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조인성-송혜교 강제키스, 착한남자와 팜므파탈의 상관관계
조인성의 수난시대였다. 21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13회에서, 오수(조인성) 전애인 진소라(서효림)의 무개념 폭로에 이은, 오수와 왕비서(배종옥)의 돌직구 난타전을 지켜 본 오영(송혜교)은 슬퍼했고 절망했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만큼 좋아했던 오수가, 친오빠가 아닌 78억원이 필요해 자신에게 접근한 사기꾼이란 사실에 오영의 슬픔과 절망은 고스란히 분노로 옮겨갔다.
하지만 오영의 분노는 오수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오영이 오수를 사랑하기 이전에, 이미 오수는 오영을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오수는 더 이상 빚 78억원에 연연하지 않았고, 때문에 조무철(김태우)의 손에 죽을 거란 사실조차 무서워하지 않았다. 정작 오수가 두려워하는 건, 성공확률이 매우 희박한 오영의 뇌종양 수술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겨울 13회가 다소 불편했다. 오수의 진심을 읽으려 하지 않고,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그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오영의 태도는 심히 보기 안 좋았다. 물론 오영이 받았을 배신감, 충격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오영도 오수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오영이 오수를 사랑한다면, 오수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모습도 동반됐으면 좋았을 것을, 그겨울 13회에서 오수를 대하는 오영의 태도는 마치 착한 며느리를 엿먹이는 못된 시어머니같았다. 왜 그랬을까
오영은 오수에게 지리산 별장으로 여행가자고 제안했다. 오수는 오영이 수술을 앞두고 있는 터라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오영이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여행을 갔던 추억의 장소라는 말에 더욱. 그리고 두 사람이 찾은 지리산 별장. 도착을 해서야 오영이 왜 그곳을 택했는지, 이제는 오영이란 여자에 대해 왕비서보다 잘 알고 있는 오수는 하나 둘씩 깨닫게 된다.
별장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산속에 있었다. 어쩔 수없이, 오수는 오영을 업고서 지리산 등반에 나서야 했다. 혼자도 올라가기 힘든 산길을, 다 큰 여자를 업고 ‘죽겠다’는 말조차 안 나오는 숨쉬기도 힘겨운 상황에, 오영은 오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다. 그래도 안 힘든 척 꼬박꼬박 대답해주는 착한 오수. 오수에게 분노중인 오영도 미안은 했던지, 힘들지란 말대신 물이라도 건네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고생 끝에 도착한 별장. 오수가 한숨을 돌릴 찰나, 오영의 차가운 한마디가 떨어진다. “너 이제 죽었다.” 별장안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오영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수는 왔던 산길을 내려가서 먹을 걸 사와야 한다. 어떤 남자라도 화를 낼 상황이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하냐고. 진작 얘기해줬으면 미리 사서 올라왔을 거 아니냐고. 그런데 착한남자 오수는 오영에게 절대 화내지 않았다. 묵묵히 먹을 걸 사기 위해 산을 내려간다.
무려 3시간 30분만에 오수는 장을 봐왔다. 그리고 배고픈 오영에게 식사를 대접하고자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오영이 말했다. 아버지가 끓여줬던 된장찌개가 참 맛있다면서, 아버지의 된장찌개 비법이 기억나냐고 묻는다. 오수는 기억 안 난다면서, 내가 끓인 된장찌개도 맛있을 거라고 일갈한다. 산을 오르락내리락 힘들게 재료를 구해 사랑하는 여자 밥먹이겠다고 요리하는 남자가 오수다. 그런데 옆에서 오영은 된장찌개는 아버지의 손맛이 좌우한다며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오수가 아닌 일반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그냥 처먹어!’ 차마 말은 못해도 오수 조인성의 얼굴도 그 순간만큼은 화가 난 듯 보였다.
오수의 된장찌개 맛은 어땠을까. 조인성-송혜교의 된장찌개 먹방을 기대했지만, 제작진은 먹방대신 오수와 오영의 오붓한 티타임으로 대체한다.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가 주는 훈훈한 밀실 토크를 기대했지만, 오영은 본격적으로 오수의 가슴에 스크래치를 내기 시작한다. 이제 너의 정체를 솔직하게 밝히고 변명할테면 해보라는 듯이 노골적으로. 그래서 오영은 산장에 와서 오수에게 했던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장작을 팬 적도 없고, 된장찌개를 끓인 적도 없었다고.
그런데 오수는 오영을 속인 것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왜 그가 친오빠 행세를 했는지, 어떻게 오영의 친오빠가 죽었는지, 왜 78억원이 필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오영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사기꾼 오수라고 밝혔다. 변명할 게 없다며 오영이 받았을 상처를 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영은 들고 있던 차를 오수의 얼굴에 들이 부어버렸다.
그리고 오영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오수의 그 대답보단, 어린 시절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상처때문에 쓰레기처럼 살고 싶었다는 게, 눈 먼 나보다 네가 더 아팠다고 말하는 게 더 위로가 됐겠다고. 이어 내가 널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나를 갖고 노는 게 재밌지만은 않았었다고 말하는 게 더 낫겠어라고. 그리워했던 친오빠의 죽음조차 너에 대한 분노때문에 슬퍼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너를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너를 사랑한 건 앞을 볼 수 없는 내 잘못이었고, 시각장애인인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슬퍼했다.
그렇다. 오영이 오수와의 마지막 여행장소로 지리산 별장을 택하고, 오수를 죽도록 고생시킨 것도. 가족들과의 추억,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왜곡한 것도. 그동안 오수가 자신을 속이고 상처를 주었던 것처럼, 오영도 오수를 속임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는다는 게 얼마나 아픈 상처가 되는 지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수는 오영이 자신을 고생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화내지 않았다. 변명을 해보라고 했더니, 오히려 오영이 받았을 상처를 안다며 자신보다 그녀를 걱정했다.
오수의 태도에 오영은 좌절했다. 모든 게 앞을 볼 수 없는 자신의 탓이라고 느낀다. 오수가 자신을 속이려 든 것도, 오수를 믿고 사랑한 것도 앞을 볼 수 없는 자신의 탓이라고. 만일 오수가 구차한 변명이라도 했다면, 오수라는 남자를 사랑했던 자신을 이해하고, 실수였다면서 그를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오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결국 시각장애인이란 핸디캡으로, 혼자 아파하고 상처받고 끝나버릴 사랑이고 실수라는 생각에 오영은 자괴감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오수가 오영에게 강제키스를 했던 것이다. 오수는 그게 아니라는 ‘변명’의 키스였다. 너 혼자만 아픈 사랑이 아니다. 너만큼 나도 아프다를 말한 키스였다. 오영의 뇌수술이 극적으로 성공해도, 오수는 무철의 칼에 죽을 운명에 놓인 상황이었다. 오수는 이미 78억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오영을 속이며 가짜 오빠 행세를 한 잘못과 그녀를 사랑한 대가로 78억원을 얻을 기회와 맞바꾸었다.
그 상황에 오영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수가 변명을 늘어놓아서, 오영에게 진심을 전하고 설득을 시킬 수 있다한들, 자신이 세상에 없는 훗날 오영에게 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수는 장변호사(김규철)에게도 남자가 아닌 오빠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오수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영에게 강제키스를 퍼부었다. 자괴감에 무너지는 오영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키스가, 사랑이 어쩌면 오영에게 뇌수술보다 더 필요하다는 오수의 판단. 앞을 볼 수 없는 오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슬퍼했지만, 참아야 하는 오수에게 뺨을 후려치면서까지 자극해 강제키스를 2회나 이끌어낸, 그녀는 진정한 팜므파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