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돈의화신 오윤아-김수미, ‘웃프다’의 매력이란?

바람을가르다 2013. 3. 31. 10:19

 

 

 

‘각본없는 드라마’ 2013 프로야구가 30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페넌트레이스에 돌입했다. 올해는 신생팀 NC다이노스의 합류로, 9개 구단이 팀당 128경기를 소화할 예정이다. 128경기란 대장정. 정규시즌은 어느 팀이, 한국시리즈는 어느 팀이 우승할까.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긴 레이스에선 운보다는 조직력이, 실력이 강한 팀이 우승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실력이 강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데이터로만 설명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덕아웃 분위기가 그렇다. 덕아웃 분위기는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좋은 팀이, 그날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긴장감이, 밸런스가 유지될 때,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고 승부처에서 힘을 발휘한다. 오늘 경기를 반드시 이겨한다는 집착, 부담은 때로는 독이 되고, 감독도 선수도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총 128경기다. 팀을 위해, 팬들을 위해, 매경기, 매순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한 경기의 승패를 놓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일 승패를 놓고, 덕아웃 분위기가 지나치게 들뜨거나 또는 가라앉으면 곤란하다. 다음 경기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6부작부터 50부작 등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복수’를 다루는 드라마가 있다. 그런데 극중 인물들이 매회, 매순간 복수와 방어에 집중하고, 그 안에 매몰될 때, 드라마는 오히려 경직되고 생기를 잃을 수가 있다. 크고 작은 긴장과 갈등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극이 탄력성을 가질 때, 복수라는 것도 회를 거듭할수록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대표적으로 주말드라마 ‘돈의화신’이 이에 부합한다.

 

 

 

 

30일 방송된 ‘돈의 화신’ 17회를 보자. 드라마 돈의화신 총 24부작이다. 아직은 주인공 이차돈(강지환)의 복수가 완성될 수 없다. 때문에 법정에서 이차돈이 기대했지만, 지세광(박상민)의 악행에 관한 안젤리나 은비령(오윤아)의 폭로는 불발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여기엔 은비령의 숨겨진 아이를 두고, 지세광이 그녀를 협박해 선수를 쳤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차돈의 복수가 제자리걸음인가. 아니다. 자신의 어머니 박기순(박순천)이 지세광에게 속아 누명을 쓰고 정신병동에 갇혀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이차돈은 은비령에게 가석방을 조건으로 정신병동 치료감호소를 택하도록 유도했다. 이차돈은 지세광과 마찬가지로, 은비령에게 어머니가 당했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만들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차돈은 은비령의 분식회계 자료를 입수해 복재인(황정음)에게 넘겼고, 은비령의 재산 몰수는 물론, 황해신용금고 대표로 복재인이 선임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복화술(김수미)의 도움을 받아, 지세광-권재규(이기영)를 엮어 복수하는 준비도 착실하게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정해룡(김학철), 복재인 아버지(송경철) 등 외부인물이 자연스럽게 개입한다.

 

그만큼 드라마 돈의화신 17회는, 적당한 긴장감과 재미를 바탕으로 총 24회중 ‘한 회’의 분량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하지만 17회가 더욱 인상적인 건, 드라마 ‘복수’를 다룬다고 해서, 등장인물들을 복수안에만 매몰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일 17회임에도 불구하고 복수에 힘이 너무 들어가다 보면, 인물들이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무거워지고, 캐릭터는 기존의 개성이 뭉개지고 역동성을 잃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7회에서 은비령은 ‘웃프다’의 매력을 보여줬다. 웃긴데 슬프다. 불쌍하다. 은비령은 나쁜 여자다. 악녀다. 하지만 사랑했던 지세광에게 배신을 당하고, 협박을 받아, 법정에서 사실을 밝힐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거짓말을 할 때엔, 오윤아의 연기가 좋아서 그런지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유일하게 믿고 있는 이차돈마저, 그녀에게 복수중이란 사실을 나중에라도 알게 된다면 미치지는 않을까.

 

여기서 은비령이 만약 법정에서 눈물만 쏟고 지세광에 대한 분노만 표출했다면, 그녀의 매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하지만 감방에서 다른 여자 죄수들에게, 너희같은 잡범이랑 다르다며 은비령 특유의 캐릭터를 재현한다. 덕분에 은비령은 여자 죄수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 머리는 산발, 눈은 멍들고, 입술은 터진 채, 눈물을 흘리며 밤새도록 짱언니의 팔을 주무르고 지세광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은비령을 보면 웃프다. 웃긴데 왠지 짠하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복화술은 어떤가. 길을 잃고 어린애가 돼버린 복화술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는 낯선 젊은 여자들에게 막말을 하며 쫓아낸다. 다행히 복화술을 발견한 이차돈. 복화술은 이차돈을 알아보지 못하고 집에 데려달라며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이차돈은 복화술을 안아주며 안정을 시켰다. 덕분에 치매로 잠시 기억을 잃었던 복화술이 정신을 차렸다. 차돈을 알아보고는 또 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 장면이 더욱 슬펐던 건, 이차돈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오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화술이 그동안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듯, 눈가에 젖은 뜨거운 눈물로 족했다. 자신에겐 어머니와 같은 복화술이 치매라는 사실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그녀를 위해서도 내가 먼저 약해지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마저 느껴져 좋았다. 어떻게든 복화술의 치매가 호전되게끔, 잘 모시겠다는 진짜 아들의 모습이 이차돈의 눈가에 담겨 있었다.

 

 

 

 

은비령이 감방에서 집단구타를 당해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고, 짱언니의 안마사로 전락한 건, 그녀가 저지른 죄의 대가로는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장면이 좋은 건, 기존에 보여왔던 은비령의 캐릭터가 숨쉬기 때문이다. 지세광에게 배신당했다고 해서, 급격하게 다크해진 은비령의 모습만 그려졌다면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즉 복수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캐릭터를 훼손하지 않는 분위기, 일관성이 돋보인다.

 

복화술이 치매에 걸린 것과 이차돈이 그녀를 걱정하는 건, 이차돈이 지세광일당에게 복수하는 목적과 무관한 것이다. 물론 그녀의 치매로 이차돈의 복수과정에 문제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복화술의 치매를 이차돈이 알게 되는 과정과 상황은, 그 자체로 드라마가 추구하는 복수와 무관하게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다.

 

 

 

 

그래서 드라마 돈의화신이 강한 것이다. 24부를 끌고 갈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복수드라마라고 복수에 집착해, 상황이나 캐릭터를 모두 복수안에 매몰시키지 않는다. 복수로 가는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근거해 부차적인 재미와 갈등을 유발한다. 주인공이자 드라마를 지배하는 슈달검사 이차돈(강지환)이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고 해서, 늘 눈빛이 이글거리는 심각함에 노출됐다면 드라마는 무거워져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차돈은 슈달검사시절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이차돈에게선 사람냄새가 나는 것이다. 은비령도 그렇고, 복화술도 그렇다. ‘돈의화신’ 모든 캐릭터들이 24부작이란 긴 레이스에서 급변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매력을 잃지 않고 매장면 극의 집중력,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