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 권상우, 언년이급 ‘하류 민폐리스트’
12일 방송된 월화드라마 ‘야왕’ 18회에서, 석태일(정호빈)이 주다해(수애)에게 말했다. 백도훈(정윤호)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어, 백학그룹의 대가 끊기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주다해가 백도훈의 병실을 몰래 찾았다. 주다해는 눈물을 떨구며 백도훈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손은 그의 산소호흡기로 향했다. 이어 백도경(김성령)이 백도훈의 병실에 들어왔다. 백도훈은 백도경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과연 백도훈의 병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주다해가 백도훈의 사망과 직결되는 또 다른 수작을 부린 것일까. 백도훈이 죽는 순간에도 주다해는 미스터리를 남겼다. 물론 폭탄때문이든, 주다해가 따로 손을 썼든, 백도훈은 주다해가 죽인 건 사실이다. 때문에 백도경은 주다해를 죽이겠다며 가위를 들었다. 백도경이 주다해를 제대로 찔렀을까. 아니면 뺨에 상처를 입었던 지난 번처럼, 주다해의 역공에 백도경이 오히려 당하게 될까. 혹시 중간에 하류(권상우)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예고없이 끝난 야왕 19회에 대한 궁금증을 낳는다.
어차피 백도경의 가위 공격에 주다해가 살해당할 일은 없다. 하지만 ‘주다해는 내가 죽인다!’고 말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적극적인 행위로 실천하고자 했던 백도경의 복수 의지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아들을 잃은 엄마의 분노로 가위를 집었고, 주다해처럼 비겁하게 상대를 속이고 등에 칼을 꽂는 것이 아닌, 복수의 대상인 주다해에게 가위 들어간다면서 피할테면 피해보라는 백도경표 매너 복수는 빛났다. 백도경이 괜히 승마선수출신이 아니었다. 비록 가위라는 흉기를 들었으나, 상대에게도 반격의 여지를 주는 스포츠정신이 느껴진다.
여기서 시청자에 따라 하류에 대한 실망감이 증폭될 수 있다. 왜 하류는 백도경처럼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가. 그동안 하류가 주다해를 죽이겠다고 수십번을 말해 놓고, 가위는 커녕 면도칼이라도 집은 적이 있는가. 왜 하류의 공작은 단발성에 그치며, 주다해가 벌벌 떨 정도의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가. 오히려 귀찮으니 그만 좀 꺼져달라는 멸시를 당하고만 있는가. 주다해는 하류를 제거하려 폭탄을 준비하는데, 하류는 콩알탄수준이니 딱하다.
백도경과 하류는 주다해때문에 나란히 아들 백도훈과 딸 은별이를 잃었다. 백도경은 엄마의 마음으로, 하류는 아빠마음으로 다른 복수를 꿈꾸는가. 그건 아니다. 백도경이 가위를 들었듯이, 하류도 은별이 장례식이 끝난 후 주다해의 목을 졸랐다. 비록 교도관들의 제지로 하류는 미수로 끝났지만, 그 당시 하류는 백도경처럼 이성을 잃고 주다해를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엄삼도(성지루)를 만난 하류는, 주다해를 육체적으로 죽이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죽이는 길을 택한다. ‘법’이란 테두리안에서 주다해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올 파국, 숨쉬는 것조차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과 마주하게 하는 것. 동시에 그 고통을 모두 감내하고 반성할 수 있다면 주다해를 용서할 마음도 있어 보인다. 주다해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고, 은별이 엄마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백도경도 하류와 같은 생각을 품게 되지 않을까. 비록 눈앞에 주다해를 보고 이성을 잃어 가위를 들었지만, 그것은 아들 잃은 그녀를 마음으로 위로하고 진정시켜줄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은별이를 잃었던 하류에게 똑같이 딸을 잃었던 엄삼도가 위로가 되어주었듯이, 만일 하류가 백도경을 위로할 수 있다면, 향후 그녀가 이성을 잃고 먼저 흉기를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류와 백도경은 여러모로 닮았다. 즉 백도경도 결국 하류식의 복수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주다해를 향한 하류의 이상적인 복수는 쉽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화끈한 복수를 원하는 시청자입장에선, 소심하고 허술하고 둔탁한 주인공 하류의 복수과정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들다.
게다가 이미 하류는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민폐를 끼쳤다. 하류 스스로도 자백했다. 주다해에게 복수하려는 자신의 욕심때문에, 쌍둥이 형 차재웅이 죽었고, 백도훈이 죽었고, 딸 은별이가 죽었다고. 엄삼도는 그게 왜 너(하류)때문이냐며 위로했지만 사실이다. 주다해에게 출소한다면서 하류가 선전포고를 안했다면 출소날에 차재웅이 죽었을까. 백도훈에게 주다해 만나러 간다는 말은 왜 했나. 그 뿐인가. 자신이 차재웅이 아니라 하류라고 주다해에게 솔직하게 고백한 것도 넌센스였다.
이 정도면 하류는 남자 언년이로 손색없다. 현재 드라마 야왕에서, 주다해와 백도경의 캐릭터는 폭발중인 반면, 남자주인공 하류의 캐릭터는 매력을 잃고 언년이급 민폐리스트를 작성중인 형국이다. 앞으로는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닌, 악녀 주다해의 목을 서서히 조여가는 하류의 복수, 그리고 과정에서의 디테일과 카타르시스가 동반되어야 한다. 만일 야왕이 지금 분위기로 마지막회까지 이어진다면, 하류는 복수의 아이콘이 아닌, ‘추노’ 언년이급 민폐 남주였다는 딱지를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