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독일 아르헨티나, 드라마로 풀어 본 브라질월드컵의 주인공은?

바람을가르다 2014. 7. 11. 08:58

 

 

 

 

흔히 축구를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문득 축구에도 각본이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물론 각본이 있다면 축구의 신이 썼겠지만.) 그만큼 브라질월드컵 결승전까지 이르는 과정이 너무 드라마틱하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월드컵이 드라마보다 더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누구인지 결말은 어떻게 날 것인지, 축구전문가들도, 축구팬들도, 결승전이 끝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드라마로 풀어 본 브라질월드컵의 주인공은?

 

브라질월드컵의 조주첨이 있고 나서, 많은 축구팬들(시청자)은 주인공을 브라질과 스페인으로 봤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과 디펜딩챔피언 스페인. 이들이 주인공으로 낙점받은 건, A매치 평가전 등을 통해서 나타났듯이 기복이 없는 안정된 경기력이 첫 번째였다. 게다가 브라질은 개최국이었고 스페인은 지난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이었다. 브라질과 스페인을 드라마로 치면, 능력만큼 인기가 좋아 안방에서 잘 먹히는 캐릭터 재벌 2세 남자주인공쯤 되려나.

 

 

 

 

반면 독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등은 남자주인공으로는 2% 부족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도 있고 재능도 있고 매너도 좋다. 그러나 뭔가 아쉬웠다. 브라질과 스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져 보였다. 그래서 드라마 속 서브 남자주인공으로 보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여주인공(월드컵)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하는. 그래서 때로는 사랑이 아닌 집착을 부르기도 하는. 적어도 브라질월드컵이 개막하기 전까진 주요 등장인물의 구도가 그렇게 짜여졌다.

 

그런데 브라질월드컵이 개막되자마자 많은 시청자들이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스페인이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단 2회만에 드라마에서 빠지는 특별출연이었던 것. 대신 아르옌 로번을 앞세운 네덜란드가 스페인 대신 주인공자리를 차고 들어왔다.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좀 떨어지는 스타가 주인공으로 변경된 셈이다. 그런데 오히려 시청자는 최적의 캐스팅이라며 환호했다. 게다가 네덜란드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감, ‘네덜란드가 잉글랜드나 포르투갈처럼 발연기는 안하잖아?’

 

그리고 토너먼트로 접어들었다. 토너먼트는 조별예선과 다르다. 16강, 8강, 4강. 토너먼트에선 지면 끝이다. 드라마에서 배역을 들어내는 것이다. 주인공을 죽이든, 외국으로 보내든. 브라질-네덜란드-독일-아르헨티나 ‘꽃보다 축구’ F4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브라질에겐 칠레가. 네덜란드에겐 멕시코가, 독일에겐 알제리가. 그리고 위기의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브라질은 살 떨리는 승부차기, 네덜란드는 오초아라는 방패, 독일은 라마단 알제리를 우습게 본 죄.

 

 

 

 

반면 8강전은 오히려 F4에게 수월했다. 드라마에서도 위기뒤에는 여주인공과 한가로운 데이트를 즐기며 애정을 확인할 시간이 주어지듯이. 브라질-네덜란드-독일-아르헨티나도 여주인공(월드컵)에게 어필할, 월드컵을 차지할 자신들만의 매력을 뽐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바로 8강전이었다. 그러나 매력이 과하면 시기와 질투를 사는 법. 8강전에서 예상밖의 악역(?)이 등장한다. 원치 않았지만 신스틸러가 되고만 콜롬비아의 명품조연 수니가.

 

수니가는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에게 척추 골절이란 부상을 입혔다. 그것은 미네이랑의 비극을 부를 암시였다. 브라질과 독일의 준결승전. 브라질은 부상당한 네이마르와 경고누적으로 출전이 불가했던 티아고 실바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전차군단 독일에게 1:7의 대패를 당했다. 드라마 ‘2014 브라질월드컵’의 최대 반전이라 할 수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조직력이 그대로 녹아 든 독일이 공수의 핵 네이마르와 티아고 실바가 빠진 브라질을 이긴 건 이변이 아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그것도 브라질 홈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브라질이 1:7의 참패를 당했다는 건, 브라질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브라질이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은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기에 더욱. 대기업 브라질이 부도를 맞은 거고, 재벌 2세가 알거지가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또 다른 준결승전. 아르헨티나가 골키퍼 로메로의 선방쇼 덕에 승부차기 끝에 4:2로 네덜란드를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28년만에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결승전이 성사됐다. 유럽의 왕자 독일과 남미의 왕자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예고한다. 마지막회를 앞두고 과연 월드컵의 마음은 어디로 향할까.

 

상황은 객관적으로 독일에게 유리하다. 개최국 브라질에 7:1로 대승하면서 자신감도 최상일 것이고 체력적으로도 아르헨티나보다 하루를 더 쉬어 우위에 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와 연장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둔 터라, 결승전까지 체력이 얼마나 회복될 지 알 수 없다. 전력누수가 없는 독일과 비교해, 아르헨티나는 디마리아가 부상중이고 아구에로의 컨디션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 모든 면에서 2014 브라질월드컵 독일의 우승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오히려 독일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모든 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위기란 후반으로 갈수록 더 커지기 마련이고, 주인공은 인생 최대의 위기마저 극복한다. 지금 아르헨티나는 분명 위기다. 하지만 개연성을 담보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는 재능,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가 있다.

 

 

 

 

 

물론 독일에게도 드라마틱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린 월드컵에선 남미국가가 우승한다는 징크스. 이것이 축구의 신이 만든 불가항력의 법칙이라면, 독일은 인간이 아닌 신과 대결하는 것이다. 즉 독일도 아르헨티나만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어떤 나라도 깨지 못한 징크스를 깬다는 것,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일인가.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을 앞둔 지금, 2014 브라질월드컵을 복기해볼 때 각본없는 드라마가 아니라 각본있는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월드컵 우승으로 가는 과정이 재미와 완성도를 고루 갖춘 드라마를 뺨친다. 그리고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2014 브라질월드컵은 축구천재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를 위한 헌정드라마가 될 것인가. 축구의 신에 도전하고 승리하는 전차군단 독일의 신화 판타지드라마로 막을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