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버라이어티 홍수 속, 강호동과 유재석
현재 대한민국 예능은 <1박2일>,<무한도전>,<패떴> 등과 같은 리얼버라이어티와 <세바퀴>,<해피투게더>,<무릎팍도사> 등과 같은 토크버라이어티로 양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이 두가지 장르가 예능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일은 토크버라이어티 일색이며, 주말은 리얼버라이어티가 장악하고 있다.
토크버라이어티의 경우, 최근 <놀러와>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야심만만2>는 간판을 내렸으나, 바닥을 기는 <미수다>는 여전히 월요일을 지키고 있다. 화요일은 <강심장>과 <상상플러스>, 수요일은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라디오스타>, 목요일은 <해피투게더>, 금요일은 <절친노트>, <자기야>가 방송되며, 토요일은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세바퀴>와 <샴페인>. 만약 <박중훈쇼>가 버티고 있었다면 일주일내내 토크쇼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진행자, 패널, 게스트로 구성된다. 프로그램마다 형식과 스타일은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토크쇼라는 태생적 한계는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가 채널선택에 있어 가장 눈여겨보는 게 바로 출연진이다. 메인MC가 누구인가와 그날의 게스트.
한 때 토크버라이어티가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던 것은 일주일동안 나오는 게스트가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영화개봉이나 드라마, 음반발매에 맞춰 홍보를 위해 배우나 가수들이 각방송사의 간판토크쇼에 출연하며 일주일내내 앵무새같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진행자만 바뀌었을 뿐 재방송을 보는 듯 했다.
여전히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나 현저하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미녀들의 수다>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지금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나, 한 때 월요일의 강자로 우뚝설 수 있었던 것은 출연진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열여섯명의 젊은 외국인 여성들로 한정짓고 그들의 보고 느낀 한국에 대한 이야기로 컨셉을 잡아 대박을 쳤다고 볼 수 있다.
<놀러와>와 <야심만만2>가 <미수다>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변화를 시도한 것도 이 무렵이다. 기존에 영화나 음반 홍보의 장에서 벗어나 ‘AB 혈액형을 가진 스타’, ‘최고의 악역스타’식으로 주제에 정하고 그에 맞는 게스트를 패키지로 묶어 섭외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식상해지기 시작한 <미수다>를 녹다운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미수다>의 성공사례는 여타 토크프로그램에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현재 아줌마들이 중심이 된 <세바퀴>나 스타의 자녀를 내세운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스타부부들의 토크쇼 <자기야> 등 고정패널과 게스트를 컨셉에 맞게 패키지화시키면서 차별화를 꾀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이러한 형태는 두드러질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진행자인 MC는 어떤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토크쇼에 가장 이상적인 MC는 유재석이 꼽힌다. 배려의 아이콘으로 게스트나 패널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탁월한 조율을 선보인다는 점이 부각된다. 반대로 강호동은 토크쇼와 어울리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의외로 많다. 물론 <무릎팍도사>는 강호동이 아니면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야심만만>이나 <강심장>과 같은 집단 토크쇼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게스트를 다룸에 있어 동화에 종종 비유한다. 유재석은 햇님으로 묘사된다. 따뜻한 햇살을 비추듯 게스트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반면, 강호동은 바람처럼 차갑고 거세게 몰아부쳐 억지로 옷을 벗기려 든다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시청자에게 이와같이 비춰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한 것인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시청자가 무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게스트는 진행자가 유재석이든, 강호동이든, 신동엽이든, 누가 되던 간에 준비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제작진, 주로 작가가 사전에 게스트에게 미리 인터뷰를 따온 것을 바탕으로 녹화가 진행된다. 제작진과 게스트가 녹화 전에 선별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MC 역시 사전에 이를 숙지한 상태에서 손에 쥔 큐시트를 바탕으로 게스트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예를 들어 “최근에 XX 일이 있으셨다면서요?”, “고등학교 때 가출했다가 친구한테 맞았다는 건 무슨 얘기죠?” 와 같이 사전에 얘기하기로 되어 있는 에피소드를 카메라앞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다. 유재석이 햇님이든 바람이든 사전합의에 따라 게스트는 옷을 벗게 되있다.
강호동이 윽박질러서 게스트가 에피소드를 토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절차를 밟는 과정이다. 단지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과정에 MC나 패널들은 캐릭터를 바탕으로 일종의 상황극을 넣는다. 근데 이것을 외면한 채 마치 강호동은 게스트를 압박해서 하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하게끔 만든다고 비판한다. 틀린 지적이다. 그러한 캐릭터가 싫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토크쇼가 진화한 것중에 하나가 진행자와 게스트간에 딱딱한 질문과 대답에서 벗어나, MC를 비롯한 출연진에게 캐릭터를 씌우고 과정에 스토리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답변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 드라마와 같이 여러가지 포장을 한다. 게스트의 답변이 생각보다 재미가 없으면 편집되지만, 답변을 끌어내는 과정이 재밌으면 살려둔다. MC와 고정패널들은 과정을 살리기 위해 재치와 웃음의 기술을 넣는다. 종종 무리수를 두기도 하지만, 네다섯시간의 녹화시간동안 한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위해 양질의 분량을 뽑는 과정을 반복한다.
최근 이어진 <강심장>의 병풍게스트 논란도 1차적으로 게스트가 꺼냈던 에피소드가 재미가 없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MC와 출연진들의 액션과 리액션이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떨어질 경우 편집이 된 것이다. 다섯시간 가량의 녹화분량중에 네시간을 짤라내고 엑기스를 시청자에게 내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병풍게스트는 분명 시청자를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게스트를 위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신선하지 않거나 재미가 떨어지는 게스트의 이야기까지 일일이 들어주는 루즈함을 겪기보단, 보다 흥미롭다거나 공감이 가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한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 나눠먹기식으로 토크가 진행되면 재미는 반감된다. 물론 편집권한이 제작진에게 부여되다보니 실수 혹은 편파적으로 비춰지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강심장>이 현재 병풍게스트를 낳는 것을 무조건 비판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차후 출연하는 게스트들간에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게스트는 시청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보다 솔직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준비해야 병풍이 되지 않고, 편집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숙지하고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게스트가 병풍이 되길 바라겠는가. 게스트에게도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적어도 <강심장>에서 병풍게스트는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강심장>의 게스트가 현재보다 줄어들고, 병풍논란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강하고 독한 토크가 살아남는 컨셉은 죽는다. 다시 <야심만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강호동은 유재석의 <놀러와>와 <해피투게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관계가 없다고 말들 하지만, 컨셉이 비슷한 토크쇼를 진행하면 결국은 최고를 다투는 두 사람을 다시금 비교하게 될 것이다. 현재 강호동은 <무릎팍도사>와 <강심장>의 극과 극 게스트를 상대하면서, 유재석의 <놀러와>나 <해피투게더>와 차별을 두며 불필요한 논란에서 비켜 나가 있다.
분명 같은 장르의 토크쇼를 하고 있는 유재석과 강호동은, 진행에 있어 장단점이 있고,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본인들의 이미지에 맞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토크쇼를 진행하며, 이를 통해 게스트와 사전에 약속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재석이기 때문에 혹은 강호동이기 때문에 게스트가 더 얘기하고 덜 얘기하는 것이 아닌, 녹화전에 이뤄진 제작진과 MC, 게스트의 약속이란 점이다. 이러한 약속이 담보되지 않으면 녹화시간은 지금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으며 스튜디오는 어수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강심장>이 아닌 <유심장>을 맡았다면, 진행의 유연함이 드러날 지는 모르나 그도 병풍게스트를 만들 수밖에 없다. 게스트로 차별을 둔 <강심장>의 문제는 병풍이 아닌 토크 순서의 배치다. 게스트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를 아는 제작진이 게스트의 발언 순서를 미리 정한다는 점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을 앞에 배치하고, 훈훈한 이야기를 뒤에 배치한다. MC는 이러한 계획에 맞춰 진행을 한다. 그러다보니 작위적인 냄새가 나고, 토크왕의 순도가 떨어진다. 이런 점이 SBS제작진이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듣는 배경이다. 보편적인 룰을 쫓다보니, 재미는 있으되 반전이 없고 식상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재 토크버라이어티의 홍수속에서, 프로그램은 컨텐츠가 아닌 게스트로 차별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MC와 출연진은 캐릭터로 변화를 도모한다. 이렇듯 무난함을 쫓다보니, 복제토크쇼가 난무하고 당연히 진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시청자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특정 프로그램의 잘못이 아니라, 모든 토크프로그램이 겪는 아이디어의 부재이다.
<미수다>와 같이 변곡점을 찍어줄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 한, 현재의 초록동색같은 토크쇼의 과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내용물이 아닌 간판으로 새단장을 꾀하는 예능국은 유재석, 강호동과 같은 특급 MC들을 잡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