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랑할 때 오영실, 아나운서출신 신스틸러
드라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모든 사건의 위기와 갈등, 그리고 반전은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주인공의 인생과 가치관을 쫓고, 수시로 변주를 시도한다. 때문에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결과물은 비단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에게 파급, 확장되고 드라마는 요동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시청자가 몰입하고 공감을 느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심하게 다뤄야 하고 극에서의 비중은 높아진다. 철저히 주인공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구조는, 주변 인물들마저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게끔 그려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범위내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내며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주변인의 숙명.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들이 다수를 형성하는 주변 인물들의 대사는, “너 그거 봤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식으로, 주인공이 알지 못했던 정보를 알려주거나, 주로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인공의 생각과 리액션을 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드라마에 주변인물로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은 우스개소리로, 극중엔 내인생이 없다면서 종종 불만(?)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래서 배우들은 드라마속 주변인물이라도 독특한 캐릭터, 개성 강한 캐릭터를 원한다. 그래야 짧은 분량에도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하는 입장에선 다르다. 개성 강한 주변 인물들이 많아질수록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주인공은 개성이 강한 판타지스런 인물인데, 주변인물들마저 과장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튀는 인상을 주게 되면, 극 전체가 붕뜨기 쉽고 공감을 낳긴 그만큼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지극히 평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짧은 분량속에서도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 주변인물엔 대표적으로 누가 있을까. 아주 좋은 예가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서미도(신세경)의 엄마 최숙자 역할을 맡은 오영실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극중 최숙자는 헌책방을 운영중인 남편으로 인해 가난을 벗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젠 가난이 지겹고 힘들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딸 미도가 성공한 사업가 한태상(송승헌)과 결혼해 집안 모두가 편해질 수 있길 바란다. 한태상을 사위삼기 껄끄러워 하는 남편과 달리, 그에게 호감을 느끼며 딸과의 결혼을 적극 지지한다.
최숙자는 딸을 둔 엄마로서 크게 특별하지 않다. 캐릭터가 상당부분 보편성을 띄고 있다. 그렇다고 최숙자가 계모인가. 딸 미도와 관련한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즉 드라마에 이렇다 할 반전의 키도 쥐고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주변인물에 충실한, 현실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배우 오영실이 미도엄마 최숙자를 특별하게 만든다. 오영실의 맛깔스런 연기가 최숙자에게 없는 개성을 불어넣는다. 오영실은 캐릭터가 지닌 현실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구질구질하지 않고 코믹하게 때론 능글맞게 표현함으로써, 시청자에게 호감을 끌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최숙자가 오영실을 만나 개성있는 캐릭터로 거듭난다.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활력소가 된다. 24일 방송된 ‘남자가 사랑할 때’ 7회에서도 최숙자 오영실의 매력과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영실은 아나운서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베테랑배우 뺨치는 능숙한 연기력을 구사한다. 첫작품인 ‘아내의유혹’에서조차 미친존재감을 보였을 만큼, 타고난 연기자로 비춰지는 게 오영실이다. 그녀의 재능이 ‘남자가 사랑할때’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나오는 장면마다 인상적인 재미를 낳는다. 신스틸러가 따로 없다. 배역의 크기에 관계없이, 캐릭터가 입체적이든 평면적이든,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제몫이상을 해내는 배우 오영실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왜 시청자는 배우의 연기력에 주목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연기력논란을 빚는 배우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에 그치지 않는다. 유사한 캐릭터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드라마 환경에서,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이 더해진다. 하지만 식상한 캐릭터라도 배우의 표현력,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신선한 캐릭터로,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식될 수 있다. 때문에 배우의 표현력, 연기력은 스토리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캐스팅은 스타성에 좌우되지만, 캐릭터는 연기력에 좌우된다. 그리고 배우라면 당연히 후자가 기본이 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케이스도 적잖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이돌가수 출신이다, 어디 출신이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대중을 만족시킬 준비가 되었는가. 맡은 배역을 매력적으로 구현할 능력이 있는가. 아나운서출신 배우 오영실을 보며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