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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과 박지성의 닮은꼴, 평행이론 선결과제는?

바람을가르다 2014. 10. 8. 13:13

 

 

 

 

지난 주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2:1로 난적 에버턴을 꺾었다. 에버턴과의 경기에 앞서, 박지성은 알렉스 퍼거슨감독과 함께 올드 트래포드에 나타나 팬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클럽 맨유는 박지성을 구단 앰버서더로 임명했고, 이 날 팬들앞에서 간단한 임명식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맨유의 레전드 보비 찰튼, 알렉스 퍼거슨, 브라이언 롭슨, 앤디 콜, 게리 네빌 등에 이어 8번째로 구단 앰버서더로 임명된 박지성은 향후 전세계를 돌며 맨유의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박지성은 ‘소리없는 영웅’에서 이제는 맨유의 얼굴과 목소리가 된 셈이다.

 

박지성이 구단의 홍보대사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실력이다. 축구를 정말 잘했다. 단순히 ‘아시아’출신의 선수로 꾸준히 경기에 뛰어서 뿐만이 아닌, 맨유의 박지성이 ‘빅게임’에 강했기 때문이다. 큰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는 많은 축구팬이 기억한다. 박지성은 아스널 킬러였고, 첼시나 리버풀을 상대로도 천금같은 결승골을 뽑았다. 챔피언스리그에선 어땠나. 맨유가 토너먼트를 거치며 결승에 오르고 우승과 준우승을 하는데 있어, 소금같은 역할을 했던 대표선수가 박지성이었다. 퍼거슨감독이 2009-2010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밀란의 심장 안드레아 피를로를 꽁꽁 묵었던 박지성을 회상했던 경기가 좋은 예다.

 

 

 

 

유럽축구, 세계 최고의 클럽 맨유에서 활약하고 감독, 선수, 팬들에게 인정받아 은퇴 후엔 구단 홍보대사까지 맡게 된 박지성을 보면, 묘하게 떠오르는 다른 종목의 선수가 있다. 바로 LA다저스의 투수 류현진이다. LA다저스 또한 맨유처럼 메이저리그의 빅구단으로 꼽힌다. 때문에 최고 선수들의 집합소에, 몸값들도 장난이 아니다. 류현진 또한 포스팅금액 포함 총액 6000만불이 넘는 고액에 계약을 맺었지만, LA다저스에서 류현진의 계약 금액이나 규모는 평범(?)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고액 연봉자들이 수두룩한 구단이 LA다저스다.

 

그래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다른 팀에선 충분히 제 2선발, 심지어 통계상 제 1선발투수로도 가능한 실력이지만 큰 손 LA다저스에선 클레이튼 커쇼-잭 그레인키에 이은 제 3선발투수 역할을 수행중이다. 높은 몸값의 커쇼와 그레인키가 제몫을 해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용대비 효율로 따진다면 류현진은 커쇼와 그레인키가 부럽지 않다. 마치 이적료는 저렴(?)했으나 활약은 눈부셨던 박지성처럼. LA다저스에서 분명 류현진은 복덩이로 분류된다.

 

류현진은 올해도 2년차 징크스없이 꾸준한 성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그리고 류현진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건 빅게임에 등장할 때다. 베이징올림픽 쿠바와의 결승전 승리투수였고, 지난 해 포스트시즌에서도 세인트루이스 1선발 웨인라이트를 상대로 류현진은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가 됐었다. 그렇게 류현진은 경기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팀이, 상대투수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주눅 들지 않고 늘 좋은 승부를 펼친다.

 

 

 

 

어제 류현진이 다시 빅게임에 선발투수로 출전했다. 바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이다. LA다저스의 확실한 승리보증수표 클레이튼 커쇼가 1차전에서 믿기 힘든 난조를 보여 패했지만, 2차전에선 잭 그레인키와 맷 켐프의 결승 홈런포를 앞세워 설욕했다. 그리고 시리즈 향방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운명의 3차전에 세인트루이스는 존 래키를, LA다저스는 류현진은 내세웠다. 결과는?

 

류현진은 역시 빅게임에 강했다. 비록 맷 카펜터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으나, 6이닝 5안타 1실점은 평균 이상의 호투로 볼 수 있다. 그 무대가 디비전시리즈에, 원정 경기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나 결과는 1:3. 홈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승리로 끝났다. 류현진은 1:1 동점상황에서 대타로 교체돼 승패없이 물러났지만, 다저스의 불펜투수 스캇 앨버트가 2실점하면서 팽팽하던 균형에 금이 갔다. 다저스의 돈 매팅리 감독은 이번에도 투수교체에 실패하면서 팀을 벼랑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오늘, 믿었던 클레이튼 커쇼가 다시 무너지면서, LA다저스는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다저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까지 넘볼 전력이라고 평가받았지만, 포스트시즌 조기탈락의 아픔을 겪고 말았다. 팀이 꿈의 무대인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선발투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2014 류현진의 가을 도전도 그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메이저리그의 월드시리즈를 유럽축구에 비유하면 아마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쯤 될 것이다. 사실 그만큼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는 게 쉽지 않다. 리오넬 메시의 fc바르셀로나가 우승을 하기 위해선 바이에른 뮌헨, 첼시, 레알마드리드 등 많은 경쟁 팀을 이겨내야 한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서른 팀 중 단 두 팀이 결승에 오른다.

 

돌아보면 맨유의 박지성이 정말 대단했다. 메이저리그로 따지면 월드시리즈 무대를 세 번 밟았고, 그 중 두 번이나 선발출전을 했으니 말이다. 우승컵 한 번, 준우승컵은 두 번이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컵보다 박지성이 빛나는 건, 여러 빅게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순간들 때문이다. 박지성이 중요한 골을 넣거나, 상대 키플레이어를 봉쇄하면서 팀승리를 견인했을 때. 그 모습을 많은 축구팬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국내팬들의 경우, 맨유VS바르셀로나와 같은 빅게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는데, 경기를 뛰는 선수중 한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LA다저스에 류현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류현진이 LA다저스소속이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고, 선발투수로 나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류현진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비록 이번 시즌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됐지만, 다저스는 내년을 기약해도 좋을 만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게다가 텍사스의 추신수, 메이저리그 이적이 유력한 넥센의 강정호와 SK 김광현 등을 생각하면, 그들의 행선지에 따라 내년 메이저리그 가을잔치엔 보다 많은 한국인의 활약을 지켜볼 수도 있다.

 

 

 

 

류현진은 올해 다저스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팀은 월드시리즈진출에 실패했다. 그런데 말이다. 박지성도 맨유로 이적한 지 3년째 되던 해에야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포를란, 베론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의 무덤 맨유에서 박지성은 버텨냈다. 박지성이 이적하고 맨유에 완벽히 적응하는 기간까지 큰 기복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게 컸다. 퍼거슨 감독이 90분을 뛰게 하든, 5분을 뛰게 하든 그라운드에 나오면 박지성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박지성은 맨유의 영광스런 자리에 늘 얼굴을 비출 수 있었다.

 

LA다저스의 류현진을 보면 박지성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류현진의 꾸준함. 류현진은 커쇼나 그레인키보다 몸값이 비싸지도 않고 강속구로 상대선수를 압박하는 유형도 아니다. 투구자체가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완벽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투구를 한다.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 빅게임에 강하다. 마치 루니나 호날두, 나니, 긱스 등 스타플레이어 사이에서 궂은 일을 도맡으며, 위기에는 해결사 역할을 마다 않던 박지성이 연상된다.

 

그래서 류현진과 다저스에 대한 실망보단 기대감으로 내년을 지켜볼 수 있다. 박지성처럼 꾸준한 류현진이기 때문에 내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생각이다. 다만 LA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선 해결할 게 많다. 돈 매팅리 감독의 용병술? 불펜 강화? 그런 표면적인것 이상으로 박지성이 뛰던 시절 선수단 사이에 녹아있던 ‘붉은 피’ 맨유의 팀정신, 충성도가 ‘푸른 피’ LA다저스엔 필요해 보인다. 돈으로 선수와 포스트시즌 티켓은 살 수 있어도 우승 반지는 살 수 없다. 개개인의 실력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팀워크. 그렇다. 박지성 혼자 맨유를 우승시킬 수 없듯이, 류현진 혼자 다저스를 우승시킬 수 없다. 박지성과 류현진의 평행이론 선결과제이자 마침표는 결국 팀에 대한 선수단의 희생이고 이를 통한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