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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삼성vs넥센 강정호와 손승락 웃기고 울린 두 남자

바람을가르다 2014. 11. 11. 09:59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고 했다.

2014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그랬다.

삼성은 2사후 터진 최형우의 극적인 역전 2타점 2루타로 2: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7전 4선승제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전적 3:2로 앞서게 만든 결정적인 한방이었고 순간이었다. 넥센의 마무리 투수 손승락으로부터 삼성 최형우의 2타점 역전 결승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야구팬들이 9회말까지 참고 기다린 셈이 됐다. 그리고 극적인 승부덕분에 꿀같은 재미를 만끽했다.

 

웃기고 울린 두 남자 강정호와 손승락

 

8회말에서 이 경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봤다. 0-1으로 지고 있던 삼성이 8회말 무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박석민을 비롯, 박해민, 이흥련이 모두 조기 등판한 넥센의 마무리 투수 손승락에게 막혀 범타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다시 오기 힘든 무사 만루 절호의 찬스에서 삼성은 한 점도 뽑지 못했다. 삼성은 풀이 죽었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넥센은 반대로 기세가 찌를 듯 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야구도 흐름의 경기다. 8회말 직후 야구팬들은 예감한다. 이 경기는 삼성이 뒤집기 힘들다는 걸. 특히 위기를 막은 손승락의 구위가 워낙 좋아 더욱 확신한다. 그리고 9회말. 아웃 카운트 세 개가 남았다. 역시 손승락은 9회말에서도 힘을 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때로는 실력보다 간절한 운이라는 게...

 

 

 

 

1. 1억달러의 사나이 강정호의 반전 개그?

 

손승락은 삼성의 선두타자 김상수를 상대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갔다. 결국 배트에 갖다 맞추기 급급했던 김상수의 타구는 유격수 앞 땅볼로 굴러갔다. 그런데 타구의 질이 더럽다. 빗맞은 타구는 속도가 죽어 천천히 굴러갔고 유격수 강정호가 처리하기엔 쉽지 않았다. 김상수의 빠른 발을 감안하면 내야 안타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그러나 강정호의 빠른 대쉬와 핸들링, 송구는 정확하게 1루수 박병호에게 전달됐다. 아웃!

 

역시 강정호다! 메이저리거다. LA다저스의 헨리 라미레즈보다 낫다. 강정호의 에이전트 말이 옳았다. 강정호는 1억달러의 가치가 있다...

 

그 장면을 본 네티즌들은 강정호에 대한 찬사를 쏟아낸다.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 어려운 타구를 정말 메이저리거가 안 부러운 유연한 수비로 매끄럽게 처리했으니 말이다. 마치 강정호의 유격수 수비가 평균이하라고 평가한 메이저리그 스타우터들에게 보란듯이. ‘이래도 제 수비실력이 메이저리그에서 안 통한다고 보십니까.’ 그러나...

 

야구팬들이 찬사를 쏟아내기 무섭게 강정호는 아마추어보다 못한 실책을 범하고 만다. 껄끄러운 타자 나바로가 초구에 평범한 땅볼타구를 유격수 강정호 앞으로 보냈다. 쿠바출신이면 1억달러짜리 선수였을 유격수앞으로 말이다. 그 타구 하나로 삼성은 끝났다라며, 관중은 나갈 시점이고 TV로 중계를 보던 시청자는 채널을 돌릴 시점이었다. 그러나 강정호는 떠나려는 야구팬들을 붙잡는다. ‘1억달러짜리 재미를 드릴께요.’ 어이없는 실책을 범한다. 너무나 평범한 타구였기에. 강정호의 실책은 엄청난 반전이었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김상수의 타구 처리를 본 후, 모두가 한목소리로 강정호를 칭찬했다. 심지어 삼성팬들조차. 그런데 강정호가 나바로의 타구를 어이없게 놓친 것이다. 헨리 뭐? 1억달러 뭐? 강정호를 극찬했던 팬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대폭소가 터진다. 넥센팬들을 제외한 모두가...

(하지만 강정호는 메이저리거로 성공할 것이다. 비록 중요한 게임에서 결정적 실책을 저질렀으나, 수비가 꽤 좋은 선수이고, 타격은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만하다. 개인적으로 내년에 추신수선수보다 더 기대하는 선수가 강정호다.)

 

 

 

 

2. 승락극장, 손승락의 눈물

 

올해 프로야구 주요키워드 중 하나가 ‘마무리투수의 잔혹사’다. 각 팀의 마무리투수가 말아 잡수신 경기가 어느 해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국내야구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 삼성의 임창용과 넥센의 손승락도 블론세이브가 참 많았다. 어느 팀에도 끝판대장 오승환처럼 확실한 마무리투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9회가 되면 국내야구는 불장난으로 얼룩진 막장드라마를 찍곤 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손승락은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마무리투수임을 입증했다. 그만큼 승부처에서 강했다. 8회말 대위기를 침착하게 막은 것도 좋았고, 9회말에서도 안정적인 구위를 선보인 게 컸다. 강정호의 어이없는 실책이 있었지만 손승락은 동요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의 사나이로 통하는 박한이를 삼진으로 돌려 세운 장면은 압권이었다. 2사.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긴다. 강정호의 실책으로 설레는 삼성팬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넥센팬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역시 마무리는 손승락이다. 오늘 손승락 공은 못친다. 지켜보는 대다수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컨디션도 공끝도 좋아 보였다. 한구 한구에 혼신을 다해 던지는 손승락의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넥센의 승리가 보인다. 채태인을 투나씽으로 몰아붙일 땐 삼진으로 게임이 끝나는 구나 싶었다. 그러나...

 

채태인은 손승락의 3구를 받아쳐 안타를 만든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자기 스윙을 가져간 채태인의 승리다. 반대로 너무나도 성급하게 승부에 들어간 넥센배터리의 치명적인 실수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요동친다. 다음이 삼성의 4번타자 최형우이기 때문에 더욱.

 

다른 팀들은 9회말에 이런 기회가 와도 잘 살리지 못한다. 턱밑까지 쫓아는 가는데 뒤집진 못한다. 그런데 삼성은 기회가 오면 거의 놓치질 않는다. 삼성이 강한 이유다. 게다가 최형우에게 걸린 상황이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손승락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처음 경험하는 한국시리즈이기에 더욱. 이전과 달리, 마음먹은 코스로 공이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 낮은 공을 과감하게 던지기도 애매하다. 자칫 폭투가 되면 동점이 되니까.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기운이 잠실을 감싼다. 그리고...

 

 

 

 

최형우는 정말 무서운 타자다. 괜히 타자왕국 삼성의 4번타자가 아니다. 볼카운트가 불리해도 침착하다. 자신감이 느껴진다. 공이 가운데로 몰리자 여지가 없다. 1루수 옆을 빠지는 끝내기 2루타. 넥센의 깔끔한 중계플레이에도 불구하고, 대주자 김헌곤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베이스를 먼저 찍는다. 소름이 돋는다. 삼성팬은 아니지만, 이래서 야구를 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극적이다. 이게 야구다. 야구의 재미다.

 

한국시리즈 5차전의 히어로 최형우에게 삼성 선수들이 달려간다. 난리가 났다. 그뒤로 결정적 실책을 저지른 강정호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다. 뭔가 짠하다. 자책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그런데 카메라는 또 다른 주인공 끝내기 안타를 내준 손승락을 비춘다. 그의 눈가가 젖었다. 눈물을 참는 것 같다. 힘들어 보인다. 경기는 뜨거웠지만 결과는 냉정하다. 극명하게 엇갈린다. 승자에겐 기쁨의 눈물이 패자에게 슬픔의 눈물이 교차한다.

 

2014 한국시리즈는 또 다시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으로 끝날까. 알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은 두 팀 다 미생이다. 넥센에게도 완생의 기회가 있다. 다만 사석(5차전)에 집착하면 힘들다. 누구보다 충격이 심했을 강정호와 손승락이 5차전을 빨리 잊고 다시 승부(6차전)에 집중해야 반전이 가능하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샴페인을 미리 터트려선 곤란하다. 6차전을 내준다면 오히려 불리한 쪽은 삼성이다. 넘어가는 판을 흔들어야 하는 넥센에겐 박병호를 비롯한 타선의 부활이 시급하고, 정교한 마무리 수순을 밟아야 할 삼성은 또 다시 윤성환의 호투를 기대하며 맞불을 놓는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선 어떤 드라마를 찍을까. 과연 누가 웃고 누가 눈물을 흘릴 지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