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박정아, 제대로 알고 비난하는 건가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이정철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에 세트스코어 1-3 (19-25 14-25 25-23 20-25)으로 패배했다. 4강 진출이 좌절되면서 기대했던 메달도 무산됐다. 그래서일까. 경기를 지켜 본 많은 네티즌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선수들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언론 등을 통해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된 박정아 선수에 대한 비난은 도를 넘어선 상황이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을 복기해보자. 무엇이 가장 문제였나. 바로 배구의 기본, 공격의 시발점, ‘리시브’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안정된 리시브로 공이 올라와야 세터 이효희나 염혜선이 다양한 공격루트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서브리시브는 불안했고, 때문에 세터들은 주로 김연경을 비롯한 공격수들의 오픈공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블로킹이 예상하는 코스로 세터들은 공을 올리기 급급했다. 결과는 키가 큰 네덜란드 선수들의 블로킹에 번번이 막히며 점수를 내줘야했다. 그뿐인가. 리시브가 제대로 안 돼서 서브득점을 수차례 내주었다.
그렇다. 리시브가 안 됐다. 기본이 안 되니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리시브라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질책이 더 아픈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정아가 있었기에 인신공격수준의 비난이 그녀에게 쏠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박정아선수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다. 언론을 비롯해, 바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객관적인 눈높이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력의 왜곡이 낳은 결과물이 선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형국아닌가.
먼저 부진한 박정아 선수를 왜 빼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많은데, 배구에서 리시브는 주로 포지션이 레프트인 선수와 리베로가 전담한다. 그래서 한국은 리베로 김해란과 레프트 김연경, 박정아, 이재영이 대부분의 리시브를 받아냈다. 주전 레프트 한자리를 김연경이 맡고 있어서 박정아와 이재영이 번갈아 투입됐다. 즉 박정아 아니면 이재영이, 김연경-김해란과 리시브를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정아가 빠지고 이재영이 들어간 1세트 중반부터 2세트까지의 경기력은 어땠는가. 2세트 점수 ‘14-25’가 말해주듯, 눈뜨고 못볼 수준의 경기력을 보였다. 리시브가 전혀 안 됐다. 그러니 공격다운 공격도 못하고 세트를 내주었다.
그만큼 이재영의 리시브가 많이 불안했다. 아직은 어려서인지, 국제대회 경험부족인지, 이번 올림픽에선 눈에 띠게 안 좋았다. 브라질과 러시아전에서도 그랬었다. 서브득점도 많이 내주었고, 올리는 공도 죄다 불안불안. 네덜란드전에서 이재영은 공격으로 점수를 몇 번 내기도 했지만, 역시나 리시브불안으로 어이없이 내주는 점수가 너무 많았다. 그러니 그나마 리시브가 나은 박정아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 3세트부터 박정아가 들어가 그나마 리시브가 안정됐고 대등한 경기, 세트마저 가져오지 않았던가.
고육지책. 이정철 감독도 박정아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단 얘기다. 리시브가 안 되는 이재영을 쓰고 경기를 포기하는 게 정상인가. 이재영 한 명이 흔들리면 김연경을 비롯한 리시브라인 전체가 흔들리는 걸, 특히 처참했던 2세트에서 눈뜨고 확인했으니 더욱 말이다. 경기를 포기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라면 어린 이재영을 투입해 경험을 쌓게 만드는 게 맞았지만, 4세트를 포기하지 않고 추격하는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리시브가 안정된 박정아를 쓰는 게 그나마 최선이었다. 박정아가 이정철 감독의 소속팀 선수라서 고집한 게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대표팀 붙박이 라이트 김희진선수가 조금만 부진해도 황연주와 자주 바꿔준 걸 보면, 이정철 감독이 소속팀 선수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 애쓰는 교체로 보일 정도였다. 리베로에 남지연대신 김해란만 고집하는 점에서도, 과연 이정철감독이 소속팀 선수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박정아를 고집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 부분인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즉 이정철 감독은 ‘실력’위주의 선수기용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 실력이다. 모든 게 실력으로 설명이 된다. 네덜란드보다 실력이 안 되서 진 것 뿐이다. 실력이 안 되는 데 이기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네덜란드는 절대 약체가 아니다. 우승후보 미국과 2:3 접전 끝에 패한 팀이다. 또 다른 메달 후보인 강호 중국과 세르비아를 누르고 8강에 올라온 팀이다. 반면 한국은 브라질과 러시아에 완패를 당했다. 브라질은 우승후보라지만, 러시아에게도 상대가 안 됐다. 그만큼 이미 실력이, 그 차이가 다 드러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무슨 근자감인지, 언론은 꾸준히 메달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한국이 네덜란드를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메달을 강조하는 일부 한국기자들과 배구 룰도 잘 모르고 평소 여자배구엔 별 관심없지만 세계적인 공격수 김연경은 아는 정도인, 올림픽에서 애국심만큼은 금메달감인 국민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즉 객관적인 전력은 무시한 채 정신력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쌍팔년도 마인드라면, 이번 여자배구 경기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선수 하나 머리채 잡고 욕이라도 해야 분이 풀리는 지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올림픽에 나간 선수를 비판도 아닌 비난과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가. 심지어 박정아선수의 사적인 공간, 인스타그램까지 찾아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선수가 일부러 못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실력이 그 정도인데, 실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게 과연 적절한가. 선수 본인이 느꼈을 자괴감, 아쉬움은 보이질 않는가. 애초 세계랭킹 9위팀에게 동메달 이상을 바라는 게 정상인가. 그냥 즐기면 안 되는가. 김연경만으로, 한국이 넘어서기엔 벅찬 상대들을 이기고 메달을 딸 수 있다고 기대한 게 오히려 미안하고 민망하지 않은가. 그만큼 개인전이 아닌 구기종목, 배구에서의 이변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아 선수는 물론, 여자배구선수들을 비난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니 말아야 한다. 네덜란드전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김연경 혼자했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경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력으로 네덜란드에 졌을 뿐이다. 죽기살기로 하면, 투혼을 불사르면 이길 수 있을까. 그럼 상대인 네덜란드는 죽기 살기로 안할까. 네덜란드 배구팀은 올림픽에 관광왔나. 사실 올림픽 8강도 잘한 것이다. 남자배구를 봐라. 세계 수준과는 격차가 뚜렷해 올림픽은 구경도 못하는 실정이다. 배구와 함께 겨울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농구는 어떤가. 남자, 여자 모두 올림픽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특히 국내에서 인기 좋은 남자농구는 올림픽출전이 기적일 만큼, 예나 지금이나 올림픽은 아예 꿈도 못꾸는 실력이다. 그와중에 여자배구는 매번 올림픽에 꾸준히 출전중이며, 기자들이 메달 설레발이라도 칠 수 있을만한 실력은 된다는 게 어디인가. 난적 일본을 누르고 조별예선도 통과했다. 8강전 결과가 아쉽지만 수고했다고, 올림픽을 준비하며 고생한 선수들에게 박수와 격려가 따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수를 마녀사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