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녀다, 영화 속 매력적인 대표악녀들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가 흡인력을 가지려면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고 끌어가는 힘은 결국 캐릭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최근 안방극장은 드라마 ‘야왕’의 주다해(수애)를 필두로 악녀캐릭터들이 주목받고 있다. ‘악녀’만큼 극의 재미와 긴장감을 불어넣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드물다. 또한 악녀캐릭터를 구현하는 방법에 따라, 장르와 내용도 저마다 다른 색깔을 빚는다. 그렇다면 수많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매력적인 악녀 그리고 영화는?
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5년 작)
밀드레드 래취드 역 - 루이스 플레처
범죄자 맥머피(잭 니콜슨)는 교도소에서 정신병원으로 후송된다. 맥머피는 정신병원이 감옥보다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병원에 수감된 사람들과 만나면서 깨닫는다. 정신병원의 강압적인 규칙에 따라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희노애락조차 느끼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한 의지조차 상실한 상황.
이를 주도한 인물이 독재자, 보이지 않는 손, 거대한 시스템 등으로 상징되는 정신병원 수간호사 밀드레드 래취드(루이스 플레처)다. 그리고 잘못된 시스템에 맞서 자유를 되찾고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범죄자출신 맥머피(잭 니콜슨)다. 이들은 흥미롭고도 날선 대립각을 세우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잭 니콜슨의 연기도 명불허전이지만, 수간호사 래취드 역의 루이스 플레처는 압권이다.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악녀들과는 차이가 있다. 방법이 매우 잘못됐으나, 래취드 입장에선 정한 규칙아래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자 나름 최선을 다 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 잭 머피가 병원에 나타나면서, 그녀가 세운 규칙(시스템)의 오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행동한다.
어느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인상. 불같이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없고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속에서도 표정변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얼음처럼 차갑고 존재감은 묵직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더 매력적이다. 영화를 보고 있을 때보다, 보고난 후에 더욱 강렬하게 기억되는 악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등 주요부문 5개를 석권한 수작이다. 힘이 지배하는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 영화를 보면, 스티븐 킹의 ‘쇼생크탈출’보다는 조지오웰의 ‘1984’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오른다.
2. 미저리 (1990년 작)
애니 윌키스 역 - 캐시 베이츠
순애보적인 여주인공을 등장시킨 ‘미저리’란 연작 소설로 인기를 누리던 작가 폴 셀던(제임스 칸)이 차를 몰다가 눈 내린 어느 산길에서 사고를 당한다. 폴이 의식을 찾은 곳은, 그의 소설 ‘미저리’의 광팬이었던 애니(캐시 베이츠)의 집. 양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폴은 간호사출신 애니의 헌신적인 간호로 회복단계에 접어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폴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는 애니. 심지어 폴은 외부와의 연락조차 시도할 수 없다. 애니의 집은 산속이고, 눈사태가 심해 전화마저 불통이라는 그녀의 말을, 폴은 점점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마을로 나가 소설 ‘미저리’시리즈의 최신판을 읽은 애니는,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폴에게 숨겨왔던 그녀의 분노와 광기를 폭발하기 시작한다.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 열성팬의 집착과 광기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올 수 있음을 영화 ‘미저리’는 애니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악녀 애니 역에 배우 캐시 베이츠는 이를 완벽하며 소화하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국내에서도 히트를 친 ‘미저리’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단골 소재로, 끊임없는 패러디를 양산하기도 했다.
스타(혹은 흠모하는 대상)을 향한 집착과 광기를 표현한 영화는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로버트 드니로의 ‘더 팬’과 같은. 하지만 ‘미저리’나 아내에 대한 집착(의처증)을 박진감(?)있게 녹여낸 줄리아 로버츠의 ‘적과의 동침’과 같은 걸작은 흔치 않다. 덧붙여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0년 작 영화 ‘선셋대로’는 ‘미저리’의 원형 혹은 또 다른 버전으로 비교해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3. 원초적 본능 (1992년 작)
캐서린 트라멜 역 - 샤론 스톤
“기소라도 하실 건가요?”
연쇄살인사건, 얼음송곳, 금발의 미녀. 용의자로 지목된 캐서린 트라멜(샤론 스톤). 그녀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형사 닉 커랜(마이클 더글라스). 영화 ‘원초적 본능’은 비록 아카데미 영화제와 인연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한 인기와 명성을 누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호응으로 화답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이 흥행했던 이유가 뭘까.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다. 그리고 스릴러에 ‘에로’를 접목했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에로틱 스릴러가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바로 팜므파탈 캐서린 트라멜을 너무나도 섹시하고 매력있게 표현한 샤론스톤이란 여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원초적본능’은 또 한명의 세기의 섹스심벌을 탄생시켰다.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 흔하게 등장하는 치명적인 유혹의 팜므파탈 캐릭터지만, 이 캐릭터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했던 건, 영화 ‘원초적 본능’이 등장 이후와 맞물린다.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임팩트가 워낙 강했고, 캐릭터 캐서린 트라멜도, 배우 샤론 스톤도 강렬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러나 샤론스톤은 영화 ‘원초적본능’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캐서린 트라멜에 버금가는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배우로서 급격하게 추락했고, 에로틱스릴러라는 장르도, 팜므파탈이란 캐릭터도 예전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