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야왕’은 왜 ‘돈의화신’이 될 수 없었나

바람을가르다 2013. 3. 19. 11:22

 

 

 

‘복수’는 드라마가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다. ‘복수’를 다룬 드라마를 좋아하는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복수드라마는 꾸준히 공급된다. 문제는 차별화에 있다. 어떤 방향에서 접근할 것인가. 이야기를 얼마만큼 참신하고 흥미롭게 구현할 것인가.

 

SBS드라마 ‘야왕’과 ‘돈의화신’은 나란히 복수를 모티브로 한다. 시청률도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평가는 극과 극이다. ‘야왕’이 허술한 복수극, 막장드라마로 통하는 반면, ‘돈의화신’은 치밀한 복수극, 웰메이드 드라마로 찬사를 받는다. 무엇이 이러한 엇갈린 평가를 부르는가. 두 드라마를 가른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복수를 다루되, 야왕이 ‘멜로’를 지향한다면, 돈의화신 ‘풍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지향점을 향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돈의화신’은 기획의도에 맞게, 돈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 이차돈(강지환)을 중심으로 로비와 리베이트, 커넥션과 비리에 얽힌 대한민국의 세태를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고 있기에 호평을 받고 있다.

 

반면 ‘야왕’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퍼스트레이디가 되려는 여자 주다해(수애)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 하류(권상우)의 사랑과 배신, 욕망을 그린 드라마임에도 악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바로 ‘야왕’이 택한 복수의 방향성인 멜로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야왕은 복수도 중요하지만, 멜로도 중요하다. 야왕이란 드라마가 만들어진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주다해와 하류사이에 멜로가 남아있는가. 애증조차 느낄 수 없다. 야왕 1회에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쏘고 피를 흘리는 순간에 시청자가 느꼈던 그들의 애절한 눈빛과 대화는, ‘왜 저들이 지독하게 슬픈 운명과 사랑에 눈물을 흘리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시청자를 의심하게 만들고 반문하게 만든다. ‘하류와 주다해가 청와대에서 왜 눈물을 흘리고 생쇼를 했던 거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관계잖아. 왜 그렇게 마지막이 깔끔하지 못해?’ 그렇다. 24부작 야왕 19회를 마친 가운데, 하류와 주다해사이에 단 1%의 사랑도 느껴지질 않는다. 캐릭터만 남고 멜로는 죽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포맷된 지 오래고 복구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하류가 주다해에게 하려는 복수는 ‘사랑’이 남아서가 아닌 ‘집착’으로 보인다. 복수를 하는 방법조차 허술하고 찌질하다. 그런 하류를 바라보는 주다해는 어떤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이제훈이 수지에게 했던 뱉어놓고 후회했던 말 ‘꺼져 줄래?’가 아니다. 주다해는 진심을 다해 하류에게 ‘꺼져 줄래!’를 반복하고 있다. ‘국어 몰라, 꺼져!’ 수준이다.

 

‘돈의화신’ 14회에서, 복재인(황정음)은 이차돈(강지환)이 먹여주고 키워줬던 재인의 엄마 복화술(김수미)을 배신했다고 오해한다. 이차돈이 지세광(박상민)일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화술과 적대적인 안젤리나 은비령(오윤아)에게 접근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재인은 사랑했던 이차돈에게 물을 뿌리고 엄마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싸늘하게 돌아섰다. 그런 복재인에게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이차돈은 괴로워한다. 미안해한다. 복재인 또한 이차돈에게 말은 독하게 내뱉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드라마 돈의 화신의 ‘이차돈-복재인’ 커플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고 위기감이 조성된다. 게다가 이차돈의 진심을 아는 복화술의 치매증상이 가속화되면서, ‘이차돈-복재인’ 커플에게 닥칠 위기는 더욱 현실화된다. 때문에 복돈커플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안타깝다. 복재인이 이차돈을 오해하고, 그를 벼랑끝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동시에 이차돈의 진심을 복재인이 언제쯤 알게 될 지 궁금증을 낳는다.

 

이렇듯 ‘돈의화신’은 멜로드라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멜로마저 살아있다. 사랑으로 긴장감을 조성할 줄 아는 드라마다. 반면 ‘멜로’를 표방한 야왕에서 멜로분위기를 찾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복수가 ‘돈의화신’처럼 치밀하기라도 한가. 즉 이도저도 아닌 드라마가 ‘야왕’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왜 ‘야왕’을 놓지 않는가. 그건 ‘주다해’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만났기 때문이다. 못하는 게 없는 여자다. 여자라는 이유로, 매력적이란 이유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남자를 아주 쉽게 유혹하고, 호구로 만들어 버린다. 하류-백도훈(정윤호)-석태일(정호빈)은 물론이고, 경찰같은 엑스트라조차 말 몇마디로 홀려버리는 능수능란한 여자. 좋게 말해 희대의 팜므파탈이고 국민악녀지, 까놓고 말해 차마 입에 담긴 힘든 욕설을 동반시키는 여자가 주다해다.

 

이 근본없는 캐릭터 주다해에게 하류는 막판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게, 드라마 야왕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 약점을 ‘사랑’이라는 멜로로 보완하면서 균형추를 맞춰야 했는데, 야왕에서 멜로는 실종됐다. 그렇다고 ‘돈의화신’처럼 이차돈이 끝판왕 지세광에게 복수하기 위해 권재규 등 주변인물의 숨통부터 조여가는 순서와 방법도, 현재로서 ‘야왕’은 취할 수 없다.

 

 

 

야왕은 모든 ‘죄’를 주다해에게 올인했기 때문이다. 주다해가 나쁜 짓은 혼자 다한다. 더 웃긴 건, 나쁜 짓을 해놓고 그 처리도 하류가 아닌 주다해가 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백도훈이 죽었다. 주다해의 양오빠 주양헌(이재윤)도 주다해가 처리할 공산이 크다. 덕분에 하류는 주다해가 청와대에 입성할 때까지 그냥 놀 수밖에 없다. 복수와 사랑의 중심에 서야 할 남자주인공이 쩌리가 된다. 하류가 처단해야 할 복수 그리고 사랑의 대상은 오직 주다해인데, 그녀가 하류를 파트너로 상종하지 않는 드라마가 ‘야왕’이다.

 

지금의 ‘야왕’은 멜로도, 복수도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재미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제작진은 주다해를 역대 최고의 악녀로 만드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주다해로 하여금 시청자가 욕하면서 보게끔 만든다. ‘이런 말도 안 되는...’하면서도 ‘야왕할 시간이네?’를 유발시키며, 시청자의 정신세계를 살짝 교란시키는 드라마. 덕분에 야왕의 스토리나 개연성은 실종되고 배우 수애와 주다해라는 캐릭터만 남는다. ‘돈의 화신’이 환상적인 피겨 여왕 김연아같은 드라마라면, 안타깝게도 ‘야왕’은 몸에 해롭지만 피게 되는 담배같은 드라마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