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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송혜교' 산소커플 대박!

바람을가르다 2013. 2. 14. 09:14

 

 

오수(조인성)라는 남자.

유년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고, 첫사랑(희주)의 죽음은 잔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술, 여자, 도박으로 인생을 낭비하듯, 혹은 버티듯이, 그렇게 의미없는 하루하루조차 78억이란 빚더미와 맞바꾸게 생긴 오수를 향해, 희주 동생 문희선(정은지)이 물었다. 너같이 살아야 할 이유없이 막가는 인생도 죽는 게 두렵냐고. 쪽팔리지 않냐고. 희선의 날선 질문은, 청부폭력배 조무철(김태우)의 칼빵보다 날카롭고 아프게 오수의 폐부를 찌른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오수가 답했다.

 

살아야 하는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냐?

사는 의미가 없는 놈은 살면 안 돼?

(네가 보기에 난) 쪽팔린 인생을 사는 건데... 그래도 희선아,

살아있으니까... 살고 싶다.

 

 

오영(송혜교)이라는 여자.

시각장애인. 볼 수 없는 만큼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가족이 절실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년시절 어머니와 오빠(오수)와 헤어졌고, 아버지의 곁은 비서 왕혜지(배종옥)가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삶.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의 대가로 대기업 PL그룹의 상속녀가 됐다. 그리고 지병을 앓던 아버지마저 잃었다. 완벽하게 혼자라고 느꼈을 때, 그토록 기다렸던 오빠 오수가 찾아왔다. 하지만 기다린 만큼 실망도 컸다.

 

죽은 오영의 오빠 오수를 연기하기 시작한 또 다른 오수.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오수는 자신만만했다. 그에게 필요한 돈 78억원. PL그룹에서 78억은 껌값이다. 여자 홀리는 재주는 타고났다. 오영이 동생? 동생이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여자. 나쁜 남자의 정석, 부잣집에 도도한 여자는 짓밟아줘야 남자를 알고 매력을 느낀다. 오빠와 식사조차 하려하지 않고 풀장에서 수영중인 오영에게, 오수가 말했다. 지난 21년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동생이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어졌다고. 그러자 오영이 답했다.

 

 

너는 내가 싸가지 없는 것만 보이고, 니앞에 내가 눈이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니?

니가 하나뿐인 동생을 그렇게 사랑했다면,

넌 지금 내 싸가지를 말하기 이전에, 재산이니 소송이니를 말하기 이전에,

눈은 왜 다쳤냐, 내가 떠날 때 멀쩡했던 네 눈이 왜 다쳤냐. 그걸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니니? 많이 힘들겠다. 많이 아팠겠다. 내동생이 날 못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여전히 찾진 못했지만 살아있기에 살고 싶은 남자 오수의 상처도, 21년을 그리워했던 가족 오빠가 찾아왔지만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기에 더욱 절망감에 아파했던 오영의 상처도, 치열하게 숨을 쉰다. 그렇게 지난 13일 1,2회가 연속 방영된 SBS 새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1,2회는 한 마디로 기대이상이란 말로 표현해도 모자랄 만큼 완벽했다. 극의 전개는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다. 치밀하고 역동적이다. 치밀하기 때문에 속도감은 두배. 캐릭터는 어떤가. 주인공 오수(조인성)-오영(송혜교)의 매력은 뜨거웠고, 박진성(김범)-문희선(정은지)은 쿨하게 서포트했다. 시청자에게 욕먹어도 할 말 없는 진보라(서효림)는 적절했고, 왕혜지(배종옥)는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결정타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미친 존재감 조무철(김태우).

 

적재적소에 버릴 것 없이 100% 유용하게 쓰이는 캐릭터들을, 배우들은 120%의 연기력으로 화답한다. 누구보다 극을 이끌어가는 산소(O2)커플 ‘오수’ 조인성과 ‘오영’ 송혜교의 힘은, 극단적 대비속에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였다. 조인성은 오수를 차갑지만 ‘뜨거운’ 남자로, 송혜교는 오영을 뜨겁지만 ‘차가운’ 여자로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소화했다. 과거 모 화장품 cf속 카피 그리고 배우 이영애가 떠오른다. 청순과 섹시가 녹아 있는 ‘산소같은 여자’.

 

 

오수-오영, O2커플은 거칠고도 강렬한 섹시함, 연약하고 깨끗한 순수함을 동반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전의 반전을 낳는 캐릭터. 그리고 조인성-송혜교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비주얼 이상의 흡인력 강한 연기력. 매순간 숨통을 조여오는 극안에, 마치 산소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숨을 쉴새없이 불어 넣는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일본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이 원작인 리메이크 드라마다. 그런데 일드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전혀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하다. 드라마 ‘빠담빠담’의 콤비 작가 노희경-연출 김규태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드 원작에선 전반적으로 영상이 칙칙하고 덥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냈다. 반면 ‘그겨울’은 여름이 아닌 겨울을 택하면서, 겨울이 줄 수 있는 강점을 고스란히 녹여낸다.

 

일단 화면이, 배경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영상은 순백의 느낌이다. 영상과 연출이 하얀 도화지라면, 작가 노희경의 힘은 다양한 물감(캐릭터)으로 저마다의 색깔을 찍어내며 강렬하게 조화를 이룬다. 시청자가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살아 숨쉬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적어도 오늘 방송될 3회를 기다리게 만들 줄 아는 ‘그겨울’ 1,2회가 보여준 그림은 말이다.

 

지상파 3사 수목드라마의 경쟁이 시작됐다. 그겨울바람이분다-아이리스2-7급공무원은 저마다의 강점을 어필했고, 거의 비슷한 수치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새로 시작된 수목드라마의 치열함이 전해진다. 분명한 건,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만 놓고 볼 때, 대박수준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는 1,2회였다는 사실이다. 산소같은 드라마에 산소같은 제작진과 배우들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정말 오랜만에 매우 잘 빠진 웰메이드 멜로드라마를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