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화신 오윤아, 독특한 동공연기
슈달검사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한 이차돈(강지환)의 스타트가 상쾌하다. 24일 방송된 주말드라마 ‘돈의 화신’ 16회에서, 황장식(정은표)을 죽인 살인범 은비령(오윤아)를 이용해, 지세광(박상민)일당을 교란시키며 내부 분열을 도모한 이차돈의 작전은 효과적이고 치밀했다.
황장식을 살해한 단서로 권재규(이기영)차량에 블랙박스 영상을 전지후(최여진)검사와 ‘지세광-권재규’가 함께 보도록 만든 타이밍이 적절했다. 때문에 은비령의 모든 비리사실을 알고 있는 지세광이, 연인 은비령의 죄를 묻는 검사가 되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지세광이 은비령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다른 검사가 은비령을 조사할 경우, 자칫 지세광 본인의 비리도 함께 드러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문제는 은비령이 지세광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은비령이 황장식을 죽였던 건, 이강석(이차돈)이 살아있다는 사실로 그가 요구한 거액의 돈문제도 있었지만, 황장식이 이강석을 미끼로 언제든 지세광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은비령은 사랑하는 연인 지세광을 위해 황장식을 살해했던 셈이다. 그런데 은비령은 황장식을 죽인 사실과 이유를 자신의 변호인 이차돈에게만 밝혔다.
지세광은 은비령에게 여러차례 황장식을 왜 죽였냐고 물었지만, 은비령은 그를 죽였다는 사실도, 죽인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지세광이란 남자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은비령은 구속영장을 들고 찾아온 지세광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에 대한 은비령의 배신감과 분노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 보다 무서운 건, 지세광검사가 이강석(이차돈)의 아버지 이중만(주현)을 죽이고 일가족을 파탄으로 내몰 당시, 정의(?)의 이름으로 뭉쳤던 동료들에게 조차 신뢰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박기순(박순천)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고문했던 원장같은 외부인이 지세광을 신뢰하는가. 지세광은 이차돈의 사진을 보여주며 원장에게 본 적이 있냐고 묻지만, 이차돈이 미리 손을 쓰자, 중립에 서야 할 원장조차도 지세광을 불신한다.
즉 ‘이차돈=이강석’이라고 확신할 만큼 촉이 남다르고 똑똑한 지세광조차, 본인의 능력만으로는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이중만이 죽을 당시 살해당한 증거를 가지고도, 부패한 권력앞에 아무 힘을 쓸 수 없었던 어린 이강석(박지빈)의 모습을 지세광은 닮아가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세광은 사건을 조작하고 살인 등의 ‘위법’행위로 정의를 갈구하던 이강석의 숨통을 조였다면, 이차돈은 지세광일당이 행한 ‘사실’에 근거해 정의를 구현하는 동시에 그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뛰는 지세광 위에 나는 이차돈이 있었다. 유능한 검사 지세광이 사람을 매수하고 조작을 감행하다면, 이차돈도 같은 방법으로 방어한다. 덕분에 지세광은 마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차돈은 지세광처럼 ‘진실’을 조작하거나 은폐하진 않는다. 진실은 조작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이차돈은 불법행위로 가라 앉아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할 뿐이다. 신의 힘을, ‘진실’의 힘을 빌려서.
이처럼 지세광일당을 향한, 이차돈의 완벽에 가까운 치밀한 복수가 이어지는 ‘돈의화신’은 명품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극의 짜임새에 빈틈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돈의화신’이 이차돈(강지환)의 원맨쇼로만 이어졌다면 아마도 매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돈의화신이 명품드라마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유를 동반한, 제 역할에 충실한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모두 저마다 재미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차돈을 사랑하는 복재인(황정음)은 그에게 아픔과 배신감을 느낀 동시에 각성하기 시작했다. 은비령의 황해신용금고 비리를 밝혀내고 건강한 기업으로 회생시킬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황정음 먹방은 거들 뿐. 단지 이차돈에 대한 복재인의 오해와 사랑이 내면의 갈등을 부추기고, 그것이 언제고 두사람의 위기를 예고한다.
이차돈의 든든한 조력자인 복화술(김수미)은 어떤가. 치매증상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드라마가 풍전등화에 놓인다. 덕분에 삼촌(윤용현)의 캐릭터, 행보에도 관심이 배가된다. 양구식(양형욱)계장과 홍자몽(이지현)주임은 말로만 이차돈을 돕는 것이 아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혼자 움직이면 좁아질 수밖에 없는 행동반경을 최대한 넓혀주는 도우미로 부족함이 없다. 지세광-은비령-권재규-고호의 악역라인 무게감도 극적 재미와 긴장감에 부족함없는 밸런스를 유지시킨다.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칭찬이 아깝지 않다. 소위 말하는 발연기자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본인의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구현하는 연기자들로 최적의 캐스팅으로 손색없다. 특히 주인공 이차돈 강지환은 슈달검사의 가볍고 코믹한 연기에서, 슬픈 운명을 짊어진 뜨거움, 복수와 정의를 구현할 차갑고 냉철한 연기까지, 자유자재로 뚜렷하고 넓게 연기의 스펙트럼을 가져갈 줄 안다.
가벼움과 무거움, 차가움과 뜨거움은 악역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지세광 박상민도 그렇지만, 특히 ‘돈의 화신’ 15회와 16회에서 보여준 은비령 오윤아의 연기는 탁월했다. 그동안 극중에서 오윤아는 얼굴에서 눈밖에 안 보일 정도로,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보여준 큰 눈이 항상 드라마에 시원함과 유쾌함을 선사했다. 동그랗게 뜬 오윤아의 눈을 보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해 광대에서 받아줘야 할 것은. 적도의남자 엄태웅과는 사뭇 다른, 돈의화신 오윤아표 독특한 ‘동공연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오윤아가 ‘코믹한’ 은비령에서, 황장식을 죽이고 느낀 두려움, 사랑했던 남자 지세광에게 느낀 분노와 배신감을 표현할 때엔, 연기내공이 상당한 배우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힌다. 오윤아의 눈에서 볼 수 있는 우울함. 믿었던 지세광의 배신으로 바닥까지 추락한 제2의 박기순(박순천)을 예고하는 은비령의 우울한 눈빛. 배우 오윤아는 ‘돈의화신’을 통한 또 한명의 재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