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 차화연, 왜 수애보다 무서울까
4일 방송된 월화드라마 ‘야왕’ 7회 말미에, 주다해(수애)가 딸 은별(박민하)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려 했다. 다해는 자신을 대신해 사체유기혐의로 감방에 간 하류(권상우)와 약속한대로, 딸을 은별을 최고로 키우기 위해서. 다해가 은별을 데리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순간, 백도훈(정윤호)에게 전화가 왔다. 집앞에 도착했다는 도훈의 말에, 다해는 딸에게 엄마가 올 때까지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신신당부한다. 공을 들고 있던 딸 은별은 해맑은 얼굴로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시청자는 불길한 예감이상의 ‘확신’이 스친다. 딸 은별에게 말한 다해의 신신당부는, 딸에게 뭔 일이 일어날 것이란 메세지처럼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은별이는 공놀이에 심취한 나머지, 공을 쫓아 도로로 나오게 되고, 때마침 트럭 한 대가 은별에게로 향한다. 멈춰도 될 거 같은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듯 보이지만, 드라마 속 트럭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시청자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은별의 교통사고 그리고 죽음. 주다해의 오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순간 드라마가 식상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 식상함을 순식간에 잠재우고, 드라마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권상우에게서 폭발한다. 교도관으로부터 딸 은별의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하류는 부정한다.
“은별이 여섯 살인데, 여섯 살이 왜 죽어요? 우리 은별이 안 죽어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 죽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채 부정하지만 그 말이 현실임을 자각했을 때, 아마도 권상우처럼 정신을 잃고 폭풍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권상우의 연기는 리얼했다. 드라마 ‘야왕’이 아니라, 휴먼 다큐 ‘사랑’을 방불케하는 하류 권상우의 눈물연기는, 근래 보기 드물었을 뿐 아니라, 2013 올해의 ‘눈물’로 미리 꼽아도 손색없다.
드라마 야왕 7회는 보는 이에 따라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었다. 하류가 주다해의 의도대로 살인누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맥이 빠졌다. 암매장 살인사건를 취조하는 형사에게, 의붓아버지는 주다해가 죽였다고 하류가 주장하는 반전도 있었지만, 형사는 믿어줄 리 만무했다. 하류가 아닌 주다해가 감방에 들어가면 드라마는 7회에서 막을 내려야 하니까. 그래서 대화가 안 통하는 형사와 지지부진하게 ‘누가 죽였네.’를 따지기 보단, 하류가 다해를 대신해 깔끔하게 감방 직행을 택하는 게 나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류의 복수도 빨라질 테니까.
다만 시청자입장에서 사체유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하류의 수감생활은 기대감을 떨군다. 자막이 빨리 등장하길 바라게 된다. ‘4년 뒤’라는. 하지만 자막은 야속하게 뜨질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류가 교도소에서 제비계의 살아있는 전설 엄상도(성지루)를 만난 것이다. 드라마상 축 처질 수 있는 분위기에서, 엄상도의 코믹함은 분위기 전환을 살짝 돕고 하류의 실질적 지원군으로 완전 호감형이다.
야왕 8회의 예고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다해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하류가 제비 엄상도에게 교육을 받고 백학그룹 백도경(김성령)에게 작정하고 작업을 시도할 예정이라, 극의 흥미를 더한다. 한편 엄삼도 ‘성지루’의 존재감이 드라마 야왕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밝은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면, 백지미 ‘차화연’의 존재감은 드라마를 차갑고 어두운 쪽으로 인도했다.
알코올 중독, 도박중독에 빠진 백지미는 언뜻 허술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날카롭다 못해 섬찟하다. 심지어 국민 악녀 주다해보다 무서운 캐릭터로 비춰진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주다해는 그 속이 다 들여다보인다. 때문에 순간순간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백도경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백지미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야왕 7회에서 주다해와 딸 은별이가 함께 있는 장면을 백지미가 목격했다. 백지미입장에서 주다해가 미혼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숨겨둔 남편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튼 딸을 둔 주다해가 백도훈을 꼬시기 위해, 그동안 처녀 코스프레를 했었다는 사실만큼은 백지미가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에 백지미는 빵터졌다면서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그 모습은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백지미가 더 무서운 건, 그 사실을 알고도 백도경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경에 의해 다해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백도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백도경-백도훈에겐 주다해가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말이다. 고모라는 사람이 왜 이럴까. 도대체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길래, 백도경-백도훈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불행한 길로 인도하는 것일까. 주다해가 '나쁘다' 퀸이라면, 백지미는 '무섭다' 퀸이다.
이렇듯 드라마 야왕 7회는 전체적으로 다소 맥이 빠질 수도 흐름이었지만, 그 때 마다 본인의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낸 배우들로 인해, 극 안에 긴장감을 쉴새없이 불어넣었다. 연기력의 중요성이다.
수애는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희번덕거리지 않아도 국민악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성령은 무서운 여자의 촉을 절제감있게 표현하며 수애를 궁지로 몰아넣을 줄 알았다. 성지루는 가장 지루할 수 있는 상황을 반전시킨 주역이었고, 차화연은 빵터졌지만 시청자는 그 모습에 무서움을 느꼈다. 권상우는 눈물연기 하나만으로도 드라마의 재미와 품격을 높였다.
내용적으로도 야왕 7회는 3가지 중대한 터닝포인트를 남겼다. 첫째, 주다해의 실체를 파악한 백지미(차화연)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가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데 일조하기 시작했다. 둘째, 엄상도의 출현으로 하류에겐 도움을, 극에는 재미를 불어넣는 기폭제가 됐다. 셋째, 딸까지 잃은 마당에 국민악녀 주다해의 질주도 계속되겠지만, 누구보다 하류가 바보스러울 정도의 순정남에서 냉혹한 작업남이자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함을 알렸다. 드디어 야왕 2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