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홍수현, 엔딩마저 도둑맞은 인현왕후?
숙종 이순(유아인)이 세자빈으로 인현(홍수현)이 아닌 인경(김하은)을 택했다. 16일 방송된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4회에서, 이순은 어머니인 명성왕후 대비 김씨(김선경)에게 분노했다. 대비 김씨가 인현의 부 민유중(이효정)으로부터 꾸준히 금품을 받아 유착관계에 빠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민유중이 누구인가. 왕 현종을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킨 서인세력의 주축인물이다.
즉 왕권강화를 통해 국력을 키우려는 숙종 이순에게 민유중은 숙청대상이다. 하지만 어머니 대비 김씨가 민유중과 더러운 유착관계에 놓였으니, 이순으로선 통탄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대비 김씨는 민유중의 여식 인현을 세자빈으로 들이길 원했다. 안 그래도 호랑이인 민유중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는 격이다. 하지만 젊은 패기의 세자 이순도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이를 원하지 않은 건 이순뿐이 아니었다. 민유중에 의해 자신의 딸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가는 장옥정(김태희)의 당숙 장현(성동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장현은 수하를 시켜, 인현의 모가 마실 탕약에 독을 타도록 은밀하게 지시했고 살해했다. 때문에 인현은 세자빈 간택에서 빠졌어야함에도, 권력을 향한 민유중의 욕심은 아내의 죽음마저 은폐하고, 이에 경악하며 눈물 흘린 인현에게 세자빈의 자리를 강요했다. 아버지 권력욕의 희생양이 된 인현은, 어쩔 수 없이 세자빈 간택자리에 선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순이 김만기를 찾아갔다. 김만기의 여식 인경을 세자빈으로 맞겠다는 제안이었다. 김만기는 이순이 자신과 민유중을 이간질하려 든다는 걸 알았지만, 이순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철부지 딸 인경이 이순을 연모하고 있다면서, 아버지에게 세자빈이 되도록 허락해달라며 간청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세대의 권력다툼따윈 인경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이순에 대한 짝사랑밖에는.
숙종 이순의 사랑이 아닌 철저한 정치적 선택으로 세자빈이 된 인경(훗날 인경왕후). 이순을 사랑한 것도 아니고 세자빈의 자리를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당연히 세자빈으로 간택될 거라 생각했던 인현(훗날 인현왕후). 이순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도 모른 체 아파하며, 세자빈의 자격조차 안 되는 천한 신분임에도 장현의 정치적 야심에 노리개가 될 장옥정(훗날 장희빈). 그렇다면 장옥정 4회에서 숙종 이순의 여자 인경-인현-장옥정 중에, 누가 가장 불쌍한 여인이었을까.
드라마의 제목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옥정(김태희)이 불쌍하게 느껴져야 한다. 때문에 4회에서도 숙종 이순이 세자빈 간택에 앞서, 남장을 하고 나타난 장옥정과 우연한 만남을 재차 가졌고, 두 사람간에 핑크빛 무드가 여러차례 잡히기도 했다. 심지어 산적들에게 잡힌 장옥정의 목숨을 이순이 구해주는 극적인 상황도 연출됐다.
그럼에도 숙종이 인경을 빈으로 간택할 때, 장옥정에 대한 연민이나 애틋함따윈 없었다. 장옥정에 대한 생각조차 나질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 엔딩에서 장옥정이 뜬금없이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과연 필요했는지 갸웃하게 만든다. 마지막은 눈물을 흘리는 장옥정이 아닌, 인경을 택하며 민유중을 엿먹이던, 이순의 정치적 야심이 가득한 눈빛과 아버지의 욕심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인현의 눈물 교차가 오히려 임팩트가 있을 법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권력다툼에 희생양으로 버려진 인현. 비련의 여인으로, 곡절 많은 인생사를 살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인현왕후에게 4회 엔딩의 포커스를 맞추는 게 적절했다. 그것이 훗날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팽팽한 대립을 위해서도, 극초반 인물간의 적당한 균형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용이하다. 하지만 제작진은 불쌍했던 인현이 아닌, 세자빈 간택과는 무관한 장옥정의 눈물을 강조함으로써, 극전개의 흐름을, 감정선을 뚝 끊어 놓고 극적 효과는 반감시키고 만다.
물론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타이틀 롤인 주인공 장옥정 김태희는 중요하다. 하지만 4회 엔딩에서 장옥정이 중요하진 않았다. 4회엔딩 이전에 장옥정과 이순의 사랑이 애절하게 그려졌다면 모를까. 장옥정과 이순은 여전히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연한 만남 몇차례로, 서로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을 뿐, 죽고 못살 만큼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관계가 아니란 얘기. 두 사람의 엇갈릴 수밖에 없는 사랑이 시청자를 안타깝도록 만들 만한 임팩트 강한 과정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4회엔딩에서 장옥정의 눈물을 끼워 팔 이유가 없다. 때문에 인현왕후가 엔딩신을 도둑맞은 모양새다. 오히려 입체화된 캐릭터 인현왕후 홍수현을 앞세워, 드라마의 갈등구도를 본격적으로 장옥정-숙종-인현왕후로 짜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분량이 미비했던 인현왕후의 존재감을 높이면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여인들의 삶을, 절대군주를 향한 숙종의 정치노리개로 전락하게 될 강렬한 시작을 예고하는.
그동안 장희빈을 다룬 드라마에서, 인현왕후의 존재감은 숙종이상이었다. 실질적으로 장희빈과 인현왕후 투톱체제로, 두 여인의 경쟁이 극을 이끌었다. 하지만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현재까지 장희빈과 숙종이 투톱구도를 형성중이다. 정치이상으로 사랑을 중심에 놓은 멜로드라마를 지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현왕후의 캐릭터를 살려야 한다. 멜로드라마에서 삼각관계만큼 타율 높은 관계가 또 있던가.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인현왕후의 존재감은 지금보다 더 부각돼야 한다. 지금껏 분량도 적었는데 엔딩장면조차 매번 장옥정에게 양보해서는 향후 극적 긴장감, 캐릭터간에 긴장감을 예고할 수 없다. 장희빈-숙종, 숙종-인현왕후, 인현왕후-장희빈의 구도가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오가며 극적 재미와 갈등,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을 때, 시청자의 기대감도 시청률의 반등도 가능할 전망이다. 즉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반전의 키가 될 수 있는 인현왕후를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