데 IMF까지 터졌다. 힘들고 지치고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삶속에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주위에 대한 배려였다. 그 안에서 위로도, 용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랄까. 즉 ‘칭찬합시다’는 시대가, 사회가 필요로 한 것을 찾았고 대중은 공감했다.
‘한끼줍쇼’에서 ‘칭찬합시다’를 보았다. ‘한끼줍쇼’는 이경규와 강호동이 서울의 어느 가정집을 찾는다. 약속도 없고 예고도 없다. 무작정 벨을 누르고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없겠냐고 제안을 한다. 쉽게 말해 구걸이다. 아무리 방송에 나오는 유명연예인이라도 아무런 약속도 없이 집에 찾아와 밥을 달라고 하고, 방송을 찍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하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이경규와 강호동 그리고 게스트들은 실패를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엔 인심 후한 집을 찾게 되고, 정이 넘치는 따뜻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데 성공한다.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은 이경규와 강호동의 제안에 흔쾌히 허락하고 저녁식사를 대접한 가족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칭찬합시다’가 칭찬주인공을 정하고 그 주인공을 찾아갔다면, ‘한끼줍쇼’엔 칭찬주인공이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어주고 저녁식사를 대접하면 누구나 칭찬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90년대가 표현과 칭찬에 인색했다면, 지금은 ‘사람’ 자체에 대해 인색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반문도 하게 된다. 낯선 사람의 ‘제안’이나 ‘도움’에 인색할 뿐 아니라, 경계심부터 드러내는 사회적 분위기를 쉽게 엿볼 수 있다. 실제 주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괜히 엮여봤자 손해볼 일만 생기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한끼줍쇼’는 우리 사회에 결핍된 부분을 은연중에 꼬집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끼줍쇼’는 희망적이다. 그들이 찾는 동네마다 매번 문을 열어주고 따뜻한 밥 한끼에 정을 나누는 이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입장에선 내가 대접한 건 아니지만 괜히 뿌듯해지는, 일종의 대리만족마저 느낄 수 있다. 우리 이웃들중엔 정이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생각이상으로 많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예능으로써 ‘한끼줍쇼’도 합격점이다. ‘양심냉장고’ 이경규는 공익예능의 포인트를 잘 짚는다. 때문에 가정집에 벨을 누르는 시점부터 집에 들어가 해당 가족과 질문하고 소통하는 부분 등에서 굉장히 센스가 넘친다. 일반 시민들과의 소통에 강점을 가진 강호동은 말할 것도 없다. 소통에 있어 선굵은 이경규와 섬세한 강호동의 조합은 빛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매번 바뀌는 게스트들은 프로그램에 충분한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한끼줍쇼’ 이경규-강호동 조합은 ‘칭찬합시다’ 김국진-김용만 조합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돌발행동을 서슴지 않던 김국진을 김용만이 잘 받아주면서 잔재미를 이끌었다면,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진 이경규와 강호동은 서로 안 받아주면서도 의외의 재미와 케미를 낳고 있다. 또 당시 김국진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반면 김용만은 젠틀한 진행실력에도 불구하고 매번 하는 프로그램마다 조기종영의 쓴맛을 보았는데, ‘칭찬합시다’이후로 김용만은 승승장구했다. ‘한끼줍쇼’ 이경규와 강호동 또한 최근 지상파에서 힘을 쓰지 못했지만, ‘한끼줍쇼’나 ‘아는 형님’ 등 종편예능을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한끼줍쇼’에서 만난 이웃들은 어떤가. 서래마을이나 이태원에서 만난 중년의 부부에게서도, 목동에서 만난 젊은 부부에게서도 화목함 이상의 유쾌함을 선물받았다. 포복절도하게 만든 봉천동 서울대 덕후, ‘G선상의 아리아’로 감동을 주었던 청담동 반지하 무명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도 ‘한끼줍쇼’가 낳은 보물같은 에피소드다. 그렇게 다양한 계층에 약속되지 않은 식구들과의 만남과 기대이상의 에피소드는 ‘한끼줍쇼’가 예능으로써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무엇보다 과거 ‘칭찬합시다’가 그랬듯이, ‘한끼줍쇼’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단면속에, 어떤 시사프로그램도 공감가게 담아내지 못하는 질문과 답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다. 과거보다 편리해졌으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 곳곳에 갈등 요소가 만연해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은 개인주의로 향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경규와 강호동은 숟가락 하나로 소통하며 식단을 채워 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한 ‘믿음’, ‘배려’, ‘정’ 그리고 ‘위로’와 ‘웃음’같은 따뜻한 밥한끼를 닮은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