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가 조인성에게 올인한 이유
14일 방송된 SBS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3회에서, 오영(송혜교)은 자신이 읽던 책 속의 구절을 읽는 오수(조인성)의 목소리에서, 1년 전 오수 오빠의 편지를 읽어주던 또 다른 오수(조인성)라는 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오영은 오수에게 문제 하나를 낸다. 21년 전 헤어질 때, 오빠 오수가 오영에게 반드시 가져오겠다던 둘만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기억하냐면서, 당신이 진짜 친오빠 오수가 맞다면 추억의 물건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오수는 당황했다. 오수는 오영의 친오빠가 아니기 때문에, 21년 전 약속했다던 추억의 물건따윈 기억할 리 만무하다. 오영이 놓은 덫에 제대로 걸려 든 셈이다. 그렇다면 오수는 오영이 낸 문제를 과연 4회에서 풀 수 있을까. 아마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왜? 초장부터 틀리면 남자주인공 오수의 간지가 살지 않을테니까. 무엇보다 오수가 문제를 맞출 능력자란 사실을 ‘그겨울’ 총 3회를 통해 복선처럼 시청자에게 주입하고 있었으니까. 오수는 똑똑하다. 영리하다. 그렇게.
특히 그겨울 3회에서는, PL그룹 본주장이자 오영의 약혼자 이명호(김영훈)가 오수의 유전자 검사를 몰래 진행중이란 사실을 알고, 오수는 본인보다 더 당황했던 박진성(김범)-문희선(정은지)에게 침착하게 그들이 도와줘야 할 일들을 지시했고, 진성과 희선은 오수에게 역시 똑똑하다며 강조했다.
심지어 조무철(김태우)마저 오수에게 오영을 죽이면 PL그룹이 네 것 아니냐고 돌직구를 던지자, 오수는 그럼 오영의 법정대리인 왕혜지(배종옥)를 비롯한 오영의 측근들이 상속과정에서 모든 기관을 동원해 자신의 뒷조사를 정밀하게 할 것이고, 그러면 탄로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현실적 답변을 내놓았다. 조무철은 비아냥대면서도,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전략을 짠 영리한 오수에게 감탄했다.
오수(조인성)가 누구인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술-여자-도박 등에 인생을 낭비중인 양아치로 보이지만, ‘살아있으니까 살고 싶다.’로 대변되는 그는, 누구보다 삶의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유년시절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첫사랑 희주를 사고로 잃었지만 여전히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홀로 세상에 버려진 오수가 살아남았던 건, 삶에 대한 의미가 아닌 의지였다.
오수의 직업이 왜 겜블러(도박사)일까. 겜블러는 기본적으로 영리해야 한다. 판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표정, 행동, 몸짓, 말투 그리고 흔들리는 눈빛까지 캐치해야 포커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오수는 누구보다 영리했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여자의 마음은 물론이고. 그런 오수가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강적을 만났다. 바로 오영(송혜교)이다. 상대방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읽기 위해, 가장 중요한 관건은 상대방의 눈빛이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반사되는 상대방의 눈빛. 그런데 오영은 오수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오수는 오영의 마음을 온전히 읽지 못하고, 번번이 그녀에게 약점을 잡히곤 한다. 동네 타짜가 아귀를 만난 꼴이다. 오영은 오수가 상대해왔던 사람들과 180도 다르다. 즉 오수가 오영의 마음을 훔치고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게임의 법칙’을 오영에게 맞추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밑천이 바닥나기 전에.
오수를 상대하는 오영은 어떤가. 오영은 한마디로 초장부터 ‘올인’이다. (송혜교답다.) 오영은 오수가 친오빠인지를 확인하는 것과 별도로, 오수에게 자신을 죽여주는 대가로, 오수를 PL그룹의 상속자로 명시하는 유언장을 써주겠다고 말한다. 오수는 당황스럽다. 21년 만에 만난 오빠에게 죽여 달라니, 오영이 제정신이 아니거나, 뻥카수준으로 허풍이 세거나, 오수를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정도만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오수가 오영의 패를 완전히 읽지 못한 것이다. 오영이 왜 PL그룹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려 하는지. 그것은 오영이 PL그룹(돈)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왕혜지(베종옥)를 비롯한 오영의 주변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은 돈과 연관되어 있다. 오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한다. 오영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오영 주변사람들의 기계적인 배려와 사랑 그리고 감시는, 오영을 세상과 철저히 단절시킨다. 홀로 설 수 있는 기회조차 앗아버린다. 일반사람들 눈에는 지난 21년을 오영에게 엄마처럼 대해준 왕혜지를 믿고 칭찬하겠지만, 오영에게 왕혜지는 자신의 손발에 수갑까지 채운 존재다. 왕혜지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앞을 볼 수 없지만 세상과 소통하고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손발을 묶고 숨통을 조일 뿐이다.
만약에 오영이 PL그룹 상속녀가 아니었다면, 법정대리인 왕혜지가, 오영의 주변사람들이 그녀의 손발이 되어주었을까. 어떻게든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줬을 것이다. 그래서 오영에게 PL그룹은, 돈은 수갑과 같은 것이다. 손발이 묶여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수갑. PL그룹을 누군가에 넘길 수 있다면, 법정대리인 왕혜지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해야 할 누군가에게 넘길 수 있다면, 오영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오영을 찾아온 오수가 친오빠든, 친오빠가 아니든 사실 중요하지 않다. 21년이란 세월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뀌는데 사람이야 오죽하랴. 오영은 오수를 통해, 새장속에 갇혀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고 죽는 것보단, 새장밖으로 나오고 싶은 것이다. 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날개를 제대로 피지도 못해 추락하는 일이 있더라고. 오영은 오수에게 묻고 있다. ‘나를 죽이고 유산을 상속받겠는가. 아니면 나를 죽이지 않고도 유산을 상속받는 방법을 찾겠는가.’
오영이 오수에게 자신의 패를 초장부터 오픈한 이유는, 적어도 오수는 왕혜지를 중심으로 자신에게 수갑을 채운 PL그룹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오수의 목적이 돈이라고 해도, PL그룹과 연계되지 않은 사람을 오영은 21년 만에 만났다. 오영이 목숨을 걸고 올인할 만하다. PL그룹 사람들에 둘러싸여 죽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오수가 자신을 죽여주길 바란다. 오수가 친오빠든, 친오빠가 아니든 그가 PL그룹 사람들을 닮아가기 이전에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수는 아직 그런 오영의 패(마음)를 읽지 못했다.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한판의 도박판을 연상시킨다. 78억이란 돈이 필요한 오수에게도, 돈이 차라리 없어지길 바라는 상속녀 오영에게도. 생각해보면 참 기묘한 한판이다. 돈을 따야 살 수 있는 남자와 돈을 잃어야 살 수 있는 여자의 인생을 건 올인 승부. 그래서 지켜보면 흥미롭다. 재밌다. 패를 하나씩 하나씩 펼칠 때마다, 색다른 긴장감이 조성된다. O2커플 ‘오수-오영’의 게임의 법칙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올인하며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