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vs와타베아츠로 누가 더 매력있나
오영(송혜교)이 낸 문제를 오수(조인성)가 풀어냈다. 20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4회에서, 세상 그리고 사람과 단절된 생활을 해왔던 오영을 오수는 세상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PL그룹 상속녀 오영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전략이든, 죽고 싶어하는 한 시각장애인에게 느낀 연민이든, 자신과 닮은 여자를 치유하고픈 본능이든, 이유가 무엇이든 오영에게 오수는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다른 사람이고, 남자고, 세상이었다.
동창회 가는 길. 오수는 오영을 동생이 아닌 여자로 대했다. 오영에겐 특별한 시간이었다. 약혼자 이명호(김영훈)조차 오영과 데이트 한번 해주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오영에게 보여준 관심이란, 철저히 PL그룹 사위가 되고픈 비즈니스차원에 불과했다. 당연히 오영의 마음을 얻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오수는 달랐다. 21년 만에 찾아온 오빠 오수(물론 가짜 오빠지만)는,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다. 때로는 나쁜 애인처럼, 때로는 착한 오빠처럼 오영의 중심을,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오영은 오수의 말대로 동창회에 잘 나왔다고 느낀다. 첫사랑(유건)으로부터 팜므파탈이란 소리를 듣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영도 크게 웃을 줄 아는 여자였다. 오수에게 동창회 분위기를 물어보는 적극성도 보였다. 오영이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 이처럼 편안함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왕혜지(배종옥)의 시각장애인을 향한 주입식에 가까운 기계적인 배려가 오영의 숨통을 조였다면, 오수는 상대를 덜 의식하면서 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배려, 시각장애인이 아닌 여자에 대한 배려가 있다.
오수는 집으로 향하던 중, 어린 시절 오영이 울면 늘 오수가 달래줬던 물건을 알아차린다. 밤새 테이프를 돌려 본 열공의 효과, 더하기 보이지 않는 상대 패를 읽을 줄 아는 겜블러의 본능이 유추해 낸 바로 솜사탕. 오수가 가져온 솜사탕에 오영은 놀라움과 동시에 오빠 오수(조인성)에 대한 그동안의 불신이 눈녹듯이 사라진다. 조인성-송혜교의 솜사탕 키스는 없었다. 솜사탕키스대신 솜사탕먹방은 있었다. 그리고 솜사탕을 녹일 정도로 오영을 바라보는 오수의 강렬한 눈빛이 있었다.
조인성vs와타베아츠로, 누가 더 매력있나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시청률에서 ‘7급공무원’과 ‘아이리스2’를 누르고, 2주 연속 수목드라마 정상에 올랐다. 제작비 170억으로 기대를 모았던 블록버스터액션 아이리스2와 지난 6회 동안 초반 돌풍속에 1위를 유지했던 7급공무원이, ‘그겨울’의 바람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경쟁중인 아이리스2-7급공무원이 상대적으로 시청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도 영향을 받겠지만, 일단 드라마 그겨울바람이분다의 자체적인 경쟁력, 힘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자체경쟁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원작인 와타베 아츠로-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일본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4회 동안 지켜본 결과,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보다는 확실히 잘 빠졌다. 리메이크작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면에서 형보다 나은 아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색을 한 노희경작가의 필력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호평받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영상미다. 연출을 맡은 김규태PD는 드라마를 통해 영상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장면 장면마다 공들인 티가 난다. 한마디로 웰메이드 드라마의 정석을 보여준다.
원작과 다르게 여름이 아닌 겨울을 택한 것도 신의 한수였다. 배경이 바뀌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전혀 다른 내용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눈이 호강하는 시원함, 아름다운 영상을 담기에도 여름보단 겨울이 상대적으로 낫다. 또 멜로드라마는 여름보단 겨울에 흥한다는 정설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 비주얼커플 ‘조인성-송혜교’가 원작 일드의 커플 ‘와타베 아츠로-히로스에 료코’보다는 어울림이 좋다는 사실이다. ‘와타베-히로스에’커플이 비주얼 측면에서 오빠-동생 분위기가 강했던 반면, 조인성-송혜교는 연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무리 설정상 오빠-동생에서 시작하더라도,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커플은 연인느낌이 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산소커플 ‘조인성-송혜교’는 원작을 능가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또 하나, 와타베 아츠로를 뛰어 넘는 조인성의 힘이다.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의 와타베 아츠로보단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조인성이 낫다. 사실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이 리에이크된다고 했을 때 기대감이 별로 없었다. 그다지 인상적으로 기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조인성이란 얘기에 기대감이 상승했다. 조인성이 안방불패라서? 조인성이란 배우가 잘 살릴 수 있는 캐릭터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배우 조인성의 연기에는 특별함이 있다. 폭발력이 있다. 그리고 굉장히 거칠다. 조인성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카리스마는 모든 장면을, 매순간을 지루하지 않게, 특별하게 만든다. 굳이 폼을 잡거나 힘을 들이지 않아도 강렬한 느낌, 강한 남자의 아우라를 풍긴다. 그래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잔잔함은 세련미를 부르고, 거침, 강렬함은 폭발력을 부른다.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속 와타베 아츠로는 캐릭터를 여유롭고 흐물흐물 능글맞게 잘 표현한 반면 상대적으로 폭발력보단 절제를 어필했다. 절제된 연기가 와타베 아츠로의 강점이기도 하다. 내면을, 감정을 표현하는 한국남자와 일본남자의 차이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일드에서는 와타베아츠로식으로 연기하는 게 어울릴 진 몰라도, 한국드라마에선 절제미보단 조인성의 거친 면뒤에 부드러움, 눈빛으로 말하는 강렬함, 절제하거나 담아두지 않고 쏟아낼 때 빛나는 폭발력이 통한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조인성이란 배우가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
만일 조인성이 와타베 아츠로처럼 연기했다면 매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조인성이기 때문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오수가 시청자에게 통하는 것이다. 조인성의 강점, 매력을 극대화한 캐릭터로 승부했기 때문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원작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의 그림자를 지워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작장애인이란 쉽지 않은 캐릭터를, 히로스에 료코보다 섹시하고 매력있게 구현한 송혜교가 비주얼이상의 시너지효과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