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화신, 정말 오윤아가 죽였을까
17일 방송된 주말드라마 ‘돈의 화신’ 14회에서, 이차돈(강지환)은 지세광(박상민)일당들을 속이고, 자신의 돈 100억원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지세광은 이강석(이차돈)이 살아있음을 재차 확인하고 분노했다.
‘신의 법’을 통해, 지세광-권재규(이기영)-은비령(오윤아)-고호(이승형)에 대한 복수의 칼을 든 이차돈은, 그 첫 번째 수단으로 죽은 황장식(정은표)을 이용해 적들을 자중지란에 빠뜨리기 시작했다. 이차돈은 파트너 양구식(양형욱)-홍자몽(이지현)의 도움을 받아, 황장식이 살해될 당시 사용된 대포차 권재규 검찰총장의 도난 당한 차량을 발견하고 블랙박스를 빼내오는 데 성공한다. 이어 전지후(최여진)검사에게는 권재규에 대한 의혹을 부풀려 수사에 탄력이 붙도록 관련 정보를 흘린다.
한편 권재규의 차량에서 몰래 빼온 블랙박스에서, 이차돈은 대포차를 이용한 범인이 은비령(오윤아)임을 알게 된다. 블랙박스에 녹화된 내용에 따르면, 은비령이 황장식과 약속한 장소, 황장식이 죽은 장소를 향해 가는데, 훔친 권재규의 차량을 이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타살 의혹이 제기된 황장식은, 누가 봐도 은비령이 죽였음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비록 은비령이 왜 황장식을 죽였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겠지만 반전이다.
이것은 반대로, ‘과연 은비령이 황장식을 정말 죽였는가?’라는 질문과 궤을 같이 한다. 은비령이 악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은비령이란 캐릭터가 죽은 이중만(주현)의 케이스처럼 사람을 죽이자고 제안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일 만큼 간이 큰 여자인가. 황장식에 대해 무엇이 두려워? 쉽게 납득할 만한 살인동기를 찾기 힘들다. 때문에 은비령이 황장식과 만나기로 한 것은 분명하나, 죽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어쩌면 은비령이 도착한 시점에, 이미 황장식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내포한다.
그렇다면 왜 황장식의 살인범으로, 대포차의 블랙박스에 포착된 은비령이 아닌 제 3자의 가능성을 얘기하는가. 그것은 황장식이 죽기 직전, 유일하게 이차돈은 이강석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황장식을 죽였다면, 그 이유는 ‘이차돈=이강석’임을 혼자만 알고 싶어하는 자의 소행은 아닐까란 의구심과 맞닿는다. 그렇다. 바로 또 한명의 유력한 황장식의 살인용의자로 지세광을 지목하는 이유다.
사실 누가 봐도 지세광이 ‘이차돈=이강석’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긴 쉽지 않다. 지세광 또한 황장식을 누가 죽였는지 궁금해 했고, 심지어 ‘돈의 화신’ 14회에서, 지세광은 권재규와의 술자리에서 이차돈이 이강석이라고 직감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고아원을 찾아가 이차돈의 어린 시절을 사진을 확인한 후, 권재규에게 이차돈은 이강석이 아니라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왜 지세광을 의심하는가. 그것은 ‘돈의 화신’이란 드라마가 던지는 화두에 있다. 바로 ‘정의’. 그리고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지세광이라는 캐릭터. 지세광은 누구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가. 지세광 자신일까. 그렇다 또는 그렇지 않다. 지세광은 확신하고 있다. 자신은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권선징악(勸善懲惡) ‘나쁜 놈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세광은 돈의 힘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이중만(주현)을 살해하고, 그의 가족 박기순(박순천)-이강석(박지빈)마저 고통속에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동시에 이중만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았고, 당연히 자신의 소유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지세광은 그것이 복수가 아닌 정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세광이 말하는 정의가 옳은가. 지세광의 정의는 평가받아야 한다. 누구에게? 바로 자신과 포지션이 뒤바뀐 이강석(이차돈)이다.
복수에 성공하고 모든 걸 가진 지세광이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져야 하는 질문에, 아주 명쾌한 해답을 이강석이 쥐고 있다. 지세광은 이차돈에게 묻고 있다. 내가 말하는 정의는 나쁜 놈을 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이차돈, 네가 만약 나라면, 너도 나와 같은 방법을 취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지세광)가 행한 ‘정의’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이중만을 죽인 것은 죄가 아니다.
드라마 ‘돈의 화신’에서 지세광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를 절대 악인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악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정당성을, 이유를 동반하며 미워할 수만은 없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할 줄 아는 아들이다. 검사라는 공직, 권력을 이용해 슈킨따위를 하던 이차돈과 다르다. 검사로서 소신과 용기가 있었다. 다만 그는 사람을 죽였고, 한 가정을 파탄냈다. 그것이 온전한 ‘정의’를 말할 수 없는 지세광의 오점이고, 트라우마다. 그 트라우마를 깨줄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신과 같은 위치에 놓인 이강석(이차돈)이다.
황장식이 죽기 직전, 양평에서 이강석의 돈 100억원이 발견됐다. 그 돈이 과연 산사태 때문에 발견됐을까. 황장식은 지세광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이중만이 양평 별장을 이강석의 이름으로 해놓을 것을, 지세광이 건드리지 말자고 했던 말. 즉, 이강석을 세상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지세광이 100억원을 푼 건 아닐까란 의혹.
14회에서 지세광은 이런 말은 한다. “제가 걱정하는 건, 그 놈(이강석)이 100억원에 만족하고 조용히 숨죽여 사는 겁니다.”라고. 그 말에 놀란 은비령 등이 이강석이 복수하기라도 바라냐고 묻자, 지세광은 (이강석이) 모습을 드러내줘야 내 오점(트라우마)을 씻을 기회가 생긴다고 답한다. 이에 권재규 등은 지세광의 말을 별 말 아닌 듯 흘려버리지만, 지세광의 말속엔 그들이 이해못한 뼈가 있다.
황장식이 죽은 직후, 지세광이 감찰부장에 선임되고 그는 이차돈을 감찰부에 불러들인다. 그리고 지세광은 슈달검사 이차돈을 조사했다. 지세광이 이차돈을 검사직에서 퇴출시킬 때, 그는 ‘정의’에 대해 말하며 자신이 이중만 회장을 죽였던 과거를 이차돈에게 들려준다. 지세광이 왜 그렇게 이차돈을 주목했을까. 한낱 슈달검사 불과한 그를. ‘정의’를 말하는 스타검사 지세광이 수준이하의 비리검사를 상대로, 자신의 과거를 구구절절 말하며 ‘정의’를 말하고 있었을까.
‘돈의 화신’ 14회를 보고난 뒤 떠오른 건, ‘은비령이 황장식을 죽였을까’가 아니었다. 지세광이 ‘정의’라는 룰렛을 놓고, 이차돈과 1:1로 붙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풍겼다. 이 극단적인 ‘게임안으로 이차돈을 불러들인 건, 지세광일지도 모르겠다.’라는 탄식. 때문에 ‘정의’를 논할 가치가 없는 권재규-은비령-고호따위는, 지세광이 이차돈에게 던져 주는 미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세광이 권재규앞에서 이차돈을 이강석으로 의심한 것조차, 권재규등 다른 일당들에게 이차돈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쇼는 아니었을까. 이차돈이 복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기회를 주는 것. 자신이 이중만패밀리에게 행했던 복수의 방법을 정의란 이름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이차돈을 더욱 끌어들이는 지세광의 미끼. 지세광의 눈은 오직 이차돈에게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도 나와 같은 방법의 복수를 택할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지세광이 이기는 게임이 된다. 지세광이 말한 정의는 옳았고, 지세광의 오점은 사라진다. 돈의 힘, 권력의 힘을 누르기 위해, ‘권선징악’아래 살인 및 기타 극단적인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던 지세광의 복수.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믿는 지세광에게, 과연 이차돈은 어떤 ‘정의’의 심판을 내릴 것인가. 물론 이 모든 게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빠뜨리는 ‘돈의 화신’이란 드라마는 매 장면 흥미진진하다. 이 김연아같은 완벽한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