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출생의비밀 유준상, 치명적인 바보이미지 벗을까

바람을가르다 2013. 5. 5. 11:59

 

 

 

일반적으로 멜로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은 자석으로 비유하면 N극과 S극의 경향을 띤다. 예를 들어 남자주인공이 재벌 2세이면 여자주인공은 가난한 경우가 많다. 즉 살아온 배경, 집안, 직업, 학벌, 성격 등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녀가, 우연한 ‘만남’의 연속과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모든 악재를 극복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과정과 해피엔딩을 쫓는다.

 

SBS주말드라마 ‘출생의비밀’도 이러한 드라마의 공식에 충실하다. 여자주인공 정이현(성유리)은 보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소유자다. 하버드대학을 나온 천재다. 예가그룹의 창시자 최국(김갑수)의 딸, 재벌 2세이기도 하다. 성격도 좋고 미모까지 출중하다. 사실상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여자인 셈이다.

 

 

 

 

반면 남자주인공 홍경두(유준상)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바보에 가깝다고 느껴질 만큼 무식하다. 그래서 쉽게 사기도 당하고 빚더미에 오르기도 한다. 잡년이란 말이 입에 밸 정도로 말하는 것조차 저렴하다. 본성이 착하고 순수하다지만 특별한 장점이 없는, 한마디로 볼품없는 남자인 셈이다.

 

안 어울리는 극과 극의 남녀 홍경두와 정이현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왜, 무엇 때문에 정이현이 홍경두라는 남자를 선택하고 그와 함께 살게 되었는가. 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사랑을 느끼며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해져야 하는가. 이 과정들을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것이 드라마 ‘출생의비밀’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시청자가 호기심을 느끼며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드는 설정이 매력적이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출생의비밀’은 해리성 기억장애로 지난 10년의 기억을 잃어버린 정이현이란 여주인공의 설정으로 시청자에게 어필중이다. 일단 정이현이 기억을 찾아야 하는 이유들은 매력적이다. 정이현과 예가그룹을 둘러싼 음모와 비리가 있고, 정이현이 기억못하는 남편 홍경두와 딸 홍해듬(갈소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남자주인공 홍경두에게 넘어간다. 홍경두는 정이현만큼 매력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는가. 자신과 딸을 기억못하는 아내를 되찾고자 하는, 남자의 눈물겨운 몸부림의 시작은 분명 매력적이다. 또한 홍경두의 극복대상은 단순히 정이현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는 것외에, 예가그룹 그리고 예가그룹의 사람들이란 사실에서 상당한 악전고투를 예고한다.

 

 

 

 

홍경두는 부자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무식한 이 남자가 똑똑하고 야비한 예가그룹 사람들을 상대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홍경두의 무식함이 오히려 그의 캐릭터를 빛나게 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주인공이 맞서고 무너뜨려야 할 상대가 강할수록, 드라마는 흥미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리고 약점이 많은 그를 도와줄 조력자가 분명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최국교수와 같은 사람.

 

단지 드라마 출생의비밀이 이제 3회를 마친 시점에서, 홍경두의 캐릭터는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바보스럽다고 느낄 만큼 경박함과 무식함을 어필했기에, 남자주인공으로선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여주인공 정이현이 젊은 미모의 엘리트, 천재, 재벌 2세라는 캐릭터에 좋은 건 다 품고 있는 이상, 상대적으로 남자주인공 홍경두가 짐스러워 보일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홍경두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착한 본성과 ‘부성애’다. 다행히 출비 3회부터 딸 홍해듬(갈소원)이 등장하면서, 홍경두의 캐릭터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PC방을 이용해 동영상을 찾아 아내 정이현을 발견하고, 스마트폰까지 사용하는 걸 보면, 홍경두는 완전 무식하다는 인상에서도 한발 비켜간다.

 

다만 홍경두가 남자주인공인 이상, 좀 더 성숙하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무식한 건 어쩔 수 없다해도, 아내를 잃은 7년 전과 아내를 발견한 지금의 모습이나 태도가 같음을 유지하기 보단, 가벼움은 떨치고 조금은 더 진중해진 남자 홍경두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촐싹대며 가벼웠던 남자가 갑자기 진중한 훈남이 될 순 없겠지만, 아내를 잃고 죽고 싶을 만큼의 상처를 입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캐릭터가 변해야 맞지 않았을까.

 

 

 

 

‘출생의비밀’ 4회 예고에서, 홍경두와 정이현은 재회한다. 그리고 아내 정이현에게 분노하는 거친 남자 홍경두가 보였다. 정이현과의 재회가 홍경두의 캐릭터가 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홍경두가 바보스러울 정도의 순박함과 경박함을 조금이라도 벗겨낼 수 있다면, 그가 보여줄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딸 해듬이에 대한 부성애도 더욱 빛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