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뽀뽀보다 인상적인 시구절

바람을가르다 2013. 4. 12. 10:35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

-안도현 ‘나에게 보내는 노래’ 中에서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4회는 서미도(신세경)네 헌책방앞에서, 이재희(연우진)가 서미도의 볼에 기습적인 뽀뽀를 감행했고 미도가 놀라며 끝이 났다. 그리고 헌책방안에서 서미도를 기다리던 한태상(송승헌)이 밖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독서삼매경에 빠진 장면까지 더해져서. ‘남자가 사랑할 때’ 4회에서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날 것인가.

 

 

 

 

서미도는 괌여행에서 이재희와 운명적으로 재회했다. 이재희란 남자를 만난 3일이 그녀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느낄 만큼 설레고 좋았다. 그 감정이 사랑이라 말해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이재희 또한 서미도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서미도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하려 했다. 그런데 서미도가 떠나버렸다. 3일간 설레임은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는 말과 함께.

 

서미도에겐 돌아가야 할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다. 한태상이다. 그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 그녀와 그녀 가족이 도움을 받았고, 아무리 선의의 도움이라도 반드시 갚아야 할 빚처럼 마음 한 구석엔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태상이란 남자를 알면 알수록 고마움이상의 끌리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가족앞에서 한태상과 정식으로 교제하겠다는 선언까지 한 것이다.

 

 

 

 

막상 데이트를 해보니 한태상이란 남자가 꽤 귀엽다. 띠동갑인데 가지고 놀기(?) 안성맞춤이다. 그만큼 그는 나이답지 않게 순진하고 순수한 면이 많다. 그래,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 나만 바라봐 줄 수 있는 남자. 나를 위해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남자. 한태상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서미도.

 

하지만 혈기왕성한 이재희는 서미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서미도가 사는 곳을 안다. 서미도가 기회를 준다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다. 서미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미도네 헌책방앞 보드판에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란 문구를 적어 놓는다면, 내 마음을 받아주는 걸로 알겠다고. 마치 출소를 앞둔 남편이 아내에게 ‘노란손수건’를 걸어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쌍팔년도 향기가 물씬 나는 고백.

 

 

 

 

근데 이재희의 고전틱한 방법이 서미도를 흔든다. 안도현의 시집 속 ‘나에게 보내는 노래’가 실린 페이지를 살포시 접어놓는 서미도. 하지만 보드판에 적힌 문구는 지우개로 지워버린다. 그랬다. 서미도는 이재희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그와 연인으로 발전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한태상이 걸렸던 것. 사랑보단 의리를 택한 서미도.

 

그런데 이를 모르는 한태상이 두사람을 이어주는 큐피트가 돼버렸다. 한태상은 서미도가 이재희를 생각하며 접어놓은 페이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억지스레 닫아버렸던 이재희에 대한 서미도의 마음을 판도라의 상자 열듯이 열고 만다. 한태상은 헌책방앞 보드판에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란 문구를 적어 놓는다. 한태상은 서미도와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띠동갑이라 그런 게 더 필요한. 네가 좋아하는 시, 나도 좋아한다는.

 

 

 

 

한태상이 보드판에 적은 글귀를 보고, 이재희는 서미도가 적었다고 판단해 기뻐한다. 서미도는 자신이 쓴 게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이재희는 믿지 않는다. 사실 누가 썼든 이재희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재희 본인이 쓴 게 아니고, 설사 서미도가 쓰지 않았다해도. 그 글귀가 적힌 이상,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끝이니까. 그래서 이재희가 서미도에게 과감하게 기습뽀뽀를 시도할 수 있었다.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4회 엔딩이 인상적인 건, 이재희가 서미도에게 한 기습뽀뽀가 아니었다. 한태상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서미도네 헌책방이란 공간과 안도현의 시 <나에게 보내는 노래> 中에서 인용된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란 구절의 매치였다.

 

 

 

 

서미도네 헌책방은 서미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한태상이 처음 찾았던 서미도네 헌책방은, 한태상이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간 공간이었다. 돈으로, 힘으로 제압한 공간. 자신의 손에 피를 흘려가며. 미도아버지(강신일)가 사채빚을 갚지 않는다면, 한태상을 그곳을 파괴하려 했다. 근데 그곳에서 한태상은 자신과 닮은 서미도를 만났다. 자신과 닮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서미도에게 있었고, 내가 돌아갈 수 없다면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한태상은 서미도에게 같이 살자고 청혼했다. 그는 그녀가 편하게 살길 원했다. 마치 자신이 편하게 살고 싶은 것처럼. 돌아갈 곳이 없는 한태상에게 서미도는 또 다른 나였고, 집이었다. 그래서 피를 흘려가며 서미도네 헌책방을, 가족을, 서미도를 지켜냈다. 한태상은 서미도를 통해 자신의 집과 가족을 잃어버리기 전,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태상은 서미도에게 불러줄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었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라고 판단했기에 프로포즈했다.

 

 

 

 

그런데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란 구절에서, 한태상이 서미도네 헌책방앞 보드판에 적어놓은 ‘너를 위해’ 부분을 이재희가 지워내고 자신이 적어 넣는다. 이재희가 서미도를 위해 해줄 노래가 시작됨을 암시한다. 한태상이 잊혀질 수 있을 만큼 서미도에겐 치명적이거나 달콤한 유혹이 될 것임을. 그래서 그 장면은 이재희가 서미도에게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서미도네 헌책방은 상처가 많다. 그래서 한태상이 부수고 다시 복구한 공간이다. 때문에 지금의 헌책방은 서미도뿐 아니라 한태상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으로 이재희가 들어왔다. 이재희가 서미도의 곁에 남기 위해선 한태상을 밀어내야 한다. 결국 서미도에게 점점 단단해져 가는 한태상이란 유리를 부수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여기엔 5회에 출소를 예고한 재희형 이창희(김성오)가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