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투컷, 미쓰라 진과 함께 인기 힙합그룹 에픽하이 (Epik High) 로 활동중인 타블로가 새앨범 발매에 맞춰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찾았다. 이틀 전 이미 그가 소속된 힙합크루 무브먼트 ( Movement : Tiger JK, 리쌍, 다이내믹 듀오, 에픽하이, 부가킹즈, bizzy, 은지원, 양동근 등) 일부 멤버들과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통해 얼굴을 비춘 터라, 굳이 무릎팍도사를 찾은 것은 지나친 앨범홍보로 느껴질 만큼 대중들에게 관심보단 냉소를 낳기 충분했다. 공식적으로 결혼발표를 한 타블로의 아내가 될 영화배우 강혜정의 뱃속에 그의 아이가 숨을 쉰다는 것이 죽어버린 호기심에 그나마 불을 지펴 준 격이 되버렸다. 타블로와 강혜정의 가쉽성 연애사와 결혼을 앞둔 근황으로 에피소드가 채워질 것이란 시청자의 우려는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무너졌다.
기존에 보여왔던 이미지와 달리, <무릎팍도사>에서 타블로는 ‘에픽하이’의 리더이자 프로듀서의 모습도, 연예계의 공식 속도위반커플로서도 아닌, 철저하게 인간 ‘이선웅’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무릎팍도사 강호동이 힙합을 좋아하는 리스너들 사이에서 몇 년전 억측성 루머로 떠돌았던 ‘타블로의 음모론’을 은근슬쩍 건드리며 시작한 오프닝. 연이어 건방진도사 유세윤이, 강혜정과의 속도위반을 거론하며 시간차로 작렬하는 잽에, 예상했다는 듯 재치있게 응수한 타블로. 그리고 2007년 작품으로 작년에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헐리웃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 카메오로 출연한 그를 도마위에 올리며 유쾌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았던 헐리웃영화로 타블로와 구혜선이 카메오로 깜짝 출연해 넷상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조연배우로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을 받았던 구혜선이 일일드라마 <열아홉순정>과 일정이 겹치며 카메오에 만족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타블로 이전에 사춘기 이선웅의 성장통.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가족과 떨어진 채, 캐나다에서 보낸 외로웠던 유년시절에서 매듭을 풀기 시작한 그의 인생스토리. 여기에 동양인으로서 부당한 인종차별을 겪은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 에피소드는 그가 이미 여러 각종매체를 통해 밝혔던 사실이라 새롭지 않았다. 다만 영화 <파이란>에서 최민식과 주연을 맡았던 여주인공 장백지의 남편이자 홍콩인기배우 사정봉과 당시 친구였다는 사실은 신선한 이슈가 될만 했다. 동시에 그 덕분(?)에 퇴학까지 당해야 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후 한국으로 들어와 외국인학교에 힘겹게 적응한 과정과 미국 명문대학 스탠포드에 입학하게 된 계기까지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친구의 죽음이 부른 조울증과 잃지 않았던 꿈.
헐리우드 키드가 되기 위해, 영화와 음악 그리고 꿈을 공유했던 단짝 친구가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세상과 이별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로 인해 조울증을 얻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 만큼 이선웅에게 찾아온 충격은, 굳이 그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친구의 유언은 스탠포드 명문대생 이선웅에서 힙합MC 타블로가 되는 교차로가 되었다.
꿈은 현실과의 타협속에 이뤄진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를 통해 정형돈과 에픽하이가 함께 한 삼자돼면의 ‘전자깡패’ 음원을 무료로 배포한 이유와 에픽하이 홈페이지를 통해 해외시장을 공략한 일화는 뮤지션으로서 꿈과 현실이란 경계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그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릎팍도사>에 나와 새앨범을 홍보할 수밖에 없는 것도,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하는 대중음악의 현실이라며 난감해하는 타블로. 그러나 그가 꿈을 심어야 할 곳은 현실이다. 꿈이 현실로 나타나려면, 그가 말하는 타협은 순리가 아닐까.
이어 속도를 지키지 못해 예비아빠가 된 소감부터, 곧 신부가 될 강혜정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통해 남은 여백을 채우며 끝을 맺는다. 특히나 강혜정이 자신의 꿈이라는 표현으로 이어지기 까지 늘어놓은 일련의 발언은, 그는 사랑도 참 똑똑하게 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동안 무대위에 에픽하이가 아닌, 타블로 개인을 돌아보면 최고의 브레인을 가진 연예인, 스탠포드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학벌, 아이큐 170, 영화배우 강혜정의 남자, 예능에서 보여준 4차원적인 발언 등이 먼저 떠오른다. 진지한 면은 보이지 않고, 호감도 비호감도 아닌 건조한 경계선에 선 대표적인 연예인으로 비춰진 게 사실이다. 그러한 무미건조한 편견들을 <무릎팍도사>에 나와, 힙합하는 타블로가 아닌 보통 남자 이선웅으로 제대로 디스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근 영화홍보를 위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연예인 게스트들이 준 실망감은 컸다. 마치 읽었던 신문기사를 다시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방송내지,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무릎팍도사>가 예전의 영광을 찾으려면, 비연예인 게스트의 비율을 높이는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프로그램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나 솔직담백했던 에픽하이의 힙합MC ‘타블로’ 편을 지켜보며, 편견에 가려진 연예인이 아닌 인간 이선웅을 만날 수 있었던 점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무릎팍도사>의 본모습을 연출한 것도 반가웠다. 결국 제작진이 아닌 출연하는 게스트의 마인드가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며,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타블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대중앞에 서는 뮤지션으로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바라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어 강혜정과 행복한 가정을 이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