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는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연이어 초대형 가수들을 배출한다. 12월에 펼쳐진 10회 에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받은 유열과 ‘첫눈이 온다구요’의 금상 이정석을 낳는 수확을 거둔다.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이는 유열을 떠올릴 때, ‘아, 그 노래를 불렀지!’라고 말할 정도의 빅히트 친 곡을 꼽기는 어렵지만, 성실하고 꾸준한 활동으로 여러 차례 연말 10대 가수에 오르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정석은 불후의 명곡 ‘사랑하기에’를 비롯, 대학가요제 본선에 나섰으나 수상하지 못했던 조갑경과 듀엣을 이뤄 불렀던 ‘사랑의 대화’, 여름을 들썩이게 만든 ‘여름날의 추억’ 등 굵직한 히트곡들을 양산하며 특히 젊은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당시, ‘사랑의 대화’를 함께 불렀던 조갑경이 이정석의 극성팬들에게 한동안 시달린 에피소드가 이를 뒷받침한다.
마왕의 탄생, 신해철과 015B에 전신 무한궤도의 등장.
198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던 날, 잠실체육관에서 마왕 신해철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12회 대학가요제는 무한궤도에 의한, 무한궤도를 위한 축제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이 탄생은 그동안의 대학가요제에 변곡점을 찍는 계기가 된다. 포크와 댄스, 발라드가 대세였던 대중음악의 흐름속에 록음악 ‘그대에게’를 겁없이 내놓아 대상을 거머쥔 밴드가 무한궤도이기 때문이다.
신해철과 정석원이 주축이 된 그들은 1989년 1집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하나, 음악적 견해를 좁히지 못하고 해체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오히려 대중음악에 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해철은 솔로로 전향해 안녕,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까페 등으로 성공을 거둔 뒤, 그룹 NEXT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록음악에 손대기 시작한다. ‘도시인’,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 ‘Money’ 등과 같은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담은 곡들과 ‘날아라 병아리’, ‘절망에 관하여’, ‘The Dreamer’와 같은 자아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은 감히 어떤 아티스트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Here I Stand For You’, ‘일상으로의 초대’, ‘먼훗날 언젠가’, ‘인형의 기사 Part2’ 등과 같은 사랑에 관한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팬서비스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 이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故노무현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음악외적인 부분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난다. 동시에 달변가이자, 독설가인 그는 MBC <100분 토론>에 5회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반대, 체벌 금지 등을 찬성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다. 최근엔 대한민국 공교육을 비판했던 그가 사교육의 중심인 특목고 대비 입시학원 광고에 출연했다는 사실로, 또 한번 네티즌들의 집중포화 대상이 된다. 또한 북한 핵과 관련된 발언 등 그의 말한마디 한마디가 그동안 음악으로 보여준 파괴력이상의 정이든 역이든 효과를 내고 있다.
분명한 건,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왔던 그의 언행과 관계없이 신해철이란 존재는 영국의 비틀즈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다. 그를 오피니언 리더라고 부를 수 없을 진 몰라도, 탁상공론에 빠진 위정자들과 달리 솔직하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음악을 담았던 한국 대중음악에 손꼽히는 리더임은 부정할 수는 없다.
무한궤도의 또 하나의 파편, 비익조 015B의 정석원.
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가 바로 비익조다. 부부를 비유할 때 쓰이기도 하는 비익조가 015B (이하 공일오비)?
신해철과 결별한 정석원은 형 장호일과 베이스 조형곤을 합류시켜 공일오비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신세대적 감각과 트렌드를 주도한 그룹 공일오비에는 정석원이란 탁월한 뮤지션이 존재했지만, 보컬을 따로 두지 않는 객원시스템을 유지한다. 아무리 좋은 곡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보컬이 표현하지 못하면 날 수 없는 그들. 다행히 공일오비의 음악을 훌륭히 소화해 낸 객원보컬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높게 비상할 수 있었다.
<패떴>, <라디오스타> 등 예능인으로 맹활약중인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이 공일오비 객원보컬 1호로, ‘텅빈 거리에서’, ‘친구와 연인’, ‘H에게’ 등을 불렀다. 당시 소녀팬을 잡기엔 윤종신의 비쥬얼이 떨어진다며 장호일이 극구 반대했으나, 정석원이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윤종신을 고집했다는 후일담이 토크쇼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정석원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고, 윤종신은 라디오 DJ 등으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진다. 이후 솔로로 데뷔,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공일오비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훈련소로 가는 길’로 잘 알려진 이장우가 윤종신에 이어 합류하는데, 감미로운 목소리로 따지면 국내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2집 타이틀 곡 ‘떠나간 후에’를 비롯, ‘5월 12일’,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등이 그의 목소리를 탔다. 그밖에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김태우, ‘신인류의 사랑’, ‘슬픈 인연’의 김돈규 등이 공일오비의 대표적인 객원보컬로 꼽힌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 ‘신인류의 사랑’, '수필과 자동차' 등과 같은 곡들은, 공일오비가 X세대를 가장 잘 표현한 그룹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을 뛰어넘는 정석원표 발라드는 대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또 다른 힘이 녹아 있다. <H에게>, <5월 12일>, <그녀의 딸은 세살이에요>등, 정석원이 작사, 작곡했던 사랑 노래속에는 그의 첫사랑을 모티브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첫사랑이 정석원 이전에 탤런트 이광기와 먼저 만났었다는 사실이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을 통해 밝혀져, 다소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공일오비는 ‘적녹색인생’과 같은 환경문제를 다룬 곡들도 선보이는데, ‘4210301’이란 곡은 당시 환경단체 전화번호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당시 호기심에 전화번호를 눌러봤던 사람들이 꽤나 많아 자중해달라는 기사가 뉴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한편, 2집에 수록된 ‘이젠 안녕’이란 곡은, 노래방에서 마지막으로 선곡해야 하는 불문율처럼 여겨질 정도로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공일오비는 대중적인 음악을 했으나, 어떤 음악인들 보다 반뼘이상 앞서서 트렌드를 주도했던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한궤도 출신의 정석원이 있었다.
이어 다음 포스트에선 93년 <꿈속에서>로 대상을 받은 전람회. 정석원이 자신을 이을 후배로 점찍었던 취중진담의 김동률을 돌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