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알제리 패배, 집단멘붕에 빠졌다
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한국은 히딩크의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5의 대패를 당했고, 축구때문에 대한민국이 집단 멘붕에 빠졌었다. 그리고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또 한번 대한민국은 멘붕에 빠졌다. 1승 제물로 봤던 아프리카 알제리에게 전반전에만 세골을 내줬다. 골을 먹은 정성룡도, 골을 넣은 손흥민도 눈물이 글썽거릴 만큼의 멘붕.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던 홍명보 감독도. 해설하다 말문이 막힌 차범근, 이영표, 안정환도. 비내리는 새벽 거리응원에 참여했던 붉은 악마도. TV로 본 시청자도 멘붕이었다.
한국시간으로 23일 새벽 4시에 펼쳐진 2014 브라질월드컵 H조 예선 두번째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알제리에게 2:4의 완패를 당했다. 시작부터 수세에 몰렸던 한국은 알제리에게 전반전에만 세골을 내줬고, 후반전에 손흥민과 구자철의 만회골이 터졌으나 경기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16강 진출을 위해선 알제리전 승점 3점이 절실했던 홍명보호. 그러나 오히려 알제리에게 승점 3점을 헌납함으로써 H조 꼴지로 떨어졌고 16강진출도 요원해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국은 지난 러시아전과 같은 선발명단을 꾸렸다. 이는 수비적으로 잘 풀린 러시아전에 대한 만족,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겠다는 홍명보 감독의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알제리의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은 벨기에전 선발명단에서 무려 5명이나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이미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임했던 벨기에전과 달리 한국전엔 공격적인 축구를 예고했었고, 선발명단도 이를 반영했다.
즉 홍명보 감독은 알제리가 공격적으로 나올 것을 알았고 대비책은 러시아전의 재신임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비가 러시아전처럼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러시아전에서 가장 칭찬받았던 중앙이 무너졌다. 한국영은 커버가 안 됐고, 기성용의 볼배급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센터백 홍정호-김영권이 허수아비였고, 골키퍼 정성룡은 슈퍼세이브커녕 또 다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두 번째 골을 내줬다. 한마디로 한국의 중앙이 고속도로마냥 알제리 공격수들에게 시원하게 뚫렸다.
시작부터 한국선수들의 몸놀림이 무거워보였다. 상대선수를 놓치기 일쑤였고 우왕좌왕했다. 위기의 순간이 여러차례 있었으나 운좋게도 골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운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전반 26분 알제리의 이슬람 슬라미니에게 첫골을 내줬다. 중앙수비수 두 명이 상대공격수 한 명을 막지 못했다. 골을 너무 쉽게 내줬다. 그러나 경기는 90분이다. 실수도 할 수 있고 골도 내줄 수 있다. 그로 인해 선수들이 분발할 수 있다면 역전승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승부의 마침표를 찍는 치명적인 실수가 터졌다. 상대의 코너킥상황에서 수문장 정성룡이 볼처리를 제대로 못하고 라피크 힐라시에게 두 번째 골을 헌납했다. 첫 실점 후 정확히 2분뒤에 벌어졌다. 한 골은 두 명의 센터백, 또 한 골은 골키퍼의 실수였다. 2분 동안 두골을 그렇게 허무하게 내줬다. 상대가 잘 해서 골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최후방 우리 수비수와 골키퍼의 치명적인 실수로 내줬다. 거기서 사실상 경기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를 확인사살하듯이 38분에 자부선수가 쐐기골을 넣었다. 이 골은 멘붕에 빠진 포백이 단체로 상대에게 기부한 골이었다. 전반전 알제리에게 내준 세골 모두 상대가 잘 해서라기보단, 우리 선수들의 실수로 인한 집단 멘붕의 결과물이었다. 수비가 안 되다보니 공격도 안 됐다. 전반전 슈팅 수 0개. 치욕스러웠다.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고 반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전. 분위기 전환을 위해 빠른 선수교체가 있을 법 했지만, 홍명보 감독은 전반전 라인업을 고수했다. 여전히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한 박주영에게 기회를 줬으나, 박주영은 원톱으로서 이렇다 할 위협적인 장면을 엮지 못했다. 결국 교체투입된 김신욱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우리팀에 효과적인 공격옵션을 제공했다. 이청용대신 투입된 이근호 또한 구자철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러시아전에 이어 좋은 경기감각을 이어갔다.
후반전에는 확실히 우리 플레이가 됐다. 비록 상대에게 한 골을 더 내주긴 했어도, 손흥민 구자철의 골이 있었고, 김신욱 지동원을 비롯해 우리 공격수들이 수차례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후반전은 스코어 2-1의 차이 이상으로 우리가 상대 알제리를 압도했다. 벨기에전처럼 알제리 선수들은 후반전에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고, 상대적으로 우리 선수들은 멘붕에서 벗어나 악착같은 경기력으로 투혼을 불살랐다.
경기 후반 체력적인 약점을 드러내는 알제리를 상대로, 홍명보 감독은 전반전엔 안정적인 수비를 하고 후반전에 승부를 보려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계산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승부는 전반전에 결정나버렸다. 전반 초반 개인기를 앞세운 알제리의 공세를 우리 수비수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도 버텨주지도 못했고, 오히려 실수연발 속에 세골이나 헌납했다.
알제리전 패배가 아쉬운 건, 월드컵 본선에 앞서 홍명보호가 택한 두 번의 평가전 상대가 아프리카의 튀지니와 가나였다는 사실이다. 1승 제물이라 여겼던 알제리에 대비하기 위해 유럽과의 평가전대신 두 차례 모두 아프리카와 평가전을 가졌다. 두 번 모두 완패라는 수모를 당했음에도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개선되지 못한 경기력. 알제리전에서 승점 3점은 커녕 1점도 얻지 못했다는 건 월드컵이 끝난 후 홍명보호가 가장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제 한국은 벨기에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다. 16강 진출 경우의 수도 남아있다. 만일 한국이 벨기에에게 3골차이상의 대승을 거두고, 러시아가 알제리를 상대로 이기거나 비긴다면, 홍명보호의 기적같은 16강 진출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H조 최강 벨기에를 이기기도 쉽지 않거니와, 다득점은 더더욱 힘들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벨기에가 알제리전의 홍명보호마냥 집단 멘붕에 빠지지 않는 한 말이다. 때문에 벨기에전은 16강에 대한 미련보다는 한국특유의 근성있는 축구로 유종의 미라도 거둘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