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과 KBS연기대상, 대상만큼 빛난 연말시상식의 존재감
2002년 월드컵 때 일밤 ‘이경규가 간다’에서는 숨은 MVP를 뽑았었다.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를 해 해당 게임에서 가장 빛났던 선수보다는, 카메라가 잘 잡히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뛰었던 선수에게 안겼던 숨은 MVP 메달. 주로 공수에서 궂은 일을 도맡았던 선수에게 주었는데, 박지성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수비수를 힘들게 하거나 김남일처럼 상대팀의 역습을 사전에 봉쇄하거나 송종국-이영표처럼 상대의 핵심선수를 잘 막아 팀승리에 공헌한 선수들이 받았었다.
연말시상식의 주인공, MVP는 누가 뭐라해도 대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수많은 별중에서 해당년도 최고로 빛났음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연말 지상파 방송3사가 뽑은 연예대상 유재석-이경규, 연기대상 유동근-이유리-전지현은 2014년도가 낳은 최고의 스타, 주인공임을 부인할 수 없다. 축구로 치면 결승골을 넣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골을 넣지 못했지만 빛나는 활약을 했던, ‘이경규가 간다’의 숨은 MVP를 지난 연말시상식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2014 연말시상식 숨은 MVP?
1. 애드립의 황제 MC 신동엽
신동엽은 지난 2014년도 맹활약했었다. KBS ‘안녕하세요’, ‘불후의명곡’, MBC ‘세바퀴’, JTBC ‘마녀사냥’, TVN ‘SNL코리아’ 등 지상파 뿐 아니라 케이블과 종편방송에도 출연해 활동범위를 넓혔고, 늘 맡은 프로그램의 재미와 인기를 견인한 일등공신이었다. 2014년도 유재석-강호동이 다소 침체한 반면, 신동엽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는 게 방송계의 중론일 정도로, 자신의 강점인 토크와 콩트연기를 앞세워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신동엽이 높게 평가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방송 진행능력이다. 안정된, 유연한 진행은 물론, 신이 내린 애드립은 돌발상황이 잦은 생방송에서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지난 연말에도 신동엽은 KBS연예대상과 MBC연기대상의 진행을 맡았다. 명불허전이었다. 순간순간 번뜩이는 재치와 녹슬지 않은 애드립으로 지루하고 딱딱한 시상식에서도 재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신동엽은 보여줬다.
특히 수영과 함께 MC를 맡은 MBC연기대상에서 고성희의 방송사고에 가까운 돌발행동을 재치있게 응수한 것, 오연서의 헤어스타일을 놓고 19금을 연상시키는 애드립을 선보여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긴장된 분위기를 해소시킨 능력은 과연 신동엽이란 찬사가 나올 법 했다. 생방송 진행은 대한민국 최고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신동엽은 연말시상식의 대상만큼 빛난 존재감이었다.
2. 인정할 수밖에 없는 KBS연기대상
지난 연말시상식에서 가장 웃었던 방송사는 어디일까. 아마도 MBC일 것이다. MBC는 방송3사 최초로 실시간 시청자 문자투표를 도입해 대상수상자를 선정했다. 그 결과 방송연예대상은 유재석, 연기대상은 이유리가 차지했다. 사실 유재석과 이유리는 시청자문자투표가 아니었어도 대상수상에 큰 이견이 없을 만큼, MBC의 매우 유력한 대상후보들이었다. 그러나 매년 연말시상식에서 납득하기 힘든 선택으로 혼이 났던 MBC는 대상의 결정을 시청자에게 넘기면서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 동시에 실시간 시청자문자투표로 수익은 물론, 시청률을 높일 수 있어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린 셈이다.
그럼에도 MBC의 연말시상식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퀄리티가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신인상도 있었고 무더기 뉴스타상도 있었다. 코미디상은 없어도 가수상은 있더라.’ MBC방송연예대상의 경우, 공동수상은 기본이고, 무슨 상을 그렇게 남발하는지 MBC에 출연만하면 주는 참가상으로 인식됐다. 시상식이 불필요하다, 공해라고 느낄 만큼 2014 MBC연예대상은 역대 최악으로 꼽을만하다.
반대로 역시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시상식이 있었다. 바로 KBS연기대상이다. 방송3사 시상식중에 상의 권위를 그나마 지킬 줄 아는 건, KBS연기대상뿐이란 생각이 재차 들 정도다. KBS연기대상은 함부로 공동수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공동수상보다는 누군가엔 당근이 누군가에겐 채찍이 되는 결과를 내놓는다. 덕분에 KBS연기대상은 쉽게 트로피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느껴지고, 상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모습에서 프로의 향기가 스며든다.
2014 KBS연기대상을 더욱 더 빛나게 만든 수상자들도 있었다. 죽은 아들이 내려다 볼 수 있게 더 빛나려 노력한다는 박영규의 수상소감과 노래는 특별한 감동이 있었고, 대상을 수상한 유동근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옥같았다.
지난 연말시상식을 돌아보면, 여전히 방송사가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청자의 수준을 쫓아가지 못하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질 떨어지는 시상식의 한계. 그냥 이것저것 섞어놓은 막장드라마같은. 그 와중에서도 MC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닫게 만든 ‘신동엽’과 미우나 고우나 연말시상식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 어떤 방향이 최선인지를 보여준 ‘KBS연기대상’이 2014 연말시상식의 숨은 MVP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