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의 모든 것 신하균-이민정, 정치보다 절실한 로맨스
이민정이 신하균의 가슴에 키스를 했다?
종영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후속작, SBS새수목드라마 로맨틱코미디 ‘내 연애의 모든 것’의 1회 마지막 장면에서, 진보당 대표 노민영(이민정)과 거대보수당 초선의원 김수영(신하균)이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이다가, 노민영이 계단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 했고 그녀를 붙잡은 김수영에게 안기다가, 그만 노민영이 김수영의 가슴에 키스를 해버렸다. 일명 가슴키스.
가슴키스가 수목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첫방송에서 가장 재밌었던 장면이다. 인상적이다. 엔딩장면으로 적절했다. 하지만 가슴키스를 위해 달려온 과정에 중간중간 웃음도 있었지만 꽤나 무료했다.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로맨틱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첫방송에선 재미나 기대감을 주는 데엔 2%이상 부족했다. 아쉬웠다. 왜 일까.
일단 남자주인공 신하균은 짐캐리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배우 신하균은 확실히 시청자를 끄는 힘이 있다. 코믹연기도 흠잡을 데가 없다. ‘인간’ 김수영란 캐릭터도 좋다. 다만 보수도 아닌, 진보도 아닌 무채색 ‘국회의원’ 김수영은 별로였다. 특히 오프닝부터 TV토론을 통해 여야를 비판하고 국민을 비판하는 드라마가, 주인공이 시청자를 가르치려는 모습은 비호감에 가깝다.
김수영이 주인공이라면, 차라리 국회에선 거수기에 가까운 보수당 초선의원으로 충실하고, 국회밖에선 은근슬쩍(?) 뇌물도 받을 줄 아는, 드라마 ‘돈의화신’ 슈킨검사 이차돈(강지환)처럼 문제가 많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국회의원. 그 이면엔 인간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설정 등이 채워졌다면, 극전개와 더불어 캐릭터가 발전, 변화할 여지를 확장시키는데, 시작부터 대놓고 정치혐오를 까발린 정의로운 보수당의원 캐릭터라? 작정하고 까발린 ‘정치혐오’는, 주연 신하균이 아닌 같은 여당 소속 조연 공형진의 캐릭터에 심는 게 나았을지도.
이민정이 맡은 진보당 대표 ‘국회의원’ 노민영이란 캐릭터는 어떤가. 김수영보다 더 매력이 없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국회의원 틀안에 가두려 한다. 진보당의원은 이렇다는 식의 강박관념으로 만들어진 듯한. 그러다보니 노민영에겐 인위적인 건조함이 풍긴다. 게다가 라디오 등을 통해 시청자를 가르치려는 모습은 김수영 못지않다. 그렇다고 ‘인간’ 노민영은 매력적인가. 첫방에선 밍숭맹숭 심심하게 그려진 측면이 강하다.
‘내연모’의 여주인공 노민영보다는 오히려 서브인 정치부기자 안희선(한채아)이 매력적으로 비칠 정도다. 안희선은 로맨틱코미디 여주인공에 어울릴 만큼 능청맞았다. 밝고 유쾌하고 귀엽다. 덕분에 까칠한 김수영과도 유쾌함의 시너지를 낳는다. 반면 노민영은 강하고 긍정적이면서도 왠지 모를 그늘이 짙다. 여기에 그녀를 짝사랑중인 민변출신 보좌관 송준하(박희순)마저 무겁고 어둡다. 그래서 노민영-송준하 커플의 장면이 길어지면 분위기가 다운된다.
로맨틱코미디에서 주인공은 물렁물렁한 맛이 있어야, 상대방이 치고 들어갈 공간이 쉽게 열리고 캐릭터도 탄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차승원-공효진’ 주연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한류스타 차승원과 삼류연예인 공효진. 극중에서 상극인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기존에 시청자가 떠올리는 한류스타 이미지가 차승원 캐릭터엔 없고, 비호감 3류 연예인의 모습도 공효진 캐릭터에선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스토리에 궁금증과 기대감을 낳는 것이다.
그렇다. ‘내 연애의 모든 것’ 1회가 실망스러운 건, 주인공 국회의원 김수영(신하균)-노민영(이민정)커플의 캐릭터가, 시청자가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머물 정도로 평면적인 인상을 남긴데 있다. 여기에 첫방송부터 지나치게 여의도 정치에피소드를 부각하고 묘사해 지루함을 가중시킨 것. 덕분에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어설픈 정치드라마에 코미디 약간으로 비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커플이 초반부터 ‘말’로 정치를 설명하고 시청자를 가르치려한 점도 악수다. 정치는 이래야 하고, 국회의원 저래야 한다. 주인공들이 어떤 사건에 개입되고 ‘행동’을 함으로써, 시청자가 느끼기에 정치가 이러면 안 되지, 국회의원이 저러면 안 되지란 공감과 흥미를 부르지 못했다.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현실정치’안에 깊숙이 박아놓고 단조롭게 구현해, 딱딱한 선생질에 주력한 건 아쉽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여의도정치를 배경으로 삼는다. 하지만 남녀의 연애과정을 다룬 로맨틱코미디가 먼저다. 그렇다면 현실정치를 바탕으로 하되, 캐릭터는 현실정치에 가려진 이면을, 역동성을 부여해야 하고, 사건은 러브스토리가 살 수 있는 상상력이 강조돼야 하는데, ‘내 연애의 모든 것’ 1회는 배경인 여의도정치판에 캐릭터도 사건도 잡아먹힌 인상을 준다. 시청자가 주인공캐릭터를 이해하고 매력을 느껴야 할 1회에, 여야의 정신사나운 힘겨루기 에피소드로 시선은 분산된다.
뉴스나 신문, 인터넷만 봐도 알 수 있는 정치관련 에피소드를 차용해 공감을 얻을 순 있겠지만, 드라마는 쉽게 지루해질 수 있다. 시청자도 다 아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자세하게 꼬집고 다루지 않아도 아는 얘기. 오히려 제작진만큼 시청자가 잘 아는 얘기를 첫방송부터 불필요하게 나열하면, 흥미를 끌기보단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쉽다. 그래서 가급적 여의도정치판 묘사는 짧게, 주인공 김수영-노민영의 캐릭터와 물렁한 에피소드는 길게 다뤄야 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정치적 신념이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정당에 소속돼 있는 남녀 국회의원들의 비밀연애를 그린 로맨틱코미디다. 그래서 배경인 여의도정치를 빼놓고는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단지 극을 이끌어가는 남녀주인공이 ‘현실정치’에 지나치게 끌려 다니기보단 ‘비밀연애’가 중심이 될 사건에 드라마의 상상력을, 초점을 맞추는 게 로맨틱코미디에선 효과적이다. 연예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최고의사랑’이 연예계 얘기에 쉽게 매몰되지 않은 것처럼.
수목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첫방송 시청률은 한자리수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회로 반격할 기회마저 다음 주로 미뤄져 아쉬운 상황이다. 하지만 기회는 충분히 있다.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국회의원의 정의, 이상따윈 잠시 접어두고, 로맨틱코미디란 장르의 장점을, 캐릭터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역동성있게 구현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연모가 승부를 봐야 할 대목은, 김수영(신하균)과 노민영(이민정)이 어떤 정치인이 돼야 하는가가 아니다. 김수영은 노민영이란 여자를, 노민영은 김수영이란 남자를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