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이수경과 이민정, 주말 밤을 빛낸 양이(兩李)

바람을가르다 2009. 9. 28. 06:31

최근 주말드라마는 KBS<솔약국집 아들들>의 독주속에 웰메이드 드라마라 불리던 MBC<탐나는 도다>가 시청률 한자릿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해 조기종영이란 쓴잔을 마시며, 27일 시청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탐나는 도다>는 비록 시청자를 붙잡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으나, 서우라는 걸출한 신인여배우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작은 위안을 삼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정작 주말드라마의 경쟁은 9를 넘기면서 불이 붙는다. 시간대가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네편의 드라마로 <천만번사랑해>, <보석비빔밥>, <그대웃어요>, <천추태후>. 이 가운데 근소하게 앞서나가던 KBS대하드라마 <천추태후> <탐나는 도다>와 같은 날 퇴장하면서 9 이후 시청자들의 리모컨에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지금과 같은 고만고만한 시청률로 춘추전국시대를 이어갈 지, 2 <찬란한 유산>을 탄생시킬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그리고 그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바로 극중 여배우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주로 남자배우들이 이끌게 된다. 남자배우의 극중캐릭터가 흥행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내사랑 내곁에>와 같이 말이다. 참고로 설경구가 맡았던 <공공의 적> 강철중 캐릭터는 한국영화 최고의 캐릭터로 뽑히기도 했다. 반면 영화나 미니시리즈와 달리, 일일극나 주말극의 경우, 주축 여배우들의 캐릭터가 남자를 압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나 막장드라마일 경우 더욱 그러한 현상이 짙다. 왕자님 이전에, 캔디나 신데렐라. 그리고 그녀와 맞붙는 계모나 시어머니의 활약이 극의 기반이 된다.

 

예를 들어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 <아내의 유혹>과 같은 작품들은 장서희의 캐릭터의 힘으로 굴렀다고 볼 수 있다.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김혜자, <하늘이시여>, <행복한 여자> 윤정희, 남자배우보다 여자배우가 극을 이끄는 중심이 된다. 반면 미니시리즈의 경우는 남녀배우가 동등한 위치에서 나란히 바퀴를 굴리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주간과 주말, 저녁과 밤사이에 주시청자층의 연령대가 다르게 분포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찬란한 유산>에 비해 <스타일>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크게는 칙릿드라마라 이것저것 담다보니 화면이 아닌 말로 설명하는 게 많아지고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젊은층은 쫓아가기 쉽겠지만 연령대가 높아지면 채널돌리기 딱 좋다. 동시에 중반 이후 내용마저 부실해지자, 있던 젊은층도 눈을 돌린다. 작게는 김미숙이란 존재의 유무와도 연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엣지녀 김혜수가 맡은 박기자가 사실상 김미숙의 역할을 해줬어야 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이어야 할 이지아의 연기논란과 더불어 포커스가 김혜수에 집중되면서 박기자 홀로 북치고 장구쳐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김혜수인지, 이지아인지 주인공을 확실하게 정하고 달려야 했었는데, 시작은 이지아에서 네티즌의 반응에 제작진은 김혜수로 핸들을 꺽는다. 초반에 완벽녀로 설정된 박기자앞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남자배우들의 함량미달이 눈에 띄고, 이지아 뿐아니라 김혜수도 공중에 떠 버렸다. 초반부에 튀어버린 박기자의 캐릭터를 작가도 김혜수도 조밀하게 주워 담지 못하며, 중반이후 엣지는 다 죽이고 맛없는 로맨스에 얽매인 그녀를 시청자조차 감당하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최근 전형적인 주부타깃 <천만번 사랑해>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대리모 이수경(고은님)의 힘이다. 비록 인물설정 등에 있어 막장형식을 빌렸으나, 스펀지와 같은 고은님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배열된 인물들이 각자 캐릭터에 맞게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이수경과 정겨운의 로맨스에 앞서, 캔디 이수경을 류진의 아이를 낳게하며 나락으로 떨어드려 놓고 시작한다. 김미숙을 능가하는 이휘향은 고은미와 고부갈등을, 고은미는 남편 류진의 불륜을 지켜봐야 하며, 불륜녀 이시영은 상처를 안고 사는 이수경의 친구가 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짝짓기를 만들고서야, 로맨스와 갈등을 동시에 풀어내는 과정으로 접어든다. 일일드라마 <미우나 고우나>를 히트시킨 김사경작가의 노하우가 그대로 재현된다.

언뜻보면 <천만번사랑해> <스타일>보다 복잡한 구조같지만, 시청자에겐 너무나 익숙한 구조와 스토리라인을 안고 가기 때문에 연령대와 상관없이 느긋하게 시청할 수 있다. 단지, 시청자는 이수경을 중심으로 드라마에 몰입한다는 점이다. 이수경의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 드라마는 힘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막장이 대세라 할지라도 발연기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다. 뻔한 내용에 연기까지 발이라면 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성보다는 연기력을 중요시하여 캐스팅을 하게 된다. 물론 제작비 절감차원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리고 이수경은 대리모 고은님이자, 캔디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최근 성유리, 윤은혜, 손담비, 아라 등의 연기력이 워낙 도마위에 오르다보니 상대적으로 이수경의 연기는 눈부시게 빛날 정도였다. 적어도 <천만번 사랑해>는 이수경때문에 추락할 일은 없을 것이며, 정겨운과의 본격적인 러브라인이 시작되면 시청률에 톡톡한 재미를 볼 것이다. 다만 동시간대에 드라마가 아닌 <개그콘서트>와 붙었다는 점이 큰폭의 상승을 가로 막는다.

 

SBS<스타일>의 종영과 함께 첫선을 보인 <그대웃어요>에 맞서 MBC<보석비빔밥>의 반격이 시작됐다. <인어아가씨>임성한작가가 내놓은 <보석비빔밥>은 주인공 고나은, 소이현보다는 철없는 부모로 나오는 중견연기자 한혜숙, 한진희의 연기변신이 돋보이는 데다, 사돈지간으로 옥신각신하는 김영옥정혜선의 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본격적인 시청률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보석비빔밥>의 단기 시청률 상승분을 가지고 성공을 속단하긴 이르다. 그 이유는 막장과 차별화된 가족코믹드라마 <그대 웃어요>의 힘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최불암을 중심으로 강석우, 천호진, 송옥숙 등 중견배우들이 웃음을 장전했고, 최근 비키니로 핫이슈를 불러온 <꽃남>이민정을 비롯, 정경호, 이천희 <골미다>최정윤 등이 가세해 탄탄한 라인업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소이현을 제외하곤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배우들을 드라마의 주역으로 내세운 보석비빔밥보단 이민정, 정경호와 예능프로그램으로 익숙해진 이천희, 최정윤 <그대웃어요>가 인지도에선 우위를 보인다. 더군다나 이민정과 정경호의 코믹연기는 기대이상으로 드라마의 전망을 밝게 한다. 2009년도 판 엽기적인 그녀로 변신한 이민정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몰락한 재벌가 딸이자 철부지 서정인역할을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원조 엽기녀 전지현을 능가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여기에 파트너 정경호 또한 차태현 버금가는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변신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젊은 투톱이 예상밖의 맹활약을 펼치는 와중에, 최불암의 존재는 화룡정점을 찍는다. 극중에서 이민정은 예전 운전기사였던 최불암을 살가운 할아버지로 대하고, 그 역시 깍듯하게 아가씨로 모시는 주종관계를 보여주며 신선한 라인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는 정작 본인의 집안에서는 가부장적인 어른으로, 이 시대에 고개숙인 수많은 가장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흡사 최불암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연상시킨다.

 

이제 뚜껑을 연 상태라, <그대 웃어요>는 비록 10%에 불과한 시청률로 테이프를 끊었으나, 최진실의 유작인 된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이태곤PD문희정작가가 다시 뭉친만큼 충분한 기대감을 동반한다. 초반에 보여준 유쾌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대박드라마가 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현재 <천만번사랑해>이수경, <그대웃어요>이민정은 여주인공답게 확실히 드라마가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석비빔밥>의 소이현과 고나연은 너무 날개를 감춘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한혜숙이 이슈를 만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재밌는 건 젊은 양이(兩李)에 맞선 중견배우 한혜숙이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한혜숙 못지않게 고나연과 소이현의 캐릭터가 빛이 나야 <보석비빔밥>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대웃어요>는 군더더기가 난무했던 <스타일>보다 훨씬 엣지있게 나온 드라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