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딸에게 아빠는 왜 문제적 남자일까?
왜 타이틀이 ‘아빠를 부탁해’일까. 주인공은 아빠와 딸이다. 그리고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이예림을 비롯한 딸들은, 학비와 용돈 등 여전히 아빠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아빠를 딸에게 부탁한다고? 타이틀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나면 이해가 간다. 이해가 되니까 재미도 있고 뭔지 모를 짠한 감동도 있다.
조민기는 딸 조윤경의 운전을 가르치면서 안절부절이다. 딸이 운전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비단 운전할 때만도 아니다. 지난 파일럿 방송에선 딸에게 청소를 가르치면서 잔소리를 쏟아냈다. 시작은 늘 부드러움 깔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같이 하는 느낌이 들지만, 과정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고, 결국엔 아빠는 포기고 아빠를 만족시키지 못한 딸은 떨어져 나간다.
아빠 조민기의 문제는 무엇일까. 딸과 무언가 하길 원하고 도움을 주고 싶은 건 모든 아빠가 느끼는 감정이다. 다만 조민기는 자신에게 딸을 맞추려 든다. 딸을 억지로라도 자신이 원하는 라인까지 끌어올리려 든다. 마치 2등을 하면 칭찬대신 왜 1등을 못했냐고 묻는 부모의 유형이랄까. ‘나는 학창시절에 늘 1등을 했는데, 내딸은 왜 1등을 못하지?’ 딱 그런 느낌이다. 조민기같은 아빠가 특이하다? 의외로 많다.
조민기와 비슷하다 혹은 조민기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란 평을 듣는 아빠 강석우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항상 딸 강다은과 무엇이든 같이 하길 원한다. 캐노피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돈으로 편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아빠는 딸과의 추억을 위해 시간을 내고, 캐노피를 손수 만들어주는 열의를 보인다. 그 뿐인가. 딸의 귀도 파주고, 이쁘다이쁘다 다 큰 딸의 머리도 스스럼없이 만지고. 한마디로 다정다감의 아이콘이다.
그럼에도 많은 시청자가 지적한다. 강석우 부녀는 뭔가 어색하다고. 이유는 강석우에게 다정다감과 어울리지 않는 권위적인 면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아빠 강석우의 ‘딸과 함께’ 마인드는 참 좋다. 단지 모든 의사결정을 아빠가 해버리니 문제다. ‘해볼래?’가 아니라 ‘하자!’다. ‘아빠랑 같이 해볼래? 다은이 생각은 어때?’가 아니라 ‘아빠할거야, 다은이 따라와.’ 딱 이 코스를 밟는다. 코스가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딸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빠의 움직임에 발을 맞춘다.
그런데 강석우의 ‘팔로우미, 딸’ 컨셉에 강다은이 드디어(?) 불편함을 얘기했다. 일종의 반기를 든 것이다. 친구 이예림이 부럽다면서. 이경규가 오래전부터 주장했던 자식교육 ‘방목론’을 강석우의 딸이 칭찬하고 나선 것이다. 강석우는 꽤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나보다 이경규가 낫다고?’ 동시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아빠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강석우는 보여준다. 딸이 아빠의 흰머리를 보며 염색을 직접 해드리겠다고 나섰다. 아빠가 딸방에 캐노피를 해줬듯이, 반대로 딸이 아빠의 염색을 해준다면 얼마나 이상적인가. 그런데 강석우는 고맙다면서도 그렇게 불안해 할 수가 없다. 딸은 늘 아빠를 믿고 따라갔는데 아빠는 딸을 믿고 갈 생각이 없으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의견충돌시 대화자체도 완전 만담수준이다. 덕분에 의외로 ‘아빠를 부탁해’에 재미를 살리고 있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최고 반전 부녀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강석우가 모든 걸 내려놓으면 아마도 아빠 이경규가 될 것이다. 이경규의 자식교육 ‘방목론’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이경규가 방송에서 늘 얘기했으니까. 그만큼 딸에게 터치를 하지 않는다. 딸의 세계를 인정해준다. 그렇다고 딸에게 관심이 없는가.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딸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은 아빠다. 어떻게 보면 이경규가 정말 이상적인 아빠로 보인다. 특히 성인이 된 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문제는 딸 이예림이 아빠 이경규를 닮았다는 사실이다. 자식이 아빠를 닮는 건 당연하다. 다만 아빠가 딸의 세계를 인정하고 터치를 안 하니, 딸도 아빠의 세계를 인정하고 터치를 안 한다. 그러니 서로 부딪힐 일도 없고, 뭘 같이 하고 말고 할 생각도 안 한다. 서로 부담주기 싫어서, 배려라는 이름으로 결국엔 사이가 멀어진다. 평행선을 달리는 아빠와 딸이 된다. 한 쪽이 아니라 서로가 변하고 다가서야 하는 데 과연? 이경규와 이예림은 ‘서로를 부탁해’다.
이경규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면 아빠 조재현이 된다. 조재현과 딸 조혜정은 내외를 할 정도다. 아부해 부녀 초유의 사태다. 그만큼 아빠와 딸은 낯가림이 심하다. 조혜정의 말처럼, ‘저 분(조재현) 우리집에 사시는 분.’ 그래서인지 확실히 예능에 어울리는 재미는 ‘조재현-조혜정’ 부녀에게서 많이 나온다. 뭔가 어색하면서도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때론 부녀가 아니라 서로의 간을 보는 연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그림이 잡힌다. 무뚝뚝, 무표현에서 친밀한 부녀관계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기엔 ‘조재현-조혜정’ 부녀만한 캐릭터가 없다. 사실상 부녀클리닉 ‘아빠와 전쟁’수준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경규-이예림보단 조재현-조혜정 부녀가 성과(?)를 내기 훨씬 수월해 보인다는 점. 왜냐하면 딸 조혜정이 이예림보단 적극적이라, 아빠 조재현만 조금 달라져도 부녀관계의 긍정적 변화 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일 첫방송을 탄 ‘아빠를 부탁해’를 보고 분명해졌다. 왜 딸이 아닌 아빠를 부탁해일까. 그건 나이가 들수록 아빠에게는 딸(자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은 반대로 아빠를 멀리하려 든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 등으로. 하지만 아빠는 잔소리를 해서라도 소통하고 싶어 한다. 여전히 딸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단지 딸을 대하는 아빠의 표현방법이 서툴고 어색하기만 하다.
여기 네명의 문제적 아빠가 있다. 이경규-강석우-조재현-조민기. 네 사람이 문제고 특이한 걸까. 아니다. 네 사람안에 대한민국 아빠의 모습이 다 있다. 그래서 ‘아빠를 부탁해’가 공감이 가는, 볼만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딸들이 문제적 아빠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동시에 아빠는 딸들을 이해시키며 다가갈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이 이상적인 부녀로 가는 교과서가 될 수 있을까. ‘아빠를부탁해’는 감히 2015년 가족예능 최고의 미션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