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드라마 ‘악녀 신드롬’의 실체?

바람을가르다 2013. 2. 6. 14:36

 

 

 

최근 안방극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로 ‘악녀’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성공을 위해 남편 하류(권상우)를 철저히 이용하고 배신한 ‘야왕’ 주다해(수애). ‘어서와~ 여기가 공포의 시월드야.’ 멀쩡한 며느리 민채원(유진)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고 불륜을 조작할 만큼 막가파 시어머니를 구현중인 ‘백년의 유산’ 방영자(박원숙)가 있다. 악녀의 악질계수가 높아야 드라마가 흥한다는 정석에 따라, 매우 악질스런 그녀들의 활약은 해당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 악녀의 출현은 야왕이나 백년의 유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제 오늘의 얘기도 아니다. 악행의 질적 차이가 존재할 뿐, 사실상 모든 드라마속에는 악녀가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악녀를 하루 이틀 봐온 것도 아닌데, 이를 악녀 열풍이란 식으로 포장하고 확대해석할 정도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현재 왜 미디어는 악녀를 재조명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동안 드라마 속의 악녀가 대부분 여주인공이 아닌,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서브여주인공에게 주로 할당된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악녀가 여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섯손가락’의 채영랑(채시라), ‘내 딸 서영이’ 이보영, ‘야왕’의 주다해(수애)에 이어, 김태희를 캐스팅하며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에 이르기까지, 지난 해 하반기부터 2013년 상반기는 악녀에게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가난, 계모 혹은 시어머니, 라이벌 등의 온갖 음해와 핍박을 이기고, 부와 권력의 상징인 왕자의 사랑과 일에서의 성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신데렐라-캔디-줄리엣형 여주인공 일색의 드라마판에서, 이제는 성공의 트라우마, 계모의 시선, 마녀의 집착, 팜므파탈의 경쟁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왜 그녀들은 속이 검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

 

 

 

시청자입장에선 분명 환영할 일이다. 왜 그동안 드라마는 실제로 보기 드문 캔디와 신데렐라에게 지나치게 목을 매고 판타지를 조장하는가. 무한 경쟁시대에 이유있는 악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데렐라보다 더 많은 여성들에게 포커스를 맞출 때도 됐다. 자신의 안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쟁은 불가피하고, 때로는 반칙을 범할 수도 있는, 절대 악이란 관념적인 판단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에 관하여 고민하는 여주인공을 만날 때도 된 것이다.

 

문제는 스토리고 내러티브다. 왜 여주인공이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가. 여기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해야 하고, 기존 악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드라마 ‘야왕’의 주다해가 생각만큼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데에는, 그녀의 악행이 단순히 설득력을 잃어서만이 아니다. 굳이 주다해가 여주인공일 필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야왕 주다해는 드라마 속 서브여주인공의 악녀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다해라는 캐릭터가 가진 내러티브가 뻔할 정도로 식상하다. 즉 명찰만 서브여주인공에서 여주인공으로 바뀐 격이다. 여주인공을 괴롭히던 서브 악녀의 내러티브를 여주인공이 그대로 답습한다면, 시청자는 당연히 서브악녀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욕했듯이, 여주인공을 똑같이 욕할 수밖에 없다. 주다해는 야왕의 여주인공이니까 같은 악행이라도 이해해야 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김태희-유아인 주연의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어떨까. 아직 방영전이라, 판단하긴 쉽진 않다. 다만 제목에서 작가의 차별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제목이 장옥정이 아니라,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장희빈의 ‘사랑’에 보다 초점을 맞춘 드라마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차별성과 기대감을 낳을 수 있다.

 

 

 

그동안 장희빈을 다룬 드라마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장희빈을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만일 김태희 주연의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장희빈의 사랑에 무게중심을 놓는다면, 이야기에서 차별성을 담보할 수 있고, 장희빈의 캐릭터가 악녀보단 '여자'로서 부각된다. 따라서 '사랑', '여자'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는 재평가할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다.

 

안방극장에 나쁜 남자를 대신한 악녀 열풍? 악녀 신드롬? 단순히 악녀가 여주인공이 되는 횟수가 많다고 해서 변화와 진화를 얘기할 수 없다. 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악녀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다. 악녀에게 어떤 내러티브를 발견하는가. 어떤 차별화된 부분을 부각하고 평가받을 것인가. 이러한 부분이 개발, 충족되지 않고서 악녀가 캔디와 신데렐라를 이기고, 드라마의 서브가 아닌 간판으로 롱런할 수 있을까. 2013년 여주인공의 대세로 떠오른 악녀가, 과연 나쁜 남자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까. 아니면 반짝 미풍으로 그칠까. 눈여겨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