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차승원의 폭발, 이연희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MBC 월화드라마 ‘화정’은 올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이유로는 ‘이산’, ‘동이’, ‘마의’ 등 다수의 히트작을 써낸 김이영 작가에, 예능 ‘삼시세끼’를 통해 최근 가장 핫한 남자로 떠오른 차승원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사극으로 시청자를 공략하는 법을 매우 잘 아는 작가가 있고, 높은 호감도에 연기력까지 담보된 배우가 극 중심에 있다. 드라마를 보기도 전에 ‘성공적’이란 단어부터 생각날 수밖에. 그리고 13일 ‘화정’이 첫방송됐다.
역시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다. 50부작임에도 불구하고 늘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속도감있는 전개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힘과 매력이 넘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또 한번의 변신을 꿈꾸는 명품배우 차승원이 있었다.
드라마 화정의 주인공 광해군으로 등장하는 차승원은 낯설기 짝이 없다. 올곧은 것 같지만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 순한 것 같지만 의기소침한 모습속에서 무능력한 세자를 발견하게 된다. 거칠지만 늘 자신감에 넘쳤던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차승원이기에 폭군이 아닌 광해, ‘화정’ 1회 속 나약한 광해 차승원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런 차승원이 1회 말미에 변화를 구한다. 폭군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며 드라마틱한 반전을 부른다. 아버지 선조(박영규)의 죽음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광해군(차승원)은 더 이상 나약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 무능한 아버지와는 다른, 강력한 왕이 되고야 말겠다는 각성.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하고 마는 비극을 연출한다. 그 짧은 순간속 모든 이야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광해 차승원의 얼굴에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차승원 혼자 힘이 부른 명장면이었을까. 아니다. 광해 차승원을 매번 좌절시키며 주눅 들게 만든, 결국 분노와 각성을 이끈 원흉 아버지 선조 박영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명장면이다. 그렇다. 시청자가 나약한 광해 차승원을 측은하게 여기며 응원할 수 있었던 건, 비열하고 무능한 아버지 선조 박영규의 역할이 전부라 할 만큼 컸다. 단 60분 만에 만들어낸 박영규표 선조가 있었기에, 60분 동안 보여준 차승원표 광해의 어떤 언행도 쉽게 납득이 갔던 셈이다.
그래서 배우의 내공, 연기력이 중요한 것이다. 배우와 배우가 만들어내는 연기 합이 중요한 것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뿐 아니라 픽션인 스토리에 설득력을 불어넣는 힘은 결국 배우의 연기력에서 시작해서 마침표를 찍기 때문이다. 그만큼 드라마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게 배우의 연기력이다.
월화드라마 ‘화정’ 1회를 본 시청자들은 대부분 명품배우 차승원과 박영규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동시에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여주인공 이연희에 대한 걱정과 불만도 쏟아지는 형국이다. ‘다 된밥에 이연희뿌리기’란 말로 설명될 정도로, 이연희의 연기력에 대한 네티즌의 불신이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연희는 드라마 화정에서 여주인공 정명공주로 등장한다. 극중 정명공주는 조선왕조 제14대 국왕인 선조와 인목왕후사이에서 태어난 적통왕손이자 유일한 공주다. 왕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정명은 이복오라비인 광해군이 보위에 오르며 비극적인 삶으로 내몰린다. 하루 아침에 천민 신분으로 추락하고 죽을 고비를 겪은 뒤 왜국의 유황광산에서 일하며 악착같은 짐승으로 성장한다. 이후 홍주원(서강준)의 도움으로 조선에 돌아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광해 정권의 심장부인 화기도감에 입성한다.
즉 정명공주 이연희에게 광해 차승원은 원수다. 복수의 대상이다. 극중에서 주인공 이연희와 차승원은 치열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화정 1회 마지막에 광해 차승원과 선조 박영규가 보여줬던 그 치열함을, 연기합을 차승원을 상대로, 김재원 등을 상대로 여주인공 이연희가 보여줘야 한다. 보여줘야 드라마도 살고 이연희도 산다. ‘과연 이연희가 보여줄 수 있을까.’
드라마 화정은 영화 ‘조선명탐정’처럼 2시간 만에 끝나지 않는다. 무려 50부작이다. 주인공은 긴 호흡을 가지고 힘있게 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발연기의 대명사로 꼽혔던 이연희가 맡았다. 이연희도 부담스럽겠지만 이연희를 바라보는 시청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화정’ 1회를 너무 재밌게, 만족스럽게 본 시청자라면 더욱 말이다. 그만큼 이연희의 연기력에 대한 시청자의 잣대도 매우 엄격하게 적용될 전망이다.
지난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에서 1무 2패로 무기력하게 16강에 탈락한 한국축구대표팀에게 이영표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무대가 아니라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화정’과 같은 드라마는 1, 2회만에 끝나는 단막극이 아니다. 실험을 하거나 경험을 쌓는 무대가 아니란 얘기다. 기대작에 주인공을 맡았다면 배우의 이름에 어울리는 연기력을, 실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차승원이 증명하고 박영규가 증명했다. 이성민-조성하-정웅인 등 드라마 ‘화정’속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자기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하고 있었다. 또 다른 주인공 김재원과 이연희가 있다. 특히 드라마의 홍일점이자, 극의 중심인 정명공주 이연희에 대해선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상황이다. 기대작이란 부담, 차승원이란 상대배우의 무게감, 시청자의 날선 비판 등을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배우 이연희에게 더욱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