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 서미도vs‘야왕’ 주다해, 리얼악녀와 판타지악녀
‘야왕’ 주다해(수애)의 재평가가 시급하다? 인기드라마 ‘야왕’이 올해 주중드라마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할 수 있었던 배경엔, 희대의 악녀, 국민악녀로 통했던 주다해란 여주인공 덕분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끼니를 걱정할 만큼 늘 배고픔과 전쟁을 치룬 여자 주다해. 가난은 부모를 앗아갔고, 개만도 못한 의붓아버지를 만나게 했다. 지독한 가난의 터널을 거쳐, 주다해는 쌀밥같은 남자 하류(권상우)를 만났다. 덕분에 밥은 먹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주다해는 밥만으로는 살 수 없는 여자였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었고 더 많은 걸 누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미국 유학비용을 대가며, 자신을 공부시키기 위해 온몸을 다해 뒷바라지했던 남편 하류을 버렸다.
물론 하류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보다 성공에 배고픈 여자 주다해는 타협하지 않았다. 하류와의 유일한 끈이 돼버린 딸 은별이마저 교통사고로 잃고, 주다해는 거침없이 폭주했다. 백학그룹을 먹기 위해 백도훈(정윤호)과, 청와대를 삼키려 석태일(정호빈)과 사랑없는 결혼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가 주다해에게 놀아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드라마 ‘야왕’은 묻지마 악녀, 국민악녀 주다해를 완성시키기 위해, 개연성따윈 개나줘식 전개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게 없는 여자. 주변 남자를 모두 호구로 만드는 여자. 클린턴에 오바마도 홀릴 여자가 주다해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주다해는, 시청자에게 있는 욕, 없는 욕을 이끌어내며 악녀의 역사를 새로 썼다.
주다해는 사랑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언행에 공감할 수 없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녀였다. 하지만 짜증나진 않았다. 복수를 입으로 일관했던 하류를 보면서 짜증나면 짜증났지, 막가파식 일을 저지르고 다닌 주다해가 짜증나진 않았다. 왜 일까. 드라마 ‘야왕’속 주다해라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스러웠기 때문이다. 백학그룹이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근본없는 여자 한명에게 쉽게 흔들리는 것부터가, 공감하기 힘들다. 특수요원 아이리스를 방불케하는 하는 네버다이 주다해의 활약상은 어떤가.
어느 순간 ‘야왕’은 멜로드라마도, 복수드라마도 아닌 막장스러운 전개를 바탕으로 한 B급 코미디드라마같은 인상을 주었다. 말이 안 되는 스토리로 인정하고, 그저 주다해가 어떤 막장짓을 할 지 궁금해서 보는 드라마가 됐다. 주다해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화성인같은, 판타지스런 캐릭터에 가깝기 때문에, 그녀의 막장짓을 이해는 못해도 부담없이 소비할 순 있었던 셈이다.
최근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때’의 서미도(신세경)를 보면 ‘야왕’ 주다해가 생각난다. 서미도는 주다해같은 악녀가 아니다. 한태상(송승헌)과 이재희(연우진)사이에서 갈팡질팡 어장관리를 하는 듯해도, 악녀라고 단정할 순 없다. 또한 그녀가 처한 상황을 볼 때, 이해가 가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서미도는 주다해보다 밉상이다. 보면 불편하고 짜증난다. 악녀보다 더 악녀같다. 왜 일까.
판타지악녀 주다해와 달리, 서미도는 현실에 가까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양다리를 걸치는 여자의 보편적인 특성이 서미도안에 녹아있다.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여자. 그래서 그녀의 언행은 지켜보기에 불편함을 동반한다. 같은 욕을 해도, 판타지악녀 주다해에게 하는 욕과 리얼악녀 서미도에게 하는 욕에 실린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엔 결정적으로 서미도의 모호한 행실이 한몫 거들었다. 두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 마치 양다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여주인공의 가증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신에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눈물을 짜내가며 연약하고 순수한 척은 다 한다. 차라리 하류에게 꺼지라며 입장을 분명히 하고 악행을 저질렀던 주다해가 시원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때’가 본격적인 치정멜로를 지향하면서, 드라마가 오히려 총제적인 난국에 빠졌다. 억지로 맞추려는 개연성, 오해의 무한 리필,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한태상은 자신의 집과 서점을 오가는 이재희와 서미도의 밀애를 목격하고도, 여전히 서미도를 사랑하며 웨딩드레스를 입히고 캠코더로 감동의 프로포즈를 준비한다. 구용갑(이창훈)이 한태상을 저주하며 궁지로 내모는 것도 쉽게 공감하기 힘든데, 백성주(채정안)마저 쌍팔년도 찌질스런 거짓말쟁이 악녀코스를 밟고 있다.
무엇보다 서미도의 꿈, 배신 그리고 불분명함이 ‘남자가 사랑할때’의 아킬레스로 작용한다. 서미도의 장점이었던 돌직구는 어디로 증발했나. 서미도는 드라마 ‘남사’의 여주인공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언행을 지켜보면, 두 남자사이에서 갈등하는 안타까운 여주인공이 아닌, 양다리를 합리화하려는 얄팍함이 느껴져 거부감을 동반한다. 여주인공이 사랑스럽지 않으니, 도미노처럼 그녀에게 목을 매는 한태상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심을 잡아주는 창희(김성오)가 유일하게 빛날 뿐, ‘남사’의 주요캐릭터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빛을 잃는 인상이라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