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강석우-강다은 조재현-조혜정 극과극은 통한다?
28일 방송된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조재현의 딸 조혜정이 소주 두병 반의 주량을 공개했을 때, 아빠 조재현의 표정이었다. 딸의 주량에 꽤 놀라기도 했지만, 화도 많이 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누가 순진한 우리 딸한테 술을 가르친 거지? 누군지 잡히면 죽는다.’ 딱 그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술을 마시게 될 딸을 걱정하는 표정까지 엿보였다. 조재현의 낯빛은 그렇게 복잡 미묘했다. 딸의 주량만으로도 생각이 많아진, 복잡해진 아빠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조재현에 앞서, 이경규도 같은 경험을 했었다. 딸 이예림이 소주 한병 반이 주량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경규도 많이 놀랐다. 딸이 언제 같이 술한잔하자고 즉석에서 제안했지만, 이경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딸이 그렇게 술을 잘 마실 줄 몰랐다면서 놀라움 반, 걱정 반의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아빠에게 딸의 주량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딸이 아닌 아들의 주량을 들었을 때, 아빠들이 과연 그렇게 놀라고 걱정부터 했을까.
딸들의 반응도 재밌다. 조혜정이나 이예림이나 자신의 주량을 밝혔을 때, 아빠가 왜 놀라고 당황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빠 그리고 남자의 시각과 딸 그리고 여자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아빠를 부탁해’가 리얼예능으로 왜 가치가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능의 관점에서 볼 때, 아빠와 딸의 관계는 어떤 캐릭터의 조합보다 부딪혀서 나올 게 많다. 근데 아빠와 딸의 성격까지 다르다면 어떨까. ‘아빠를 부탁해’가 갈수록 재미를 더하고 기대감을 유발하는 건, 출연중인 아빠와 딸의 성격이 극과 극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톰과 제리를 보는 듯 하다. 28일 방송도 그랬다.
조민기는 세심하고 꼼꼼하다. 반면 딸 조윤경은 털털하고 여유롭다. 아빠가 딸의 운전을 가르치면서 부녀는 더욱 극단을 달린다. ‘조심’을 강조하는 걱정인형 조민기의 잔소리와 아빠때문에 오히려 운전에 집중할 수 없다며 툴툴거리는 딸 조윤경의 불협화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오케이, 좋아.’로 무난한 그림이 나왔다면 다큐가 됐겠지만, 불안한 운전실력으로 부녀가 티격태격하다보니 예능분량이 뚝딱 만들어진다.
이어진 강석우-강다은 부녀. 염색을 하는데 난리가 났다. 아빠 강석우의 잔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차라리 병원에서 염색하라는 이경규의 일침이 빛을 발할 정도다. 동시에 딸 강다은 성격이 참 좋다는 아빠들의 칭찬릴레이도 이어졌다. 그러나 강석우가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던 건, 딸이 해주는 염색에 뭔가 짠한 느낌이 들어, 마음 약해진 아빠 모습을 딸에게 들키기 싫어서였다. 드라마같은 반전이 숨어 있다.
현재 ‘아빠를 부탁해’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녀는 조재현-조혜정이다. 예능에 어울리는 재미를 많이 주었을 뿐 아니라, 중간 중간 짠한 감동도 유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극단적으로 갈린 조재현과 조혜정 부녀의 캐릭터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무뚝뚝한, 가부장적인 아빠 조재현과 애교 많고 참하지만 부정결핍증을 보이는 딸 조혜정의 조합이 예상밖의 상황을 곧잘 연출한다. 특히 조재현은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캐릭터로 신선한 맛이 있다.
강석우-강다은 부녀의 매력도 조재현-조혜정 부녀 못지 않다. 이유는 역시 극과 극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강석우는 다정다감하다. 하지만 권위적인 아빠다. 딸 강다은은 여리다. 순종적이다. 아빠를 잘 따른다. 평소처럼 아빠를 의지하고 따라가면 큰 문제가 없는 부녀가 된다. 하지만 강다은이 아빠 강석우에게 반기를 든다면? 다음주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분위기가 서서히 잡히고 있다. 그래서 기대감을 준다. 예능이 줄 수 있는 반전, 재미의 중심에 강석우-강다은 부녀가 있다.
의외로 이경규-이예림부녀가 예능의 재미면에선 부족한 인상이다. 그건 상대적으로 부녀 캐릭터가 닮았기 때문이다. 닮아서 그런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느껴진다. 시청자가 느끼기에, 뭔가 설정이나 억지가 없는, 가장 편안한 부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경규-이예림 부녀는 다른 의미로 빛이 난다. ‘아빠를부탁해’의 기준이 되는,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비록 예능의 재미는 떨어지나 진정성의 측면에선 오히려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아빠와 딸’을 연상하면 ‘아빠와 크레파스’같은 동요다. 다정다감한 아빠가 있고, 그런 아빠를 기다리는 천진난만한 딸이 있다. 그런데 예능 ‘아빠를 부탁해’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아빠가 있고, 해맑은 얼굴로 소주 두병 반을 마시는 다 큰 딸도 있다. 더 이상 동화같은 부녀는 없다. 현실안에서 때때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아빠라는 이름의 남자와 딸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다. 예능에서 이보다 더 좋은 극과 극의 조합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