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가족 박주미 박명수 중년판 '우결'에서 설현의 '똥예능'까지
대한민국 예능은 먹방과 사랑에 빠졌다. 요즘 TV를 틀면 항상 연예인이 뭘 먹고 있다. 먹방의 대세를 반영하듯이 ‘냉장고를 부탁해’나 ‘삼시세끼’처럼 대놓고 먹방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먹방2일 ‘1박2일’이나 정글의 먹방이 된 ‘정글의법칙’처럼 기승전먹방인 케이스도 많다. 그만큼 예능과 먹방은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13일의 금요일 밤에도 먹방은 계속됐다. ‘삼시세끼’와 ‘정글의법칙’은 먹방과 시청률을 놓고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그 사이에서 고전중인 나는가수다3. 이쯤되면 나가수 박정현도 일단 뭘 먹고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11시로 넘어가도 예능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일단 먹방이 어색하지 않은 ‘나혼자산다’가 있다. 봄개편과 함께 시간대를 옮기게 될 ‘웃찾사’도 있다. 그리고 컨셉이 불분명한 예능 ‘용감한가족’이 있다.
‘용감한가족’. 이 프로그램은 정체성이 상당히 모호하다. 이문식-심혜진을 비롯해, 출연자들이 왜 빈국인 라오스에 가서 가족행세를 하는지 한번 봐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13일 방송에선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이 박명수와 소똥을 치웠다. 똥분량이 어마어마하다. 방송의 절반이 소똥치우는 분량이다. 중간중간 소똥으로 장난도 친다. 똥치우다 똥독이 올랐는지 소똥으로 먹방까지 찍을 기세였다. ‘아, 이래서 용감한 가족인가?’ 순간 별 생각이 다 든다.
오밤중에 연예인이 똥치우는 예능을 보고 있다는 게 시청자입장에선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사실 ‘용감한가족’을 틀었을 때도 당연히 먹방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할 거란 막연한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감한가족’은 용감하게도(?) 먹방을 앞세우지 않았다. 아이돌 설현에게 소똥을 치우게 했다. ‘저 아이돌이거든요?’라며 반발할 법도 한데, 설현은 해맑은 표정으로 열심히 똥을 치웠다. 2500원을 벌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 똥독마저 감당했던 설현은 누구보다 호감이었다. 덕분에 소똥버라이어티 ‘용감한가족’도 볼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명수와 박주미 쌍박커플이 프로그램을 똥통에서 완전히 건져낸다. ‘용감한가족’은 똥(고생)치우는 게 전부가 아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명수-박주미를 통해 가족, 부부, 사랑에도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박명수는 아내 박주미를 위해 소똥도 치우고 염전에서 일도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아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위로할 줄 알았고, 흥을 원할 때면 주저없이 노래를 불렀다. 고생중인 아내 박주미를 위해 남편 박명수가 라오스에서 해줄 수 있는 서비스는 사실상 다해주었다. 박주미가 박명수의 반전매력에 푹 빠졌다고 고백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용감한 가족’엔 중년부부의 로맨스도 있다.
물론 박명수-박주미는 가상부부다. 심혜진-이문식도 마찬가지다. 강민혁-설현은 이문식 부부의 아들과 딸로 등장한다. 쉽게 말해 ‘용감한가족’은 가상부부 우결의 가족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결의 가족판이란 느낌이 처음 보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왜 가족행세를 하는지 납득가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이 어울리는 모습은 어색하기만 하다. 촬영장소는 또 어떤가. 국내 어느 시골마을도 아닌, 동남아시아 라오스라는 빈국이다. 배경자체도 낯설다.
즉 ‘용감한가족’의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다. 시청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요소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시청해야할 지 난감하다. 채널을 고정하고 볼만한 이유가 딱히 없다. 프로그램이 기획된 의도가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기엔 많이 부족하다.
다행히 ‘용감한가족’에도 희망은 있다. 그 중심에 쏘똥속에서 빛난 진주 설현이 있었다. 중년부부의 로맨스 ‘중년판 우결’을 찍은 박명수-박주미가 있었다. 그들은 ‘가족’이란 타이틀에 어울릴만한 활약을 펼쳤다. 시청자의 눈에 띌 만한 존재감, 재미를 보여줬다. 덕분에 뭔가 불분명했던 프로그램도 틀을 잡아가는 느낌을 주었다.
다만 단순해질 필요는 있을 거 같다. 시청자가 친근감을 가지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말이다. ‘용감한가족’보면 우결도 보이고, 정글의법칙, 패밀리가 떴다도 보인다.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넣고 끓인 찌개같다. 그래서인지 무슨 맛인지 쉽게 알 수가 없다. 뚜렷한 뼈대가 드러나야 한다. 굳이 라오스까지 가서 촬영해야 하는 지도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박명수-박주미 그리고 설현의 활약에서 알 수 있듯이, 분명한 건 장소보다 가족이고 관계다. 가상 가족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