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야왕, 시청자가 걸린 최면?

바람을가르다 2013. 1. 23. 11:29

 

 

“이런 등신을 봤나?”

월화드라마 ‘야왕’ 2회 마지막에서, 호스트바 호스트 하류(권상우)가 여자손님들(주다해의 직장동료들)앞에서 웃통을 까고 스스로를 ‘등신’이라고 외쳤다. 그 모습을 하류의 아내 주다해(수애)가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서글픈 아이러니다. ‘등신’은 하류가 2차를 뛰지 않고도 호스트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자랑스럽게 등신을 외쳤지만, 아내 주다해에게 들킨 시점에서, 아내에게도 시청자에게도 하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등신으로 보일 뿐이다.

 

‘야왕’ 3회에서 하류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호스트바를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길바닥에 누워 환호했다. 그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너무 행복해서. 이제는 아내 다해와 딸 은별(박민하)이에게 충실한 가장으로,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더 이상 가족을 속이며 등신같은 짓은 안 해도 될테니까.

 

 

 

그런데 ‘야왕’ 4회에서 하류는 ‘등신’으로 돌아갔다. 호빠를 나올 땐 자신이 등신이란 사실을 잊은 듯 당당할 수 있지만, 돌아갈 땐 등신에 ‘개만도 못한 새끼’라는 모멸감을 견뎌야 했다. 호빠 박부장(윤용현)앞에서, 개처럼 기었고, 개처럼 주인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다. 그리고 하류는 화장실에서 상처투성의 얼굴을 씻으며 울었다. 아팠다. 박부장에게 맞아서 아픈 게 아니라, 자신이 호빠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때문이었다.

 

아내 주다해의 유학비용을 대는 것이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혼인신고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아내를 보면서, 그녀가 자신을 남편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아내와 남편이 아닌, 아내의 요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주인과 개의 느낌. 아내가 추구하는 가족의 행복과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괴리감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유학? 밤일하는 남편이 조금이라도 안쓰러웠다면 유학의 유자도 입밖에 나올 수 없다. 그런데 다해는 무서울 정도로 당당하게 요구했다. 유학 보내달라고.

 

 

 

하류의 상처입은 얼굴은, 실질적으로 박부장이 아닌 주다해가 입힌 상처고 결과였다. 그래서 하류는 더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하류는 다해앞에서 웃어보였다. 꼬리를 흔들었다. 다해가 행복해지면 상처는 아물 것이란 기대감이다. 남편의 고생을 언젠가 알아주고 따뜻하게 품어줄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런 하류가 ‘야왕’ 4회에서 두 번째 폭풍 눈물을 흘렸다. 2차 죽어도 뛰지 않겠다던 다짐이 돈앞에 결국 무너졌기 때문이다. 주다해의 유학비용도 빠듯한 시점에서, 어머니같은 홍안심(이일화)의 수술비용이 필요했다. 더 이상 급전을 땡길 수도 없었다. 박부장의 명함을 받고 황순옥여사가 있는 호텔을 찾아갔다. 하류가 바지를 내리고 몸을 팔았다.

 

 

 

황순옥에게 백만원짜리 수표 석장을 받고 하류는 계단에서 펑펑 울었다. 밤새도록 시달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호빠생활을 하면서도 지켰던 철칙, 2차를 뛰지 않는 것, 그것은 하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아내에게 떳떳하고자 했던 자기 최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지탱하게 했던 자기 최면마저 깨져 버렸다. 자신이 번 돈이, 한 행위가, 얼마나 추잡한 현실로 돌아오는지 뼈속까지 스며든다. 하루의 눈물은 자신의 모든 걸 태우고도 남을 만큼 뜨겁다.

 

그 시각 아내 주다해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백도훈(정윤호)과 미국 일주를 떠났다. 그리고 청혼하는 도훈에게 “장난이면 죽어.”라며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얼굴로 도훈과 키스를 했다. 몸뚱아리 하나로 백학그룹을 삼키는 순간이다. 성공이란 욕망앞에 남편과 딸은 없었다. 혼인신고서를 찢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눈을 피하며, 그녀가 경멸했던 시궁창 호스트바로 남편을 등 떠민 순간부터, 이미 주다해는 역대급 악녀가 될 결심을 마쳤기 때문이다.

 

 

 

2차에서 몸을 판 순간, 아내 주다해의 행복이 절대 선이며, 그것이 나의 행복이고 가족의 행복이라고 믿었던 하류의 최면은 거부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앞에 풀려 버렸다. 반면 주다해는 백도훈과 키스하는 순간, 성공이 절대 선이라고 믿은 자기 최면에 더욱 깊이 빠져 들고 있었다. 때문에 유학을 마치고 재회하게 될 남편 하류는, 다해에게 피하고 제거하고픈 현실이 된다.

 

주다해는 부모를 잃었다. 뿐만 아니라 양부에게 끊임없이 성추행을 당했고 결국 양부를 살해했다. 하지만 그로인해 악몽을 꾸며 평생 쫓겨 살아야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남편 하류는 자신을 공부시키기 위해 호빠 호스트로 살았다.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는, 자신이 동경했던 백도경(김성령)상무의 오해로 산산조각났다. 이 모든 게 지독한 가난 때문이다. 그리고 주다해는 가난이 불러온 지독한 불운의 늪속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주다해는 시청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녀가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아왔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바로 하류 때문이다. 시청자를 울리는 권상우의 뜨거운 눈물때문이다. 하류가 흘린 눈물속에 주다해의 악몽같은 지난 날은 잊혀진다. 주다해는 어마어마한 역대급 상년이고, 하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등신이다. 드라마 ‘야왕’의 시청자도 최면에 걸리기 시작했다.