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 왜 제2의 수지로 거론될까
올 봄에도 어김없이 버스커버스커는 ‘벚꽃엔딩’과 함께 음원차트 재진입과 역주행을 시작했다. 벚꽃엔딩이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봄이 되면 버스커버스커 그리고 벚꽃엔딩을 찾는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캐롤송을 찾듯이. 벚꽃엔딩 한곡 때문만도 아니다. ‘꽃송이가’, ‘여수밤바다’, ‘첫사랑’ 등 같은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첫사랑’이다. 버스커버스커 앨범은 ‘첫사랑’의 이미지가 강하다. 첫사랑의 이미지는 봄이란 계절과 궁합이 좋다. 여기에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장범준의 음색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봄이 되면 버스커버스커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아쉽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이을만한 대중적인 봄노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음에도 말이다. 비단 가요계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버스커버스커 이후 봄노래의 명맥이 끊긴 것처럼, 여배우쪽에서도 ‘국민첫사랑’ 수지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
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첫사랑 반열에 올랐다. 당시 수지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보다 영화속 수지의 매력이 임팩트가 더 강했을 정도다. 캐릭터를 잘 만났고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력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수지는 버스커버스커와 함께 대중문화에 ‘첫사랑’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지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새로운 국민첫사랑은 고사하고 제2의 수지도 없다. 스타성을 가진 20대 초반의 젊은 여배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젊은 여배우 기근현상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그래서일까. 지상파에선 20대 초반의 여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가 드물다.
흥미로운 건 언론 등을 통해 제2의 수지로 꾸준히 거론되는 아이돌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이다. 걸그룹에 관심없는 사람은 AOA도 잘 모르는데, AOA 8명의 멤버중 한명인 설현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데 설현이 포스트 수지? 납득하기 힘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포스트 수지로 설현을 지목했을까. 바로 이민호-김래원 주연의 영화 ‘강남1970’에서 설현이 연기한 강선혜를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설현은 이민호의 짝사랑이자, 첫사랑으로 등장한다. 이민호의 마음만 아프게 한, 끝내 이뤄질 수 없었던 첫사랑. 영화에서 설현은 이민호의 마음을 애태울 정도로 청순한 매력을 뽐냈다.
설현이 연기를 참 잘 했다. 캐릭터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물론 영화 속 비중이 크지 않아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어떤 면에선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중을 떠나 영화 속 캐릭터에 무리없이 녹아든 건 칭찬할 부분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X세대에 어울리는 첫사랑의 아이콘을 연기했다. 반면 설현은 ‘강남1970’에서 70년대 보편적 여성상을 연상시키는, 순종적이면서도 청순한 매력을 어필했다. 즉 시대에 어울리는 상징적인 ‘첫사랑’의 캐릭터를 수지도, 설현도 매끄럽게 소화했다. 그래서 설현을 제2의 수지라고 평할 수 있는 셈이다. 시대와 캐릭터는 다르지만 ‘첫사랑’이란 공통분모가 있으니까.
단지 수지가 ‘건축학개론’ 주인공으로 흥행의 중심에 있었다면, 설현은 ‘강남1970’에서 조연이었고 영화 또한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영화 ‘강남1970’이 건축학개론처럼 흥했다면 설현도 제2의 수지로 인정받고, 국민첫사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아마도 힘들었을 것이다. 왜?
영화 ‘강남1970’에서 강선혜라는 캐릭터자체는 분명 매력이 있다. 강선혜를 연기한 설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종대(이민호)의 짝사랑으로 남는 것까지도 좋았다. 문제는 남편에게 얻어맞는 여자로 등장한다는 것. 매번 남편에게 얻어맞고 종대를 찾아와 눈물을 흘린다. 거기서 ‘첫사랑’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끝장이 나버렸다. 종대의 첫사랑보단 매맞는 여자의 잔상이 더 강하게 남아버렸다. 심지어 소설 ‘남자의향기’를 가져다 쓴 진부함까지 느껴졌다.
즉 주인공의 첫사랑 청순미인 강선혜라는 캐릭터자체는 좋았지만, 캐릭터를 통해 풀어낸 과정자체가 좋지 못했다. ‘국민첫사랑’과 ‘매맞는 아내’가 어울리는가. 솔직히 영화 강남1970에서 굳이 강선혜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야 했는지도, 매맞는 아내로 나오게 만들어 첫사랑의 이미지를 망가뜨려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여러모로 아쉽다.
영화 ‘강남1970’의 흥행여부와 관계없이 설현이 수지의 계보를 잇는 ‘국민첫사랑’이 되긴 사실상 힘들었다. 오히려 영화 속 주인공의 첫사랑이란 이유만으로 제2의 수지 등으로 엮는 게 억지스럽게 돼버렸다. 다만 설현의 가능성만큼은 인정해야 맞다. 젊은 여배우 기근현상속에 스무살 설현은 분명 가치가 있다. 영화 ‘강남1970’에서 설현이 보여준 청순한 매력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대목이다.
설현은 걸그룹 AOA의 활동외에도, 박명수-박주미 등과 함께 예능 ‘용감한가족’에 출연, 귀엽고 솔직한 매력을 앞세워 인지도를 쌓고 있다. 5월에는 여진구-이종현 등과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통해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렇다. 설현에 대한 기대, 가능성만큼은 이미 제2의 수지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