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전 앞두고 박주영 따봉? 이승엽의 눈물을 기억하자
대한민국 홍명보호가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예선 러시아와의 첫경기를 1-1로 비겼다. 무승부라는 결과는 우리에게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됐다. 남은 알제리와 벨기에전을 잘 준비한다면, 한국의 16강 진출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가 러시아전을 복기하는 것. 홍명보호의 어떤 점이 좋았는가. 반대로 어떤 점이 아쉽고 불안했으며 개선해야 할 부분인가. 러시아전을 통해 드러난 홍명보호의 강점은 극대화시키고 약점은 최소화시키는 것이, 현재로선 알제리와 벨기에를 분석하고 대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잘 된 점이 무엇인가. 중앙의 기성용-한국영 콤비다. 안정적으로 대표팀의 볼 점유율 높이며 패스게임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 기성용과 상대 공격수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고 부지런하게 압박하며 일차 저지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업그레이드 진공청소기 한국영이 단연 돋보였다. 중앙수비수 홍정호-김영권도 제공권 좋은 러시아에 맞서 위협지역에서 불필요한 반칙없이 상당히 효과적인 수비력을 선보였다.
반대로 잘 안 된 점은 무엇인가. 골을 넣어야 할 때, 넣지 못한 점이다. 원톱 박주영을 중심으로 2선의 구자철-손흥민-이청용이 골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찬스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교체 투입된 이근호가 자신감을 가지고 중거리슛을 날리지 않았다면, 상대 골키퍼 아킨페프의 실수없이, 과연 한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득점할 수 있었을까. 다시금 마주한 한국대표팀의 고질적인 득점력 부재는 알제리전을 앞두고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러시아전이 끝난 후, 한국대표팀 중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비난을 많이 받았던 선수가 박주영이었다. 55분 뛰는 동안 슛한번 때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박주영을 대신해 교체 투입된 이근호는 자신있는 드리블과 함께 슛을 날렸고 골로 연결시켰다. 때문에 박주영이 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홍명보호 부동의 원톱으로 박주영이 필요한가에 대한 네티즌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심지어 박주영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 댓글도 난무한다. 언론마저 박주영을 혹평한 외신의 힘을 빌려 박주영 따봉이라며 그를 조롱하는 듯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박주영이 네티즌에게 맹비난을 받을 만큼 부진했는가. 일단 경기 자체가 다운됐다. 러시아나 한국이나 수비지향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러시아의 카펠로감독도, 한국의 홍명보감독도 월드컵 본선 첫경기에 대한 부담감속에 상대를 의식했고,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양쪽 전력이 비슷한데 두팀 모두 수비축구를 했으니, 골 찬스가 쉽게 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유독 박주영만 눈에 띄지 않았나. 러시아의 공격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전반전 한국의 결정적 골 찬스는 아크 정면에서 슛을 날린 손흥민에게 두 번, 구자철에게 한번 있었다. 그리고 손흥민의 골 찬스 두 번은 박주영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는 상대수비수를 데리고 빈 공간을 빠져 드는 움직임, 두 번째는 손흥민에게 떨궈 준 헤딩패스. 손흥민은 결정적 찬스를 맞았지만 발목에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두 번의 슛 모두 골문 밖을 벗어났다. 그래도 상대에게 충분한 위협을 줬다. 상대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기 힘들 게 만든 건 손흥민이란 이름값, 효과적인 역습이 가능한 위협적인 움직임과 박주영의 도움을 받은 슛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팀의 타이트한 수비전술에 원톱은 고립되기가 쉬웠다. 외신에서 따봉 박주영이라고 우스개소리나 할만큼 실질적으로 경기자체가 지루했다. 그래도 그나마 우리에게 결정적인 골찬스가 났던 건 박주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2006 독일월드컵 당시 프랑스전 조재진이 떠오를 정도로, 러시아전 박주영은 상대수비수와의 헤딩경합에서 매번 우위를 가져갔다.
즉 우선적으로 양팀의 전술적인 부분, 원톱으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했을 때, 박주영에게 잘 했다 까진 아니어도, 무난했다 정도로 봐줄 순 있었다. 그럼에도 다수의 네티즌은 박주영을 자살골 넣은 역적수준으로 몰아가니 안타깝다. 언론마저 가세해 따봉 박주영이니 뭐니 조롱에 동참중이다. 그게 박주영선수는 물론이거니와, 홍명보감독과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어떤 플러스가 되겠는가. 더군다나 지금은 평가전이 아닌 살얼음같은 본선을 치루고 있는데 말이다. 태극마크의 무게감, 부담을 느낄 선수들에게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에 비난과 조롱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가혹해 보이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야구경기가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이다. 한국은 일본과 결승진출을 다퉜다. 그 때 한국의 4번타자는 예선에서 극도로 부진했던 이승엽이었다.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왜 이승엽을 빼지 않는냐고. 이승엽에 대한 비난, 김경문감독에 대한 비난. 게다가 일본의 호시노감독은 준결승전을 앞두고 이승엽을 폄훼하는 인터뷰를 했다. 이승엽이 있어서 한국 공격력이 무섭지 않다는.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이승엽은 7회 2-2에서 보란듯이 결승투런홈런을 날렸다.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과연 이승엽이다. 과연 국민타자다. 그리고 이승엽과 김경문감독의 인터뷰도 감동이었다. 왜 부진한 이승엽을 계속 기용했냐는 질문에, 김경문감독은 “이승엽이잖아요.” 단 한마디로 선수에 대한 덕장의 신뢰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이승엽선수는 인터뷰도중 눈물을 쏟았다. 예선전에서 너무 못해서, (국민들과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그리고 이승엽은 쿠바전 결승에서도 홈런을 날렸다.
국민타자의 눈물은 감동이자 안타까움이었다. 태극마크에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으면. 얼마나 국민들에게 미안했으면 그 강심장의 상남자가 눈물을 흘렸겠는가.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뿐 아니라. 아테네올림픽에서도, WBC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국민타자로 늘 중요할 때 한방, 국민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일시적으로 부진했다고 해서 맹비난을 받았다.
청소년대표시절부터 부동의 원톱이었던 박주영. 한일전 킬러로 라이벌 일본에겐 두려움의 대상. 지난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어 대한민국 16강을 견인했고,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3,4위전에서 1골 1어시스트로 홍명보호에 동메달을 안겼다. 큰 경기에 강했고, 중요한 순간에 박주영이 해결사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스트라이커의 숙명처럼 매번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겨우 조별예선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인데, 박주영에 대한 평가가, 의리축구 어쩌고 하며 홍명보감독에 대한 비아냥이 너무 냉혹하기만 하다.
박주영이 부진하면 주전에서 뺄 수도 있다. 그를 대체할 김신욱도 매우 좋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또 원톱없이 제로톱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어떤 결정을 하든 홍명보감독이 한다. 우리는 홍명보감독을 믿어야 한다. 감독을 흔드는 여론이 형성되는 게, 과연 대표팀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비록 러시아전 무승부란 결과가 아쉽긴 해도, 과정에서 16강 진출의 희망을 봤기에 2차전 알제리와의 경기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덕분에 선수단의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고, 주장 구자철을 비롯해 선수들은 알제리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홍명보호는 하나의 정신, 하나의 팀을 강조했다. 그 하나속에는 우리 국민이 들어갈 자리도 있다. 그런데 우리 편 선수를 비난하면서, 우리가 하나 되길 바라는가. 경기가 안 풀린다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끼리 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팀 선수를 믿지 못하고, 선수를 향한 욕을 입에 달고서 무슨 12번째 전사를 외치며 응원할 수 있는가. 벌써 브라질 월드컵이 끝났는가. 이제 겨우 시작이다. 16강 진출을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알제리, 벨기에전을 앞두고 있는 홍명보호와 붉은 악마에겐 불신이 아닌 신뢰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기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속상하고 서러워서 눈물 흘리게 만들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