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예능계의 인맥문화 2편 - 대형기획사의 출현과 라인의 부작용

바람을가르다 2009. 4. 11. 17:02

예능계가 라인과 인맥으로 이슈를 뽑아내던 시간을 가만히 돌아본다.
라인, 인맥이란 건 어느 조직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그러나 브라운관에선 금기시 되야할 것이 바로 인맥과 라인이다.
금기를 깨고, 오히려 웃음코드와 연결시킨다.
웃었다. 그리고 웃음은 얼마 못 가 사라진다.
그러나 라인은 더 굵고 단단한 줄로 나타난다.

예능계는 언제부터,
무엇때문에 라인에 목을 매게 된 것일까?
그 배경으로 필자는 지난 1편 에서 두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공영방송 KBS와 MBC로 양분되던 시기에 등장한 민영방송 SBS의 출연.
둘째,
대형기획사의 출현을 통한 소속사 패키지. 



SBS의 개국은 단순히 채널 하나가 생긴 것만은 아니었다.
필자는 당시, 볼 수 있는 채널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점에 어린 마음에 무척 반겼다.
그러나 진정 행복했던 건 방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을 테다.
일터가 하나 더 생기는 거였으며, 일거리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예능계만 놓고 볼 때,
당시는 코미디가 유행이었고, 개그맨은 방송사에 소속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연예기획사가 아닌 방송국 직원의 형태를 띤다.
KBS 전속 개그맨식으로 방송사가 앞에 붙고 '전속'이란 단어가 뒤를 받친다. 
KBS건, MBC건 자신이 소속된 방송국 프로에만 나올 수 있었다.
지금처럼 방송 3사를 넘나드는 출연은 꿈꾸지도 못하는 상황. 
그러나 탤런트는 개그맨과 달랐다.
물론 탤런트 역시 전속의 개념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비교적 타방송의 출연이 개그맨에 비해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회당 출연료의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프리였던 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희극인들에게 방송사는 평생 직장개념이 강했고.
소속된 방송국에 충성을 다하게 되있다.
이 점의 연장선에서 돌이켜 볼 때,
개그맨들의 위계질서가 가수나 탤런트에 비해 빡센 이유가
방송국의 소속감이 다른 분야 연예인 비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내부의 결속력을 다져 가면서 일종의 노조형태를 띄기 위한.
방송사에 대항해 개그맨들의 밥그릇을 다져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전통처럼 내려온 게 아닌가도 싶다.

그와중에 민영방송 SBS가 개국한다.
SBS는 개국 전 타방송국에서 뛰던 선수들을 스카우트 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KBS의 심형래,김미화,최양락,이성미, MBC의 서세원, 박미선 등
그러나 이 때만 해도 방송2사에서 3사로 바뀌었을 뿐
타방송 출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 SBS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뿐.

KBS에서 주가를 높이던 김국진,김용만의 감자꼴 4인방이 MBC에 출연하는 걸
막기 위해 양방송사의 예능인까지 나섰던 건 유명한 일화다.
양 방송사간에 마찰을 빚은 것도 사실이고.
김국진을 비롯한 4인방은 KBS 츨연정지를 먹게 된다. 
그러나 위 사건은 방송사간의 과열경쟁을 부추기는 단초가 된다.


인기 MC  및 개그맨을 빼오기 위한 방송3사간에 머니게임이 시작된다.
<일밤> 진행자로 이름을 날린 주병진은 컴백프로를 SBS로 정한다.
당연히 MBC의 배신감은 컸다.
그리고 서세원은 KBS로 진출해 <서세원쇼>를 진행한다.
MBC의 이홍렬은 SBS로, 
이후, 신동엽, 이영자, 남희석, 박수홍 등을 비롯 후배들도 그들의 뒤를 밟는다.
돈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가 열렸다. 
전속의 개념이 사라지고 프리랜서들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영리해진 개그맨들은 예전같은 전속 계약을 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그들은 프로고, 자신의 몸값을 더 쳐 주는 곳으로 발을 옮기게 되있다.
KBS와 MBC는 암묵적 룰은 자금력을 동원한 SBS의 등장과 함께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이경규가 MBC에서 예능국장급 대우를 받았다는 말을 언급한 적 있다.
왜 일까?
주병진, 서세원, 이홍렬 등 같은 1세대 MC들이 돈에 방송사를 옮겨갈 때.
신동엽, 이영자 등 후배들이 움직일 때도, 심지어 강호동이 MBC를 떠날 때도
이경규는 MBC에 남는다.
이경규가 그들보다 못해서? 
이경규는 <일밤>을 <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등을 통해
국민 버라이어티를 양산하고 완성시켰으며.
MBC의 각종 예능 프로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한다.
당연히 MBC는 방송사의 간판 MC를 
타방송에 뺏기지 않기 위해 그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이경규라고 해서 돈이 부르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을까?
김국진, 신동엽이 나타나기 전, 주병진에 이은 최고의 MC는 이경규였다.
그런 위치에서도 타방송으로 이적하지 않고 의리를 지킨다.

작년이었나? 그가 출연한 어느 토크쇼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좀 더 계산적이지 못한 게 가끔 후회가 된다고.
젊었을 때, 몸값을 더 올려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시에 자신은 비지니스적이지 못했다고. 돌이켜보면 후회가 될 때가 있다고.

이경규는 김국진,김용만이 MBC에서 자리를 잡고, KBS에서 출연정지가 풀리자
그들도 방송 3사를 옮겨가면 방송한다.
그때서야 이경규도 MBC이외의 방송국에 진출한다.   
김국진, 신동엽, 남희석이 돌아가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이경규는 최고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뒤에야 MBC를 떠나 움직인다.
어찌보면 누구보다 높은 몸값에 가장 먼저 이적을 할 수 있었던 이경규는
누구보다 늦게 이적신고를 하게 된다.
그의 MBC에 대한 충성도와 위치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MBC에서도 그에게 국장급 대우를 해줬다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이후, 1세대 MC이자 가장 이른 시기에 타방송사로 이적을 감행했던 
서세원, 이홍렬 등이 브라운관에서 사라졌지만 이경규는 남았다.
단지 이경규의 재능때문일까?
그가 심어놓은 돈이 아닌 신뢰의 뿌리가 썩지 않고 아직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소리없이 사라진다.
같은 위치에서 지켜보는 프리랜서들의 입장은 어떨까?
자신도 그들의 전처를 밟게 되는 건 아닐까?
위기에 빠진다면 과거처럼 자신을 변호해 줄 노조개념의 희극인실도 없다.
최고자리에 올라있는 사람도, 오르려는 사람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형태의 노조개념을 찾아야한다.

대형기획사의 출현을 통한 소속사 패키지. 

방송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으로 승부하는 세상.
그러나 이 점이 또 다른 라인 개념을 이끌어 내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본다.
예전에는 방송국이란 온실안에서 자랐지만,
온실을 벗어나 프리로 뛰게 될 경우, 언제 팽당하고 추락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90년대만 해도 방송사의 입김을 감당해 낼 연예인은 없다.
3사가 언제든 합의하면 그 출연자는 더이상 TV에 얼굴을 내밀 수 없다.

이경규가 일전에 인터뷰에 밝혔듯이,

"인기라는 건 유리창에 낀 습기같은 것이다"

방송의 트랜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어떤 누군가에 의해, 지금의 인기가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상황을 매일같이 겪어야한다.
자신이 추락하면 잡아줄 사람이 없다.
방송국이 아니라 본인이 본인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맥이 더욱 필요한 시기 도래한 것이다.
비지니스 인맥을 바탕으로 하는
매니지먼트사, 기획사로 예능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소수의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은 이합집산을 통해 대형기획사로 거듭난다.
대표적으로 팬텀, 싸이더스 등에
최근에 신동엽, 유재석의 DY와 강호동, 고현정의 워크원더스가 합병한 디초콜릿까지.
일본 예능업계를 벤치마킹한 대형기획사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수, 배우, 개그맨들 인기만 있으면 끌어모은다.
대형기획사의 입김이 어느 덧 방송국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진다.
제작과 편성에도 관여하기 시작한다.
인기있는 소속사 연예인을 미끼로
소속사 MC의 방송국 프로그램 지분율을 늘리고,
신인급 연예인 및 중견배우까지 끼워 파는 형태로 까지 변질된다.
일명 기획사 패키지.
비지니스를 바탕으로 한 차가운 인맥구도가 형성된다.

반면에 규라인, 강라인, 유라인은 소속사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관계로 맺어지기 때문에 기획사 패키지와 구별된다. 
그들은 예능계의 선후배로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정(情)에 의한 인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소속사란 언제든 이해관계와아 맞물려 갈라설 수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간에 인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인맥을 만들어간다. 
예전에 단단한 결속력이 돋보이던 방송국내 희극인실이 사라진 프리랜서들에게
딱딱한 건물에서 벗어나 편안한 장소에서 사적인 교류와 만남이 이뤄진다.  
과거의 상하관계보다 동료애가 묻어나는 장점을 가진다.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건 결국 사람의 정에 의한 인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소속사패키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들의 프로그램에도 자신과 같은 소속사 연예인을 출현시키는 경우가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도 소속사와 맺은 계약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라인의 좋은 취지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오는 이유중에 하나다.
소속사 라인, 패키지.

선후배간에  끌어주고 당겨주는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지나치면 보기에 거북한 게 사실이다.
그것이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다면, 
더군다나 시청자를 볼보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좋은 취지든 나쁜 취지든 인맥과 라인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예능판이 좁아지고, 시청자는 재방송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방송계는 라인의 유혹에서 멀어질 수 없다.
기획사는 회사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상업을 추구하는 방송국은 광고를 확보하기 위해
시청자가 보고 싶어하는 인기 연예인을 출현시켜야 되니까.

그 모습에 우린 실망하고, 때론 눈살을 찌푸린다. 
어찌보면 라인을 만들게끔 알게 모르게 어시스트란 건 시청자인 우리들 일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