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무릎팍도사엔 없고, 이경규 힐링캠프에 있는 건?
강호동의 ‘무릎팍도사’가 등장하면서, 토크쇼는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는다. 무릎팍도사의 성공을 벤치마킹한 김승우의 ‘승승장구’와 이경규-김제동-한혜진의 ‘힐링캠프’는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1인 토크쇼로 자리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유재석의 ‘놀러와’나 ‘해피투게더’, 강호동의 ‘야심만만’과 같이 서너명의 게스트가 에피소드를 나누는 토크쇼는 여전히 건재했고, 1인 토크쇼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게스트 물량공세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 ‘세바퀴’, ‘강심장’등도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토크쇼는 예전만큼 시청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시청률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때문에 8년 아성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가 전격 폐지됐고, KBS는 1인 토크쇼 김승우의 ‘승승장구’와 ‘두드림’을 종영시키기에 이르렀다. ‘무릎팍도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해 강호동의 방송복귀와 맞물려 가장 기대감을 주었던 ‘무릎팍도사’는 현재 시청률 5%내외로 부진을 겪고 있다. 언제 폐지될지 모르는 칼끝위에 서 있다. 게다가 자수는 했어도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유세윤의 하차가 논의되는 중이라 안팎으로 위기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만일 강호동의 ‘무릎팍도사’가 고전중인 시청률의 반등없이 끝내 폐지된다면, 지상파 1인 토크쇼는 ‘힐링캠프’만 남게 된다. 토크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늘 이슈의 중심에 섰던 ‘무릎팍도사’가 어쩌다 이 지경에 됐을까. 공교롭게도 닮은 꼴 경쟁프로그램인 힐링캠프를 보면 이유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무릎팍도사엔 없고 힐링캠프엔 있는 건?
힐링도사 강호동, 무릎팍캠프 이경규?
초창기 ‘무릎팍도사’가 흥했던 건,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토크쇼였기 때문이다. 무릎팍도사 강호동, 건방진도사 유세윤, 니나노 올밴. 토크쇼에 캐릭터를 입혔다. 캐릭터로 게스트에게 접근하다보니, 토크의 수위를 거침없이 높일 수 있었고 매순간 MC들은 능글맞게 변신이 가능했다. 특히 힘,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강호동은 메인MC로서 캐릭터를 120% 활용해, 재미를 겸비한 양질의 토크쇼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잠정은퇴이후 1년여 만에 복귀한 강호동은, 예전의 힘과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게스트에게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무릎팍도사’만의 장점이 사라진 꼴이다. 강호동의 주무기 독설에 가까운 날카로운 질문은, 오히려 착한 토크쇼로 일컬어지는 ‘힐링캠프’ 이경규가 즐겨 쓰고 있다. 프로그램이 헷갈릴 정도다. 강호동은 ‘힐링도사’를, 이경규는 ‘무릎팍캠프’를 진행하는 듯한.
그럼에도 힐링캠프 이경규에게 독설MC라는 인상은 풍기지 않는다. 왜 일까. 바로 한혜진효과다. 간혹 게스트를 향한 이경규표 독설에 가까운 직격탄으로 분위기가 자칫 경직될 수 있음에도, 중간에서 한혜진이 질문을 부드럽고 따뜻하고 유연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한 재치로 독설 이경규를 커버해주니, ‘힐링캠프’가 착한 토크쇼라는 인상을 유지한다. 덕분에 이경규는 강하고 집요한 캐릭터를 마음껏 살리면서도 밉상이미지와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이경규에게 한혜진의 존재감은 자신의 약점, 부족함을 채워주는 최고의 파트너이상인 셈이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엔 한혜진이 없다. 대신 강호동의 독설을 두배로 강화해 세배의 재미를 창출하는 건방진도사 유세윤이 있다. 유세윤은 한혜진과 포지션은 같아도 캐릭터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강호동의 독설이 죽자, 유세윤도 덩달아 힘을 잃고 마는 형국이다. 무릎팍도사와 건방진도사의 시너지효과가 예전만큼 나오질 않는다. 강호동이 착한MC, 힐링도사로 캐릭터를 갈아탄다면, 차라리 유세윤이 아닌 한혜진과 같은 미모의 여자MC,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화사하고 유연하게 할 뿐 아니라, 재치와 순발력까지 겸비한 MC가 효과적인 상황이다.
무릎팍도사 김경호vs힐링캠프 장윤정
물론 강호동이 무릎팍도사가 아닌 힐링도사가 된 데에는, 또 다른 결정적 이유가 있다. 바로 게스트다. 과거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엔 주로 사건사고가 많았던 연예인이 출연했다. 강호동은 이슈와 논란이 되는 게스트의 사건사고를 집중적으로 건드려 시청자의 궁금증, 가려움을 긁어주었다. 그런데 최근 이슈가 될 만한 연예인들이 죄다 힐링캠프를 찾고 있다.
지난 해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문재인이란 거물 정치인부터, 스포츠스타 최경주-추신수에, MC들이 직접 감동의 올림픽스타를 찾아 런던까지 날아갔다. 그밖에 토크쇼에서 보기 힘든 톱스타 이병헌-고소영은 물론이고, 최근엔 출연자체가 논란이 된 설경구-송윤아 부부, 성소수자의 아픔을 얘기한 홍석천, 결혼식을 앞두고 가족과 갈등을 빚는 장윤정까지. 시청자의 관심이 뜨거운 유명인사를 재빠르게 섭외하는 능력을 보였다. MC는 독설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고 게스트는 해명할 기회를 얻는 프로그램이 무릎팍도사가 아니라, 착한 토크쇼로 불리는 힐링캠프 몫이 된 것이다.
반면 ‘무릎팍도사’는 논란도 없다. 서태지-이지아와 삼각스캔들에 휘말린 정우성을 제외하곤, 시청자가 궁금해 할 만한 논란, 핫한 이슈에 선 연예인이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최근만 봐도 유준상-조진웅-박성웅-유진-김경호 등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톱스타는 아니어도 꾸준한 활동과 좋은 이미지로 호감을 주는 연예인을 주로 섭외했다. 강호동이 독설수준의 쎈 질문을 날릴 만한 게스트가 아니었다. 때문에 강호동은 게스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호응하고 들어주는, 착한MC, 힐링도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설사 게스트에게 시청자가 잘 모르는, 먼지로 남을 치부가 있다한들 억지로 쥐어짜내기도 민망하다.
30일 방송된 무릎팍도사 ‘김경호’편은 근래 토크쇼에서 보기 힘든 최고의 재미를 주었다. 게스트 김경호의 아픔, 극복 그리고 성장이 담긴 솔직한 이야기와 적극적인 태도는, 그의 재치넘치는 입담과 조화를 이뤘고 MC 강호동의 리액션도 매끄러웠다. 김경호의 토크속에 독설이 낄 틈도 없었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재미는 넘쳐났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저조했다는 게 아쉽다.
‘무릎팍도사’는 분명 위기다. 닮은 꼴 토크쇼 힐링캠프엔 있지만 무릎팍도사엔 없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변화가 절실해진 무릎팍도사가 어떤 방향에서 기존토크쇼들과 차별화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과거의 독한 무릎팍도사를 쫓을 것인가. 지금 분위기처럼 힐링도사로 남을까. 제 3의 변신을 시도할 것인가. 유세윤의 하차논의와 맞물려, 강호동과 제작진이 어떤 카드를 내놓고 반전의 계기로 삼을 지 궁금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